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민자 본국 가족·유학생 돌봄 취업 허용 방안:
최저임금 적용 제외 말라! 자유로운 취업 허용하라!
〈노동자 연대〉 구독
4월 4일 윤석열이 결혼이민자의 본국 가족과 유학생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돌봄 업종 취업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고령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돌봄서비스 필요가 증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주노동자를 무조건 환영한다. 그러나 윤석열이 추진하는 방안은 돌봄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지원 책임을 최저임금 이하로 노동력을 공급하는 것으로 대신 때우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민의 부모(부모가 불가능할 경우 성년인 형제자매 등)는 ‘자녀양육지원 방문동거 비자’(F-1-5)를 발급받을 수 있다. 매년 갱신해 최대 3년까지 머물 수 있고 취업은 금지돼 있다. 예외로 계절근로자 제도로 농어업에서 취업이 가능하다.
또, 유학생은 아르바이트 수준의 단순노무 업종에서 한국어 성적과 이수 중인 과정(어학연수, 학사, 석·박사)에 따라 주 20~35시간만 취업이 허용된다. 다만, 어학연수생 이외에는 방학 중에 시간 제한이 없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방안은 이들을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가사사용인’(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으로 고용하는 가사돌봄 노동자)으로 취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현재 근로기준법 11조는 가사사용인을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줄 수 있다.
이는 한국은행이 3월 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돌봄 이주노동자를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두 가지 중 하나다. 윤석열은 그 대상을 결혼이주민의 본국 가족과 유학생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주민의 본국 가족과 유학생이 한국에서 생활하려면 한국의 물가 수준에 맞는 생계비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발표한 전월세 거주 1인 가구 생계비는 2022년 기준 월 241만여 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월 206만여 원(시급 9860원)보다 높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면 적잖은 이주노동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할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적용 대상을 늘려야 한다.
결혼이민자의 본국 가족(대체로 부모)은 한국에서 연금을 받을 수도 없다. 스스로 충분한 생활비를 벌지 못하면 결혼이민자와 그 배우자가 부양해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
유학생도 정부의 취업 업종과 시간 제한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예컨대 어학당의 한 학기 등록금은 보통 150만 원 수준으로, 1년 4학기에 600만 원이나 든다. 정부가 정한 제한을 지켜서는 현실적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어기고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가 대학들에 이를 막으라고 요구하면, 대학들은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유학생들을 단속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신대학교가 우즈베키스탄 유학생들을 강제 출국시킨 만행을 저지른 것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것이다.
무책임한 정부와 유학생 유치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대학들 때문에 애먼 유학생들이 무시받고 고통받는 것이다.
꼼수
정부가 이번 방안을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내놓은 것에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군불을 때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돌봄 업종에서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면 정부와 사용자들은 곧이어 다른 업종도 그렇게 하자고 요구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전반적인 임금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윤석열은 “현재 내국인 가사도우미, 간병인 임금 수준은 맞벌이 부부 등이 감당하기엔 부담”이라며 이런 꼼수를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저임금 일자리 늘리기는 국가의 돌봄서비스 책임과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일일 뿐이다. 국가가 이주노동자를 수입해서라도 노동계급 가족의 돌봄(재생산) 비용을 낮추려는 것 자체가 임금 인상과 복지 증대 압력을 완화하려는 수작이다.
돌봄 비용이 낮아져도 노동자들의 임금이 안 오르면 조삼모사일 뿐이다.
정부가 이주민의 자유로운 생계 활동을 제한해 놓고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등 열악한 처우나 노동조건을 강요하려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오히려 결혼이민자의 본국 가족과 유학생이 한국에서 자유롭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협상력을 높여 임금과 조건을 개선할 여지도 생긴다. 그리고 노동계급에게 필요한 돌봄 서비스는 국가의 지원을 대폭 늘려서 해결해야 한다.
한국인 우선 고용?
윤석열이 이번 방안 추진을 발표하자 한국노총은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노총은 결혼이민자의 본국 가족이나 유학생이 언어소통이 어렵고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돌봄 노동을 할 능력이 없다는 데에 초점이 있다.
이는 이주노동자보다 한국인의 고용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올해부터 고용허가제 도입 업종을 늘리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이를 반대한 바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가 발표됐을 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조와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도 이주노동자보다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우선해야 한다고 시사하는 입장을 발표했었다.
4월 9일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가 돌봄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으려는 것을 규탄했다. 공동행동은 그동안 돌봄 이주노동자 확대 자체를 반대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이주노동자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고, 저임금 일자리를 늘리려는 것은 규탄하고 반대하되,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고 고용되는 것은 환영해야 한다.
취업난과 저임금은 이주노동자 탓이 아니다. 일자리와 임금 수준은 경제 상태와,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맞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싸우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이주민의 국내 취업을 반대하면 이주민은 한국 노동조합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고, 한국인 노동자들은 실업과 저임금에 대한 불만을 정부와 사용자가 아니라 이주민에게 돌리게 되기 쉽다. 이는 단결을 해칠 뿐, 효과적인 생계비 저항에는 도움이 안 된다.
돌봄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에 양질의 서비스가 공급되려면 인력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 한국인이든 이주민이든 돌봄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대폭 개선돼야 하고, 차별이 없어야 하며, 필요한 교육이 실질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 지출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