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권, 국정 과제라더니 방관·회피로 일관하는 이재명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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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국정과제로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 및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약속했지만 여태 추진된 것이 하나도 없다. 대통령, 관계 부처, 입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방치하고 있다.
지난달 국정업무보고에서 임신중지약이 쟁점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뒷북치며 성평등부에 이렇게 물었다. “[먹는 임신중지약이] 현장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정부는 모른 척 방치하고 있는 상태죠?”
그러자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고작 이렇게 답했다. “식약처(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빠르게 유해성 여부를 검토하고 사용을 허용해 주길 바란다.” 여성들의 부담과 고통을 생각할 때, 정말이지 군색하고 무기력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국감에서 남인순 의원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임신중지 의약품 “불법” 판매가 2,641건에 달했다(현재는 임신중지약 거래가 모두 불법이다). 가짜약도 5만 7,000정 유통됐다. 일부 산부인과에서는 독성이 강한 항암제를 임신중지 용도로 사용했고, 800건이 넘는 부작용이 보고됐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절박한 처지에 내몰려 있는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게다가 식약처의 문제는 하루이틀 된 게 아니다. 식약처는 수년째 ‘낙태죄 대체 입법 공백’ 핑계를 대며 임신중지약 도입을 막아 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오유경 식약처장은 앵무새처럼 “법 개정 및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모자보건법 개정이 안 돼 어렵다”던 핑계와 뉘앙스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다.
앵무새
그런데 식약처는 2021년부터 6번이나 받은 법률 자문에서 대부분 ‘법 개정 없이도 임신중지약 허가가 가능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임신중지권 운동이 법 개정 없이 정부 허가만으로도 약물 도입이 가능하고 주장해 온 것과 같은 결과다. 그러나 식약처는 법률 자문 결과를 은폐해 왔다.(남인순 의원실 국정감사 보도자료)
임신중지약은 이미 100여 개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사용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005년에 임신중지약을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다. 안전성 검토를 핑계로 도입을 지연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식약처를 질타하거나 압박하기는커녕, 주무 부처인 식약처 업무보고에서 임신중지약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원민경 장관도 식약처를 정면 비판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재명은 성평등부에, 성평등부는 식약처에, 식약처는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진다. 극우 이혜훈을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지명할 때에는 “대통령의 의지”를 발휘하면서, 여성의 건강과 직결된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는 데서는 반걸음도 못 나가고 있다.
일각의 견해와 달리, 핵심 문제는 식약처 등 관계 부처의 사보타주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 자신의 열의와 의지가 희미하다는 데 있다.
국회도 무관심
국회도 임신중지 권리에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 남인순·이수진 의원 등이 임신중지권 방안들을 포함한 ‘낙태죄 대체 입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민주당은 전혀 힘을 싣지 않고 있다.
반면, 반낙태 우파는 남인순·이수진 의원 등 법안 발의에 동참한 의원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조배숙·나경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낙태 우파와 협력하며 임신 10주 이상의 임신 중지를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국힘 의원들이 발의한 그 법은, 보수적인 대한의사협회까지 나서서 “비현실적”이라고 반대할 정도로 문제적인 안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논평 한마디 없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업무보고에서 “[국회가] 기간을 정하면 그 기간 이후에는 낙태를 처벌해야 하는 상황이 오겠죠”라고 말했다. 임신중지 허용 기간 제한과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부 수장으로서 노동력 재생산과 국방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저출생’ 현상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수가 어떻든, 임신중지권에 대한 모든 처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역행한다.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임신중지권은 어떤 제약도 없이 보장돼야 한다.
결국 임신중지 권리도 기층의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