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를 행사에 초청한 국립중앙박물관 규탄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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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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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일요일 오전 9시 30분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앞에서 ‘문화 유산 파괴, 인종 학살 연루 기관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CIPA 참가 반대한다’ 기자회견이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하 팔연사) 주최로 열렸다.
휴일 이른 아침임에도 재한 팔레스타인인을 비롯해 다양한 배경의 팔레스타인 연대자 7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인 인종 학살과 문화 유산 파괴에 첨단 살상·감시 기술을 제공하는 테크니온 공대와, 그런 테크니온을 초대한 국립중앙박물관과 카이스트를 규탄했다.
CIPA 심포지엄은 문화유산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학술 행사의 하나다. 올해 30주년을 맞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문화유산 보존’을 주제로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과 카이스트가 공동 주관한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과 카이스트 당국은 이 행사에 인종 학살에 일조한 테크니온 공대를 초청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카이스트가 각각 문화체육관광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이라는 점에서, 테크니온 공대 CIPA 2025 초청은 한국 정부의 대(對) 이스라엘 교류·협력의 일환이다.
팔연사는 8월 8일 국립중앙박물관과 카이스트 당국에 공개 서한을 보내 테크니온 공대의 CIPA 2025 참가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CIPA가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기간제교사노동조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보건의료 단체들, 강남향린교회, 연세대학교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 ‘얄라 연세’ 등 대학생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와 개인들이 1인 시위도 벌였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과 카이스트 당국은 테크니온 공대 참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이에 팔연사는 테크니온 공대가 진행하는 워크숍이 열리는 행사장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이콧 이스라엘,” “생션 이스라엘(이스라엘 제제하라),” “테크니온 아웃 아웃”
“스탑 스탑 제노사이드,” “프리 프리 팔레스타인”
구호 소리가 쩌렁쩌렁 메아리치자 근처를 지나던 관람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첫 발언자로 한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건설에 앞장서 온 재한 팔레스타인인 나리만 씨가 나섰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기억 자체를 말살하려고 합니다. 테크니온 공대는 우리들의 집을 공격하고, 문화 유산을 파괴하며, 땅을 파헤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곳입니다.
“테크니온 공대 초청은 가자지구에서 200만 명 이상이 폭격 속에서 살아가며, 지금까지 6만 2,000명 이상, 그중에 수천 명의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은 학살에 대한 공범 노릇을 하는 기관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에 식민 점령자들이 여러분들의 언어·문화·역사를 지우려 했던 아픔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날 또 다른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기관에 국립중앙박물관의 문을 열 수가 있습니까?
“CIPA와 국립중앙박물관이 테크니온을 초청하고 인류의 유산을 지키는 편에 서지 않은 것을 규탄합니다.”


박정훈 고려대학교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 ‘쿠피예’ 대표는 이스라엘이 인종 청소를 벌이는데도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관들이 이스라엘과의 교류를 늘리고 있는 것을 규탄했다.
“한국연구재단은 2026년 이스라엘과의 공동 연구 사업을 추진 중이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스라엘과의 국제 공동 기술 개발 사업 신규과제 공고를 냈습니다. 서울대도 이스라엘 교육을 배우겠다며 이스라엘교육연구센터를 개소했습니다. 서울시와 경기도 등 지자체들도 이스라엘과 교류를 늘리고 있습니다. 한국 항공우주산업 KAI는 이스라엘의 최대 항공기 부품 공급처 중 하나입니다. 이들 모두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의 공범인 것입니다.
“외교부가 가자시티 점령 계획에 말로만 우려를 표하고 두 국가 방안과 같은 허상을 지지한다고 말만 하는 것은 그저 한국 정부의 책임을 면피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인종청소를 저지하길 원한다면 이스라엘과의 모든 교류를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최규진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테크니온 공대 참가 취소 요구에 응하지 않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강하게 비판해 참가자들과 관람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와 같은 [식민 지배] 아픔을 지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공감하기는커녕 그들의 상처를 짓이기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관장은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당신은 [일제에 맞서 한반도] 민중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낸 문화 유산을 답사해 쓴 책으로 부와 명예를 얻어서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정말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테크니온 공대와 이스라엘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워크숍을 당장 취소해야 합니다.”


백은진 한국역사교육학회 대외협력이사는 이날 행동이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일부라며 운동을 더욱 키워 나가자고 호소했다.
“테크니온이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운운한다는 자체가 위선입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상징인 중요한 역사 유적지와 문화 유산을 고의적으로 조준하고 파괴해 왔습니다.
“올해 2월 아일랜드 골웨이대학교가 테크니온과의 공동 연구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호주 시드니 공대도 테크니온과의 MOU를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해당 학교 학생과 교직원들이 벌인 운동의 성과였습니다.
“오늘 이 기자회견도 이러한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일부입니다. 이 운동이 이스라엘과 테크니온이 가는 곳곳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목소리에 부딪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카이스트 졸업생 와식 씨가 발언에 나섰다. 그는 모교인 카이스트에 테크니온 공대와의 교류·협력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연서를 발의했다.
“테크니온의 연구는 오랫동안 이스라엘 군대를 지원해 왔으며,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 가자지구 봉쇄 강화, 그리고 수많은 문화 유산을 파괴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인종 학살에 사용되는 기술들을 개발해 왔습니다.
“유엔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제는 거의 200여 곳의 문화 유산과 200개 이상의 모스크와 교회, 그리고 가자 중앙의 문서 보관소 파괴를 이야기하면서 이것을 문화적 인종 학살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스페인의 라리오하대학 등 여러 대학들이 이미 테크니온과의 관계를 끊었습니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큰 재정적 지원마저도 포기했습니다. 우리는 카이스트에 같은 조치를 요구합니다.”
사회자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이스라엘과의 교류를 단절하게 만드는 행동을 이어가자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 경기도와 서울시가 주최하는 반도체 산업 전시회에 이스라엘 대사관이 참가한다며, 이를 규탄하는 행동에도 적극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또한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도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팔연사의 서울 집회는 2023년 10월 7일 전쟁 발발 직후부터 시작돼 매주 계속되며 어제(23일 토요일) 97차 집회가 열렸고, 곧 100회 집회를 앞두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시티 점령 작전을 벌이며 더욱 끔찍한 인종 학살을 예고한 지금,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운동을 더욱 성장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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