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7년, 그동안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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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일부로 형법의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잃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성 운동과 임신중지권 운동이 만들어 낸 성과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는 2020년 한 해 인공임신중절 건수를 약 3만 2000건으로 추정했다. 이 조사에서 임신경험 여성의 17퍼센트가 임신중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임신중지는 적지 않은 여성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여전히 제약돼 있고, 임신중지의 부담과 위험은 여성 개인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제도 마련의 책임을 방기해 온 탓이다.
최근 논란이 된 ‘36주 낙태’ 사건은 그런 현실의 단면을 비극적으로 보여 줬다.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A씨(26세)는 임신중지 수술을 원했으나 임신 후기라는 이유로 병원 두 군데서 거절당했다. 그가 결국 의지한 곳은 브로커를 통해 소개받은 인천의 한 병원이었다. 병원이 요구한 900만 원을 겨우 마련해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그는 살인죄 유죄 판결을 받게 됐다.(관련 기사: ‘36주 낙태’ 여성 유죄 선고: 처벌은 여성을 더한층 궁지로 몰 뿐이다)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하는 평균적 시기가 임신 6~7주차임을 고려하면, A씨와 같은 비극적인 사례가 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외로 치부할 수만도 없다.
취약한 여성들을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다
A씨 사건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해당 병원은 2022년 8월부터 약 2년간 브로커 알선으로 500여 건의 임신중지 수술을 했다. 절박한 여성들이 더 있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영아 살해로 유죄 판결을 받은 여성들 가운데 임신중지를 고려·시도했으나 실패한 경우도 적지 않다. 관련한 최근 판결문 11개를 검토해 보면, 이 여성들은 대부분 취약한 조건에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임신중지를 원했으나 실패했다.
B씨(직장인)는 파트너가 출산을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그의 도움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를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2022년 1월 임신중지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임신 후기 상태라 병원에서 수술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인터넷에서 임신중지 약물을 180만 원을 주고 구입해 이후 매일 2회 복용하였지만, 실패했다.
C씨(대학생)는 2021년 7월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낳아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해 임신중지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수술을 받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결국 임신 35주차에 이르러서야 인터넷에서 약물을 구입해 복용했지만, 실패했다. 심지어 그 약은 아무런 유효 성분도 들어 있지 않는 가짜 약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D씨(주부)는 이미 4명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다. 2022년 9월 임신 사실을 알았고 수술을 받고자 했으나 경제적 이유로 그러지 못했다.
이 사례들이 보여 주는 바는 영아 살해의 비정함이나 무책임이 아니다. 정보 부족, 병원의 후기 임신중지 수술 거부, 비용 부담, 임신중지 약물이 불법인 상황, 가짜 약 등 제도 공백이 취약한 여성들을 더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갔다.
임신중지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상담, 적절한 의료적·사회적 지원이 제때 제공됐다면, 또한 후기 임신중지를 위한 조처와 가이드가 의료진에게 마련돼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임신중지에 성공한 경우에도 여성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진행한 ‘입법공백 시기 여성의 임신중단 인식과 경험 연구’는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이 연구는 2019년 4월 11일부터 2024년 11월 17일까지 임신중지를 고려했거나 경험한 19~49세 여성 640명을 조사했다.
그에 따르면, 여성들 대부분은 임신중지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과 SNS를 통해 접하고 있었다. 반면, 공공기관을 통한 정보제공과 상담 이용 비율은 낮았다.
임신중지 수술을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한 487명 중에 상담이나 시술을 거부당한 비율이 20.5퍼센트에 달했다. 불쾌하거나 불편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19.5퍼센트였다.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보호자의 동의·동행을 요구하거나, 초음파 사진을 보여 주며 숙려기간을 강요하기도 했다. 이런 일은 또 다른 장벽이 된다.
여전한 장벽
임신중지 약물을 구입해 복용했다가 실패를 겪은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약물로 임신중지를 시도한 159명 중 20퍼센트가 온라인 판매사이트, SNS, 브로커 등의 경로로 약물을 구매했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런 비공식적인 경로로 구매한 경우, 산부인과를 통했을 때보다 실패 확률이 2~3배 더 높았다.
비용 문제도 여성들을 압박한다. 임신중지를 마음 먹었지만 최종적으로 하지 않은 119명 중 그 이유로 ‘높은 비용’을 꼽은 게 17퍼센트가 된다(복수 응답). 특히, 임신 중기가 넘어가면 비용이 크게 뛰었다. 연구진과 심층면접을 진행한 임신중지 경험 여성 중 임신 20주차가 넘은 경우에는 총 비용이 200만 원을 넘었다.
그런데 병원 상당수가 현금 결제를 요구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낙태가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이게 또 합법은 아니라고 했어요. 그래서 자기들도 위험 부담을 줄이려고 현금 결제를 받는 거라고 했거든요.”(심층면접자)
이처럼 처벌 조항이 사라져도 실질적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보완이 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제도 공백은 가난하고 고립된 여성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용한다.
그런데도 보수·우파는 후기 임신중지를 앞장서 비난하며 임신중지를 대폭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힘 조배숙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임신중지를 10주 이내에만 허용하자는 것으로, 사실상 ‘낙태죄’를 부활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임신중지 규제는 그 어떤 것이더라도 여성들의 고통만 키울 뿐이다.
한편,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지난 7년간 계속 원내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이야말로 이 현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이재명 정부는 임신중지 약물 도입과 법제도 마련을 국정과제로 내걸었지만, 그럴 의지와 열의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
7년 전 낙태죄 폐지와 임신중지권을 염원하며 싸웠던 여성들의 운동을 다시 발전시켜야 할 과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