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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아사드 정권과 닮아 가고 있는 시리아 새 정부

트럼프 측근 코리 밀스와 회담하는 HTS 지도자 아흐메드 샤라아 ⓒ출처 시리아 대통령실

순니파 이슬람주의 정당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지배하는 시리아 정부가 4월 17일 ‘팔레스타인 이슬람 투쟁 운동’(PIJ) 고위 인사 두 명을 체포했다. PIJ는 현재 하마스와 함께 가자에서 무장 저항을 벌이고 있는 단체의 하나다.

그 후 시리아 대통령 아흐메드 샤라아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문한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코리 밀스를 만나 “조건이 맞으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샤라아가 이끄는 HTS 당은 지난해 12월 아사드 독재 정권을 무력으로 무너뜨리고 권력을 차지했다.

그런데 이제 HTS와 대통령 샤라아는 미국 등 서방에 협조적인 행보를 하며 그들의 중동 우방들의 인정을 받고 재건을 위한 지원을 얻어 내려 한다.

미국은 아사드 정권 때 부과한 시리아 제재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 제재 해제 요건의 하나로 시리아 내 팔레스타인 저항 조직의 활동을 일절 금지하는 것을 포함시키고 있다.

HTS 정부는 IMF의 지원을 받기 위해 민영화와 공공부문 축소 등 대대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도 시행하기 시작했다.

사실, 집권 이래 HTS 정부는 이스라엘과의 충돌을 줄곧 피해 왔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자마자 이스라엘이 골란 고원에서 점령을 확대하고 최근까지도 시리아 곳곳을 공습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HTS 정부의 이런 행보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내에서 HTS 정부에 기대를 품은 적잖은 활동가들에게 당혹감을 줄 것이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내의 또 다른 사람들은 HTS 정부의 행보를 보며,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의 축’이 약화된 사건이었다고 한탄할 수 있다.

그러나 아사드 정권도 가자 전쟁 개전 이래로 이스라엘과의 충돌을 한사코 피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아사드 정권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은 아무도 그 정권을 애써 지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1년 시리아 혁명은 아사드의 잔악하고 부정의한 지배가 위기에 빠진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었다. 아사드는 종파간 갈등을 부추기고 잔혹한 내전을 일으켜 정권을 지키려 했다.

아사드 정권은 혁명에 동참한 시리아 내 팔레스타인인들도 잔혹하게 짓밟았다. 한때 팔레스타인인 16만 명이 살던 야르무크 난민촌은 지금의 가자를 방불케 할 정도로 초토화됐다.

아사드 정권의 몰락은 2011년 시리아 혁명의 정당성을 입증한다.

한편, HTS의 집권은 그 혁명이 패배하고 뒤틀린 결과였다.(아래 박스 참고)

아사드 몰락 이후의 상황과 전망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그전까지 억눌려 있던 시리아인들이 변화 염원을 표현할 기회를 제공해 줬다. 아사드 몰락 이후 시리아에서는 다양한 쟁점들을 둘러싼 크고 작은 투쟁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HTS의 지향 때문이 아니라 아사드 정권의 급작스런 붕괴로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됐고, 반면 HTS는 아직 자신의 기반을 구축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HTS 정부는 갈수록 아사드 정부를 닮아 가고 있다. HTS 정부는 이스라엘과의 충돌을 피하고, 서방의 환심을 사려 할 뿐 아니라, 러시아와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줄타기를 하고 있다. 역내 주요 파트너가 이란에서 튀르키예로 바뀐 것만 빼면 아사드 정부의 대외 정책을 빼닮았다.

국내적으로, HTS 정부는 3월 ‘임시 헌법’을 선포해 대통령 샤라아에게 막대한 권한을 집중시켰다.

한편, HTS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민영화, 공공부문 축소, 공공지출 감축 등)은 IMF의 지원을 받으려는 것일 뿐 아니라, 2000년대 아사드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계승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사적이게도 HTS 정부는 아사드 정권에서 같은 직책을 맡거나 일했던 자들을 경제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HTS 정부의 이러한 행보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일련의 무장 투쟁이 패배한 이후 밟은 궤적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국제 질서의 일부로 편입되고자 하면서 받게 된 압력에 순응하면서 후퇴와 배신의 길을 걸은 것이다.

그러나 HTS 정부의 정책들은 시리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HTS 정부의 팔레스타인인 배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점령을 확대한 골란 고원(샤라아 일가의 고향이기도 하다)을 내줄 생각이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시리아 남서부 일대를 자신의 ‘보호령’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는 단지 시온주의적 야심 때문만이 아니라 시리아에서 커진 튀르키예의 영향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HTS의 신자유주의 정책도 대중의 고통을 더욱 키울 것이다.

위기가 첨예해지면 HTS 정부도 아사드처럼 종파간 갈등을 부추겨 위기를 모면하려 할 수 있다. 지난 3월 중순 아사드 정권 잔존 세력과의 충돌 후에 벌어진 알라위파 민간인 학살은 그런 위험성을 뚜렷하게 보여 줬다.

따라서, 대중에 이로운 변화를 쟁취하고 팔레스타인 연대의 대의를 전진시키려면 평범한 시리아인들 자신의 투쟁이 중요하다.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그런 투쟁을 키울 기회를 열어 줬다. 그러나 그 기회가 언제까지나 열려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은 어떤 세력인가?

HTS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본지가 이슬람주의 운동에 관해 강조했듯이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그 운동이 출현한 역사적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HTS의 기원은 이라크 알카에다에 있다. 이라크 알카에다는 2003년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이 점령을 유지하려고 부추긴 종파간 갈등의 산물이다. 대다수 이라크인들이 종파를 불문하고 점령에 반대했지만, 일부 이슬람주의 무장 조직들은 미국에 맞선 무장 저항을 타 종파를 상대로 한 내전으로 틀었다. 이라크 알카에다도 그런 조직의 하나였다.

이라크 알카에다의 후신인 ‘이라크 이슬람국가’는 이라크 전쟁으로 수렁에 빠진 미국의 통제력 약화와, 2011~2013년 아랍 혁명의 패배가 낳은 공백을 메우며 성장했다.

시리아 내전은 아랍 혁명이 패배로 퇴조하는 중요한 변곡점의 하나였다. 이라크 알카에다에서 활동했던 샤라아는 그 무렵 시리아로 건너가 ‘누스라 전선’을 창설했다.

샤라아는 기존 아랍 세계의 국경들을 뛰어넘는 국가를 세운다는 ‘이슬람국가’ 운동의 목표를 거부하고 시리아 차원의 민족적 프로젝트를 추구했다.

그래서 2013년 ‘이라크 이슬람국가’가 누스라 전선과 합병하는 ISIS의 수립을 선포했을 때, 누스라 전선은 합병을 거부하고 ISIS와 충돌했다.

시리아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돼 그들의 후원을 받는 세력권으로 찢어져 내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샤라아는 HTS로 세력을 규합하고 시리아 북서부의 이들리브 지방에 자신의 정부를 수립했다.

그 정부는 ISIS보다 국정을 유연하게 운영했다. 역내 강대국들, 지방의 유지, 서방의 NGO 등 지원을 제공하는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서 줄타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이들리브 정부의 기본 성격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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