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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유엔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지난 3월 유엔 안보리 휴전 촉구 결의안 통과 후에도 미국은 계속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하는 미국 대표 ⓒ출처 UN Photo

비록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불발했지만 팔레스타인의 국제연합(이하 “유엔”) 정회원국 가입 표결 사건은 유엔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안에도 적지 않음을 보여 줬다.

물론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엔이 그것을 막는 데에 무력하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그전에도 이스라엘은 숱한 유엔 결의안들을 무시해 왔고 미국은 그런 이스라엘을 두둔해 왔다.

그러나 세계 평화라는 애초의 취지에 맞게 개혁할 수 있다면 유엔은 좋은 기구가 될 수 있다고 흔히 말한다. 유엔은 비판의 대상이면서도, 변화의 수단으로도 여겨진다.

가령 참여연대는 유엔 안보리 휴전 결의안 이행을 거듭 촉구하며 “유엔 등 국제사회가 이 학살을 끝내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지켜볼 것이다”고 결의를 다졌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도 5월 10일 한국 정부가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정회원국 인정 촉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을 두고 “일관되게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 종식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들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을 리 없음을 고려하면 이런 어조는 온건한 지지자들을 고려하는 것일 게다.

물론 유엔에서 그런 결의안들이 통과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국제적 연대 운동의 효과이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더욱 자신들의 대의명분을 고취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엔을 찬양·고무하거나 이런 분위기에 타협하기에는 진실이 너무 엄연하다. 유엔이 단 한 번도 세계 평화라는 대의에 이바지한 적이 없고, 그럴 수도 없는 기구라는 것이다.

유엔의 창립 목적

유엔은 제2차세계대전의 승자들이 세운 제국주의적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창립됐다.

미국·영국·소련의 지도자들은 전쟁 중에 자신들을 “국제연합”으로 지칭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자신들이 ‘해방시킨’ 인민들의 의사는 전혀 개의치 않고 세계를 분할하고자 했다. 일제 강점이 종식된 조선(한반도)도 그렇게 취급됐다.

당시 처칠은 전후 세계 분할 구상을 종이 한 장에 휘갈겨 적었다. 소련이 루마니아의 90퍼센트, 영국이 그리스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양국이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를 공동 점유한다는 것이다. 처칠이 그 쪽지를 보여 주자 스탈린은 “파란색 연필을 집어들더니 크게 체크 표시를 하고는 도로 돌려줬다. 그것을 결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것을 착안하는 데 걸린 시간과 같았다.”

미리 예상된 정확한 거래가 단지 한 장의 종잇조각으로 성사되는 그 과정은 수많은 인민의 운명을 결정한 연합국 지도자들이 얼마나 그 인민들을 멸시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종전 무렵 미국 경제는 매우 강력해서, 미국이 세계의 ‘평화’를 좌우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유엔 본부가 뉴욕에 있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유엔을 지배하는 자들

유엔은 주요 강대국의 통제하에 있도록 만들어졌다. 유엔의 진정한 실세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이다. 미국 외에 소련·영국·프랑스·중국이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을 맡았다. 상임이사국들은 이사국 다수가 동의해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나머지 국가들은 번갈아 이사국이 될 수 있지만 거부권은 없다.

미국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더 안보리 거부권 행사에 책임이 크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안을 거듭 반대해 왔다.

미국은 자신의 전략적 이익이 걸린 경우에는 필요하다면 유엔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목표를 추구해 왔다. 전 세계에 걸쳐 — 파나마·니카라과·그레나다·베트남·캄보디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 미국의 인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안보리의 다른 상임이사국들도 미국처럼 자기에게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유엔을 무시해 버릴 수 있다.

소련이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아프가니스탄·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 등지에서 대중 저항을 탱크로 진압하고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짓밟고 있을 때 유엔은 아무 일도 안 했다. 1991년 걸프 전쟁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자, 거의 동시에 소련 관료는 발트해 연안 국가 독립운동을 폭압적으로 진압하면서 미국의 공모를 뻔뻔스럽게 얻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체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도 유엔은 인권에 관한 우려를 표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 경쟁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유엔은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했다.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손도 결코 더 깨끗하지 못하다. 영국은 말라야와 키프로스, 아덴(예멘)에서 제국을 철수하면서 다시 돌아올 때의 길을 내는 셈 치고 고문 같은 야만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프랑스 제국도 베트남과 알제리에서 철수할 때 똑같은 짓을 했다. 아프리카의 프랑스 제국은 야만의 극치를 이루는 독재 정부의 형태를 취했다.

중국은 1989년 톈안먼 광장의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버리고 발포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티베트인과 위구르인 등 자결권을 요구하는 소수 민족을 잔혹하게 탄압해 왔다.

요컨대 유엔이란 그저 두 가지 역할 가운데 하나를 행하도록 돼 있었다. 주요 강대국들이 합의를 보는 경우 유엔은 그들의 이익 추구를 정당화해 주는 깃발을 제공해 준다. 주요 강대국들이 분열돼 있으면 유엔은 마비된다.

유엔의 전과

2010년 아이티의 유엔군. 군사적 필요와 부유층 보호를 중시했고, 구호 활동에는 무능했다 ⓒ출처 Nicolas Jolliet

유엔 안보리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에 부딪히지 않고 참전한 극히 드문 사례가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쟁 때 미군은 유엔군으로서 개입했다. 한국전쟁은 소련이 표결에 기권한 채 벌어진 미국과 소련·중국의 제국주의 간 전쟁이었다. 미군은 15개국의 동맹들을 거느리고 유엔 깃발을 달고 왔다. 그때 ‘다국적’이라는 외피는 “유엔 사령관” 맥아더의 휘하에 200만 명이 넘는 미군에다가 구색 갖춘 국가들의 4만 군대를 덧붙이는 것으로써 유지됐다.

이후에도 유엔은 ‘평화 유지’라는 명분으로 민족 해방 투쟁을 약화시키거나, ‘감시’ 임무라는 미명하에 강대국의 이익에 따른 충돌을 방관·묵인하는 데 거듭 이용됐다. 예컨대 1960년 콩고가 독립했을 때, 콩고의 급진화를 우려한 미국은 그곳의 유엔군을 이용해 민족 운동 지도자 파트리스 루뭄바를 납치·살해했다.

다른 사례로 1969년 유엔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나미비아 점령이 불법이라고 선언해 놓고 1980년대 말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미비아인들이 자기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직전에 이르자 유엔은 휴전을 감독한다며 군대를 파견했다. 유엔군은 나미비아 독립투사들을 무장 해제시켰고, 남아공 군대가 그들을 학살하는 것을 묵인했다. 물론 그것이 독립을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는 해방 운동의 일부를 분쇄하고 남아공 정부에 더 협조적인 나미비아 정부가 들어서는 데 일조했다.

유엔의 방조는 특히 중동에서 두드러졌다. 유엔의 최초 행동은 1947년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내놓은 것이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의 30퍼센트를 차지하던 유대인 정착자들은 팔레스타인 토지의 6퍼센트를 소유했다. 유엔은 이들과 팔레스타인인 모두를 위한 ‘정의’를 약속해 놓고 시온주의자들에게 토지의 55퍼센트를 부여하는 안을 제시했다. 그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온주의자들이 테러로 80만 팔레스타인인을 살던 곳에서 쫓아내고 팔레스타인 땅의 80퍼센트를 수용해 버렸을 때 유엔은 아무 일도 안 했다.

그후 유엔군은 1956년 이스라엘이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침공한 뒤에 시나이반도에 주둔했고, 1967년 이스라엘이 주변국들과 전쟁을 벌이기 직전에 철수했다. 그 뒤 1973년 전쟁 이후에 미국은 아랍 국가들의 석유 금수 조치를 철회시키기 위해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키고 유엔군을 다시 시나이반도에 주둔시키려 했다.

1978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뒤에 투입된 유엔 평화유지군은 이스라엘군을 레바논에서 철수시키는 권한을 위임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축출하고 현지 파시스트들을 동원해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할 때 유엔군은 슬며시 사라졌다. 2000년에 이스라엘군을 철군케 한 것은 결국 헤즈볼라였다.

냉전 후에도 유엔의 기능은 달라지지 않았다. 1991년 이라크를 상대로 한 미국의 걸프 전쟁은 유엔의 이름으로 치러졌다. 평화유지군도 서방의 영향력을 지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을 때가 흔했다. 말리에서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한동안 그곳의 친프랑스 정부를 떠받치는 구실을 했다.

유엔의 개혁

유엔을 개혁할 수 있다는 기대는 그런 국제 기구가 제국주의 열강의 바람과는 다르게 구성될 수 없다는 현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유엔은 그 구조와 목표, 자주 드러내는 무능으로 볼 때 제국주의의 산물로 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엔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기아를 낳는 시스템의 일부인 것이다.

지난해 9월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유엔 의사 결정에 더 많은 국가를 참여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유엔이 그렇게 개조된다고 해서 지금과 다르게 행동할 리는 만무하다. 앞서 언급한 콩고의 루뭄바 암살에는 스웨덴인과 아일랜드인 유엔 병사들이 가장 많이 연루됐고, 2004~2017년 아이티에 파견된 유엔 평화유지군을 주도한 것은 브라질이었다. 세계의 어느 지배계급도 자신의 국경선 내에서 결코 인자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이 국경 밖에서는 인자할 것이라고 기대해야 할까?

국제연맹과 코민테른

코민테른 제3차 대회에서 연설 중인 레닌

국제공산당, 즉 코민테른 창립대회는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을 “자본가들의 신성동맹”이며 “약탈과 착취와 제국주의 반혁명의 연합”이라고 묘사했다.

볼셰비키는 그런 기구들에 매우 적대적이어서, 그런 것들에 반대하는 것을 코민테른 가입 조건의 하나로 명시했다.

코민테른에 소속되고자 하는 정당은 모두 사회애국주의[요즘 말로 좌파적 민족주의 — 이원웅]뿐 아니라 사회평화주의[요즘 말로 좌파적 평화주의]의 불성실성과 위선의 가면을 벗겨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럼으로써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를 혁명으로 전복하지 않고는 국제 중재 법원 따위가, 군비 축소 회담 따위가, 국제연맹의 ‘민주적’ 개편 따위가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보여 줘야 한다.

유엔이란 그 회원국 모두가 손에 피를 묻힌 기관이다. 이 자들의 행태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대중적 항거이다.

유엔 외교가 아니라 현지의 저항과 대중적 항의 운동이 베트남 전쟁을 끝냈다.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과 식민 지배도 제국주의 질서에 맞선 노동자·빈민의 반란으로만 끝장낼 수 있다. 다른 어느 것도 그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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