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가자지구 관련 한국 외교부 논평:
말뿐인 ‘우려’와, ‘두 국가 해법’이라는 독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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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이재명 정부의 외교부가 이스라엘의 가자시티 점령 계획에 우려를 표하며 두 국가 방안 지지를 재천명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그 논평은 가자시티 점령 계획이 인도적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엄중한 우려”를 말한다. 그러나 실질적 조치는 아무것도 예고하고 있지 않다.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을 압박할 수단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대표 사례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이스라엘에 항공기 부품을 세계적으로 손꼽히게 많이 판매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카이스트는 이스라엘 군수기업을 지원하는 테크니온대학교를 이달 하순 진행되는 국제 심포지엄에 초청하려 한다.
이런 협력을 중단하는 것으로 “엄중한 우려”를 구체화할 수도 있었지만, 이재명 정부(외교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외교부 논평은 또한 “민간인 보호를 위해 당사자들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며 하마스와 이스라엘 양쪽에 대등한 책임이 있는 양 표현하고 있다. (가자시티 점령 계획에 우려를 표하는 와중에도) 현 전쟁에서 이스라엘 규탄 모양새를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를 쓴 티가 역력하다.
외교부 논평이 “두 국가 해법 실현을 저해하는 모든 조치에 반대”한다는 것도 문제적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을 반대하는 것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귀환권 요구도 문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부가 이스라엘에 대해 제한적이나마 비판적인 논평을 낸 것은 최근 프랑스·영국 등 일부 주요 서방 국가조차 이스라엘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는 현실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그 국가들은 왜 그런 것일까?
서방 열강은 이스라엘을 꾸준히 지원해 왔고, 자신들의 무기와 지원 아래 벌어지는 공공연한 학살 때문에 자신들의 “인도주의” 이데올로기와 중동에서의 영향력이 위기에 빠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례 없는 규모로 이어지고 있는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그런 위기를 더욱 키우고 있다.
또한 서방 지배자들은 중동 지배자들이 이스라엘을 말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에도 응답해야 하는 처지다. 중동 지배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하지만 이스라엘에 분노한 자국 민중이 분노의 화살을 자신들에게 돌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이 점령을 위한 대규모 군사 작전까지 펼친다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하고, 이는 서방 지배자들을 향한 불만과 이데올로기 위기에 더한층 기름을 부을 것이다. 중동 민중의 분노도 거세질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달리 프랑스와 영국, 캐나다 등 몇몇 서방 국가들은 일부 정당성이라도 다시 부여잡으려고 최근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무런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그들의 진정한 관심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이 아니라 국내외에서 자신들의 정당성과 영향력을 지키는 것이다.
두 국가 “해법”
프랑스, 영국 등의 지도자들은 오늘 9월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두 국가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 외교부의 이번 논평도 그렇다. “우리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으며, 두 국가 해법 실현을 저해하는 모든 조치에 반대한다.”

그러나 ‘두 국가 방안’은 오슬로 협정(1993년 체결)의 파산을 통해 유해한 공상임이 역사적으로 입증됐다. 이스라엘의 어느 정치 세력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진정한 국가를 허용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네타냐후뿐 아니라 이스라엘 국민 전체가 팔레스타인 영토에 배타적 유대인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념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프랑스, 영국 등 서방 지배자들은(또, 이재명 정부도) ‘두 국가 방안’에 대한 환상을 거듭 되살리려 한다. 그것이 팔레스타인 운동의 급진적 잠재력을 소진시키고 제국주의 질서를 지탱하는 데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두 국가 방안’은 결코 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 대신 기존 ‘국제 사회’에서 (실세 없는) 팔레스타인 ‘미니 국가’를 허용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1987년 팔레스타인인들의 거대한 봉기(1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 문제를 세계적으로 폭로했고, 단호한 투쟁으로 이스라엘과 중동을 뒤흔들었다. 이스라엘은 수 년에 걸친 탄압으로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평화를 위한다며 ‘두 국가 방안’에 기초한 오슬로 협정을 중재했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 운동을 분열시키며 이스라엘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결과만 낳았다.
오슬로 협정으로 수립된 팔레스타인 당국(PA: 소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은 ‘두 국가 방안’을 준수한다는 명분 아래 이스라엘을 대신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억제하는 구실을 맡았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후에도 가자지구 봉쇄, 서안지구 불법 정착촌 건설 등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멈추지 않았다.
또한 중동 지배자들은 PA에 푼돈을 제공하면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면피할 수 있었다. 1993년 오슬로 협정 후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이 이스라엘과 외교 수립에 나섰다.(사우디아라비아도 합세할 계획이었지만 2023년 10월 전쟁 발발로 무기한 연기됐다.)
한국도 오슬로 협정을 즈음해서 이스라엘과의 교역량을 빠르게 늘렸다. 역대 한국 정부가 ‘두 국가 방안’을 지지한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중동 진출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소거하는 편리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심각하게 고립돼 있고,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세계적으로 분출한 상황에서 서방 지배자들이 두 국가 방안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이런 흑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주요 서방 지도자들이 ‘두 국가 방안’을 재점화시키는 것은 네타냐후를 견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에게 퇴로를 열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는 여기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두 국가 방안’도, 이재명 외교부나 서방 국가 지도자들의 이스라엘 비판도 전혀 기대를 가질 것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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