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신임 대통령의 지정학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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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이 나토 정상회의 참석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나토 정상회의는 6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릴 예정이다.
나토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는 인도·태평양 파트너국(한국·일본·뉴질랜드·호주)의 나토 회의 참석을 “전통”이라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새 대통령과 협력하는 것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는 방위비 증액(회원국들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의 5퍼센트로 올리는 것)과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다(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대해서는 박스 기사를 보시오).
나토는 2022년부터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를 내세워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뒤 대(對)러시아 압박을 유럽 밖 지역으로 확대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인도·태평양 4개국을 나토 정상회의에 초청해 왔다.
전임자 윤석열은 임기 동안 나토 정상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해,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의 대(對)러시아 전쟁 노력을 전폭 지지했다.
야당 시절 이재명은 윤석열의 서방 제국주의 지지 일변도 노선을 비판했다. “전쟁을 최대한 비켜서 있어야 한다. 동네일에 깊이 끼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재명의 이 발언은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반대하는 대중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말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82퍼센트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반대했다.
야당과 대중의 이런 반대가 윤석열로 하여금 군사 쿠데타를 기도하도록 재촉한 요인의 하나였다. 윤석열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의 서방 제국주의 지지 노선에 대한 국내의 반대자들을 분쇄하려다 대중의 저항에 부딪혔다.
이렇듯 세계 제국주의 질서 내 한국의 위치를 둘러싼 문제는 한국 정치의 핵심 갈등 축이다. 이 문제가 장차 이재명 정부의 최대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재명은 대선 동안에 미·중 간 균형 외교를 추구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이재명은 연일 미국에 감사를 표시했다. 이재명의 외교·안보 정책을 불안해하는 국내외 권력층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들이 지금 이재명 정부가 나토와 지레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고 제기하고 있다. “외교가에선 ‘국제 사회는 이재명 정부가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편에 설 확고한 의지가 있느냐를 나토 참석 여부로 판단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조선일보〉 6월 9일 자)
민주당은 야당일 때는 한미동맹에 일견 문제를 제기하는 듯하지만(위에서 언급한 윤석열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반대) 집권당이 되면 한미동맹에 충실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재명이 나토 정상회의에 최종 참석하든 불참하든 간에 민주당의 이런 지정학적 DNA는 변함없을 것이다.
사실 이재명의 ‘실용 외교’ 노선은 그 자신이 밝힌 바 있듯 한국이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경쟁에서 정확히 균형자 구실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대한민국 외교의 근간은 한미동맹”임을 분명히 하되 중국·러시아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재명도 전임 민주당 소속 대통령들처럼 강대국의 지정학적 경쟁에 끼여 있는 “끼인 국가”의 수장이라는 운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왜 우크라이나에서 총성은 멈추지 않는가?
지난 한 달 동안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고위급 회담이 두 차례나 열렸다. 그러나 그 회담들에서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전쟁이 지속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격렬해지고 있다.
6월 6일 밤(이하 현지 시각) 러시아는 무인기(드론)와 미사일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전역을 폭격했다. 6월 1일 우크라이나군이 드론 100여 대를 투입해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공군 기지 4곳을 공습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그중에는 러시아 최신 전략 폭격기 기지도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는 올여름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할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워싱턴 포스트〉 5월 27일 자). 러시아군은 5월 한 달 동안에만 우크라이나 영토 449제곱킬로미터를 추가 점령했다.
왜 우크라이나에서 총성은 멈추지 않는가?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단지 러시아어 사용자 주민이 사는 우크라이나 동부·남부 지역만 원하는 게 아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체를 원한다. 설령 정복하지 못하더라도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보호국으로 삼을 조건을 강제하려고 한다.
반면, 미국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자신들의 전초 기지로 삼으려 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우크라이나를 “강철 고슴도치”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푸틴이 ‘평화 협상을 하지 않으면 관세와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을 갈취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2023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맞아 노동자연대가 속해 있는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은 다음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많은 평화 활동가들은 어느 한 편을 지지하는 쪽으로 이끌리고 있다. 이것은 실책이다. 두 제국주의 블록은 모두 자신의 경제적·군사적 지배를 유지하고 확장하려고 경쟁할 뿐이다. 전 세계의 피착취·피억압 대중은 어느 쪽의 성공에도 이해관계가 없다.”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근현대 역사상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서로 대립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국경 지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자결권이 있고, 빈곤과 온갖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권리는 미국 등 서방의 무기나 “보호”로는 결코 보장될 수 없다.
이 점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3년이 넘는 전쟁을 통해 분명해졌다. 미국 등 서방의 미사일(과 한국의 포탄)은 우크라이나 도시들과 에너지 기반 시설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 작년에 쿠르스크에 투입된 독일제 전차와 탱크들도 승리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오히려 푸틴의 애국주의적 전쟁 프로파간다에 불을 지펴 러시아 국내 반전 운동의 발목을 잡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