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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가자 학살 막는답시고 유엔군 파병하자?

가자의 고통이 깊어지는 만큼 또 다른 신기루를 쫓을 여유가 없다. 최근 사망한 가자지구 기자들의 장례식 ⓒ출처 Activestills

유엔이 가자지구에 다국적 ‘보호군’을 파병해 인종 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제안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본지(지난호)는 그러한 요구가 일부 유럽 국가들의 두 국가 해법 재점화와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난달 프랑스(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두 국가 해법을 위해 가자 상황을 안정시킬 유엔 부대를 보내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유엔 부대 파병은커녕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조차 어떤 현실성을 갖고 논의될 것 같지 않다. 미국은 이번 달 유엔 총회를 앞두고 ‘팔레스타인 당국’ PA 관계자들의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8월 31일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정부가 가자지구를 직접 점령해 주민들을 내쫓고 재개발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유엔 총회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안에 적지 않다. 지난해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에 서안지구·가자지구·동예루살렘 점령을 1년 안에 끝내라고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유엔군 파병이 이스라엘의 점령 철수 불이행에 맞서는 조처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주로 국제법 전문가들이 그 기대를 부추기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조사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즈는 이미 지난 5월,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더 최근 사례로는 크레이그 모키버가 있다. 그는 2023년 11월 유엔이 인종 학살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유엔 고위직에서 사임한 인물이다. 지난달 말 그는 이번 유엔 총회에서 보호군 파병을 이끌어 낼 절차와 전술을 제시하는 글을 써서 미국의 팔레스타인 지지 매체 〈몬도와이스〉에 기고했다.

이런 기대는 8월 25일 ‘보호군’ 가자 파병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을 보호하라’라는 단체가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로도 나타났다. 거기에는 크레이그 모키버 외에도, 또 다른 유엔 출신의 국제법 학자 리처드 포크,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주도한 이스라엘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에 관여한 국제법 학자 랄프 와일드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두 국가 해법 재점화에 대해 비판적이다. 실속 없는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보호군’ 파병을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서 제안한다.

모키버는 자신이 제안하는 유엔군이 프랑스(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요구하는 유엔 부대와는 다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후자는 주로 안정화와 팔레스타인 저항의 억제를 위한 것인 반면, 자신이 제안하는 군대는 주로 구호 물자를 전달하고 이스라엘의 국제법 준수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유엔군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는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국가의 군대로 부대를 구성하면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주변 아랍 정권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친구를 자처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에 공모해 왔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를 판단할 것인가?

팔레스타인인들이 고르게 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왜 그런 선택의 기로에 놓여야 하는가. 현재 저항을 주도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조직들도 그런 개입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이는 ‘보호군’ 파병을 제안하는 사람들의 일부도 의식하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제안을 뒷받침해 줄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를 찾고, 그러다 보니 결국 ‘팔레스타인 당국’ PA의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PA가 군사 개입을 요구하는 것은 가자지구에서도 부역자 구실을 하기 위해서다. PA는 보호군을 요청하며 하마스 무장 해제를 언급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필요(그리고 요구)와 충돌하는 것이다.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다국적 ‘보호군’이 이스라엘과 정면 대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 아니라면, 현실에서 그 군대는 결국 저항을 억제하는 “안정화” 군대가 될 공산이 크다.

한편, 질베르 아슈카르는 “서방의 위선과 이중 잣대를 폭로하기 위해” 유엔의 군사 개입을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방의 위선과 이중 잣대를 드러낼 일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아슈카르는 좌파가 제국주의에 맞서 영리하게 국제법을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엔의 군사 개입을 주장하는 것은 국제법과 유엔에 대한 환상의 반영일 뿐이다. 국제법은 단지 강대국들이 이루지 못하는 약속이나 이념의 결과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국제법과 국제 기구들은 경쟁하는 각국 지배계급들의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변화의 압력을 반영할 때에도, 기존 질서의 안정을 해칠 커다란 변화를 배제하는 해법만을 제시한다.

따라서 국제법에 대한 환상을 바탕으로 운동의 필요를 국제법의 틀 안으로 한정짓는 것은 저항을 무디게 만드는 효과를 낼 뿐이다.

이스라엘 정치의 극우화가 굳어지고, 미국이 중동 통제를 위해 그런 이스라엘에 더욱 의존하는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거대한 변화다.

물론 보호군 파병 제안에는 그런 변화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과 절박함이 깔려 있다. 최근 보호군 파병 주장에 목소리를 보탠 저명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작가 수전 아불하와가 이를 잘 드러낸다.

그러나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도 봐야 한다. 가자지구를 거의 모조리 파괴했음에도 저항을 궤멸시킬 전망이 보이지 않자 이스라엘 국가는 첨예한 분열에 휩싸였다. 그러자 트럼프는 미국이 가자를 직접 점령한다는 계획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러나 트럼프 또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끈질긴 저항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세계적 급진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도 봐야 한다.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가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그것이 여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오히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노동계급과 빈민들의 반란을 인내심을 갖고 기대해야 한다. 유엔 따위의 환상을 좇을 게 아니라.

유엔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더 근본적으로, 유엔은 평화에 이바지하는 세력이었던 적이 없다. 이에 관해서는 본지의 다른 기사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본지 508호 “유엔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를 보시오.) 여기서는 ‘보호군’ 파병과 관련해서 살펴볼 만한 두 가지 사례만 짚고자 한다.

현재 국제법 전문가들이 유엔 안보리를 우회할 방법으로 흔히 거론하는 장치는 1950년 11월에 도입된 “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다. 이것은 미국이 한국전쟁 때 소련의 거부권을 우회해 유엔 총회에서 동맹들의 전쟁 기여를 이끌어 내려고 도입한 것이다.

“평화를 위한 단결”의 적용 사례로 국제법 전문가들은 1956년 수에즈 위기 때 미국이 영국·프랑스의 거부권을 우회해 유엔군을 파병한 것을 든다.

미국이 수에즈 위기 당시 영국·프랑스의 모험을 저지하려 한 것은 미국이 중동에서 영국·프랑스의 패권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즉, 이 사례에서도 “평화를 위한 단결”은 제국주의 열강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었다.

더욱이 당시 유엔군은 이스라엘이 이집트 시나이 반도를 침공한 뒤에 시나이 반도에 주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병력은 1967년 이스라엘이 주변국들과 전쟁을 벌이기 전에 철수했다. 전쟁을 막는 구실은 전혀 하지 못한/않은 것이다.

한편, ‘구호 물자를 전달한다’는 목적도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유엔의 개입은 늘 선의로 포장됐다. 1992년 말 유엔이 미국 주도로 소말리아에 개입할 때도 그랬다.

당시 소말리아는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의 개입이 낳은 오랜 기근과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소련 붕괴 후 미국은 그곳을 방치해 두다가(최악의 시점에는 하루에 2,000명이 기근으로 사망했지만 미국 정부는 모든 식량 지원을 중단했다) 불안정이 심각해져 통제력을 잃을 것을 우려해 다시 개입을 결정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그 개입이 분쟁 해소와 구호를 위한 것이고, “보호령을 세우거나 신탁통치를 하거나 나라를 운영하려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군대를 주둔시켜 분쟁을 ‘해소’한다는 논리는 정확히 그런 것으로 귀결됐다. 군벌들의 경쟁 속에서 유엔은 자신의 계획을 거스르는 세력과 전쟁을 벌이며 내전의 일부가 됐고, 그 결과 구호는 도리어 더 악화됐다.

1993년 소말리아에 투입된 유엔군의 만행. 이것이 폭로된 후에도 군인들은 그 소말리아 소년이 고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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