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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의 집단 사직과 파업:
노동계급 일부로서의 요구를 내놓았어야 했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수가 1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 중 9천여 명은 실제로 병원에 나오지 않고 있다. 일주일째 이어진 파업에 대형병원의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등 필수 시설의 가동이 크게 저하됐다.

정부는 의사면허 정지·취소, 수사와 기소 등 엄포를 놓고 있다. 지난해 11월 의사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하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이 시행됐는데, 정부가 이를 이용해 전공의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들이 이전처럼 명시적 지휘 체계를 갖춘 파업 대신 사직서 제출과 근무지 이탈 등의 형식을 취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의 압박에도 집단 사직과 파업에 동참하는 전공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의대 졸업생들도 수련의(인턴) 임용을 포기하고 있고, 집단 휴학에 동참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오는 3월 3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엄포를 놓던 정부가 이제 와서 부랴부랴 공공병원들을 찾는 모습에서 오히려 정부의 무능이 엿보인다.

사실, 의대 정원 확대로 필수의료 부족 문제가 얼마나 개선될지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자신이 필수의료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고 의사들의 진로를 시장에 내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늘어난 2000명이 모두 피부과·성형외과로 갈 것이라는 말은 지나친 편견을 담고 있지만, 정원 확대만으로는 필수의료가 아니라 수익이 많고 부담이 적은 곳으로 쏠리는 경향 자체를 막을 수 없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내놓았지만 재정 지원 계획이 모호하고 턱없이 부족해 개선 여부가 불투명하다.

근본적으로, 재정 지출 절감과 의료 ‘산업’ 활성화를 정책 기조로 삼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이윤을 내기 어려운 필수의료 분야에 충분히 투자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의 의대 증원 백지화 요구를 지지할 수는 없다. 노동자 등 서민층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필수의료 공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의사 수 자체가 지금처럼 부족해서는 오늘날 늘어난 의료 수요를 충족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것도 명백하다.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 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에서 둘째다. OECD 평균은 3.7명으로, 단순 계산해도 5만여 명이 적은 셈이다. 여기에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의사 인력 부족은 환자와 보호자뿐 아니라 병원 노동자 전체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 2016년 전공의들의 노동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이 통과되자 간호사 등 다른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의대 정원은 늘어야 한다. 그러나 의료를 시장에 내맡겨 둬서는 필수의료 공백을 해결할 수 없다. 2월 26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조승진

그러나 전공의들의 의대 증원 반대 요구가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자신을 착취하는 사용자에게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다른 부위에 그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의대 증원 자체는 전공의들의 노동조건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당장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올해 전공의 생활을 시작할 의사도 내년 의대 신입생이 의사 면허를 취득할 때에는 더는 전공의가 아니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이 이토록 크게 반발하는 것은 시장 경제 하에서 장차 의사 사이의 경쟁이 격화될 것을 우려해서다. 일부는 여전히 고용된 의사로 나아가겠지만 어쨌든 시장에서는 의사 수가 적은 것이 조건을 지키는 데에 유리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전문의 자격 취득 후 상급종합병원에 남기 어려운 한편,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개원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많은 전공의가 자신을 미래의 개원의로 여긴다. 2020년 전문의 개원의의 연평균 소득은 정부 집계로도 3억 원가량으로 봉직의 임금에 비해 1억 원가량 많다.(보건복지부,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 2021)

그러다 보니 병원 사용자들과 정부에게 조건 개선을 요구하기보다 시장 논리에 순응하며 노동계급의 다른 부위에 부담을 떠넘기는 프티부르주아적 의식을 갖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전공의들이 자본가적 의협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누구나 개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개원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많은 전문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병원 자본의 집중과 함께 의사들의 계급적 지위도 더욱 분화하고 있다.

전공의는 물론이고 이제 개원의보다 더 많아진 봉직의들도(사실상 관리자 구실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자신들의 진정한 이익을 지키려면 노동계급적 요구를 내놓고 싸워야 한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잘못된 요구일 뿐 아니라, 일시적으로는 자신들의 조건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장차 사용자에 맞설 힘도 약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의사 사이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당연시하고, 노동계급의 다른 부분에 고통을 전가함으로써 단결과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은 늘어야 한다. 공공의료가 확대돼야 한다. 또한 전공의들은 의협이 아니라 병원 노동자들과 단결해 공동의 사용자에 맞서 싸워야 한다. 노동계급의 일부다운 요구와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