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에서 중국이 미국의 공백을 차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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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전방위적 관세 공세와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월가의 황제라는 JP모건 체이스의 CEO 제이미 다이먼은 대선 때 트럼프를 지지했던 것에서 돌아서서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쌓아 올렸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촉발시킨 이 상황이 중국에게 어느 정도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4월 18일 〈프레시안〉은 ‘중국 때리려던 트럼프, 오히려 중국 도와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미국이 남긴 공백을 중국이 차지하려 할 때에도 그 나름의 모순과 갈등이 존재한다.
베트남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 준다. 미국이 베트남에 상호관세 46퍼센트를 부과하려 하자, 시진핑은 4월 14일 베트남을 방문해 미국의 “일방적 괴롭힘”에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제안하며 양국이 운명 공동체임을 강조했다. 이는 베트남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단속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베트남은 시진핑을 후하게 대접하면서도 미국과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를 조율하겠다는 의사를 가장 먼저 밝혔다. 현재 베트남은 미국에 협상단을 파견했을 뿐 아니라 ‘무역 사기’를 단속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역 사기란 중국 제품을 베트남산으로 바꿔서 미국 관세를 피하려는 것을 뜻한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하면 설사 트럼프와 대립각을 보이는 국가에게도 보복관세를 부과하는데, 캐나다가 그 사례다. 지난 3월 20일 중국은 캐나다산 유채씨 오일과 완두콩 등 일부 농산물에 대해 25~100퍼센트의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가 중국산 자동차에 100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2일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외교부장 왕이는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고 말했지만, 중국 또한 가까운 이웃과 대립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중국은 일본과는 댜오위다오 섬(일본은 센카쿠열도라 한다)을 두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고, 필리핀과 베트남과는 난사군도(스프래틀리 군도)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또 중국은 호주와 6년 만에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수입 제한을 해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국 해군이 호주 주변을 항해하며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웃한 인도와 베트남과는 과거에 전쟁까지도 벌인 바 있다.
동아시아에서 긴장이 가장 고조된 곳은 양안 관계다. 중국은 실질적으로 독립된 국가인 대만에 대해 ‘하나의 국가’임을 내세워 수시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자신감을 얻은 대만 총통 라이칭더가 대만 독립을 내세우자 중국은 “대만 독립 세력 억제”를 위해 이틀 동안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펼쳤다.
중국의 이런 행동은 일본 인근의 해역, 남중국해, 호주 주변의 해역 등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이 모두 중국 이익의 분할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에 대한 반발을 이용해 이 지역 국가들을 중국과 떼어 놓으려 한다.
일대일로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미국과 전통적인 우방국 사이의 관계에 실금이 생기게 했다. 그렇지만 중국은 이 국가들을 친중 입장으로 견인하지는 못할 것이고, 미국과 거리두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도로 만족할 것이다. 호주나 캐나다가 이런 사례에 속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자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을 활성화하며 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중동의 많은 국가들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일 좋은 기회로 여기고 있다. 일대일로란 중국이 2049년까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건설하려는 국가 전략으로, 경제적 협력뿐 아니라 지정학적 목적을 담고 있는 중국판 마샬플랜이다.
시진핑은 자신이 야심차게 추진한 일대일로 사업이 코로나 팬데믹과 중국 경기 부진 그리고 상대국의 경기침체 등으로 주춤거렸지만 캄보디아 순방에서 얻은 성과로 다시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캄보디아의 푸난 테코 운하 사업에 17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이 운하가 건설되면 중국은 중동산 원유를 저렴하게 운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국 군함의 이동로로 활용해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의 지정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베트남은 이 운하 건설에 적극 반대했다. 또 이 운하 건설로 인해 베트남은 메콩강 수량 감소와 환경 파괴라는 영향을 받게 된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서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에 자신의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 수탈과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 개발이다. 중국은 항구 건설에 11억 달러를 대출해 줬지만 스리랑카가 이를 갚지 못해 2017년에 이 항구가 99년간 중국에게 넘어갔고 스리랑카는 외환 위기를 맞았다. 이는 대표적인 “채무 함정 외교”인데, 개도국에게 거액을 대출한 뒤 이를 상환하지 못하면 기반시설 지분이나 운영권을 빼앗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에티오피아, 잠비아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스리랑카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불만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말라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파키스탄의 과다르항구와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을 건설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에 맞서는 발루치스탄 반군들은, 현지 노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자원을 수탈하는 중국 기업들에게도 저항하고 있다.
중국은 억압적인 통치자들과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뇌물과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광물자원 개발권이나 기반시설 건설 사업권 등을 획득했다. 그런데 이런 사업들이 부정부패, 환경 파괴, 부실 공사, 현지 노동력에 대한 초착취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런 점들은 중국 또한 미국 못지않게 제3세계 민중들을 수탈하고 착취하는 제국주의 열강이라는 것과 그 역시 숱한 저항과 모순에 부딪힐 것임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