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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이 강대국들의 “보호 책임” 파병에 기대를 걸어야 하나

2011년 2월 말, 리비아 혁명의 중심지 벵가지에 걸린 외국군 개입 반대 현수막. 그때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인종 학살이 계속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일각에서 가자지구에 다국적군이 개입하라는 촉구가 나오고 있다.

그 전에도 이런 촉구는 전쟁 발발 후 국제 법률가들 사이에서 간혹 나왔지만,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런 개입을 주도할 서방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을 정치적·재정적·군사적으로 적극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의 주요 단체인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8월 23일 다국적군 파병을 촉구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발표했다.

그 글을 쓴 뎡야핑 활동가(이하 존칭 생략)는 23일 긴급행동 집회에서, 다국적군 파병이 기근과 학살을 끝낼 “최소한의 노력”이라며 “2005년 채택된 ‘보호 책임’ 조항에 입각해 유엔 총회가 유엔 안보리의 비토를 우회”해 “구호 물자를 실은 해군을 파병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그로부터 하루 반나절 뒤인 8월 25일 오전에는, 긴급행동의 공식 SNS 중 ‘블루스카이’(트위터와 유사한 SNS) 계정에도 유엔 안보리에 다국적군 파병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 당국(PA)의 호소 일부가 번역·게시됐다.

이런 촉구는 최근 유럽 국가들이 두 국가 ‘해법’을 재점화하는 맥락 속에서 제기된 것이다.

8월 11일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유엔의 ‘보호 책임’에 의거해 “테러와의 전쟁,” “구호와 안정을 위한 통치 체제 수립” 등을 위한 다국적군을 가자지구에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뎡야핑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긴급행동은 마크롱의 말이 아니라 유엔에 파견된 팔레스타인 당국(PA) 대표의 촉구를 인용한다. 그 촉구는, PA 총리 무함마드 무스타파가 지난 7월 말 프랑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관한 두 국가 ‘해법’ 관련 유엔 행사에서 한 발언에 기초한 것이다.

“가자지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땅 전체의 통치권은 PA에게 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통치를 중단하고 무기를 PA에 넘겨야 한다. 그래서 PA는 유엔 안보리가 위임한 보호 책임의 일환으로 다국적군을 파병해 달라고 요청할 준비가 돼 있다. PA와 그 보안 병력이 그 다국적군을 지원할 것이다.”

PA의 촉구 자체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에 맞선 저항을 이끌고 있는 하마스의 무장 해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는 너무 절망한 나머지, 프랑스 같은 강대국(‘국제 사회’)이 ‘보호 책임’을 발휘하면 가자지구의 극심한 기아를 완화할 수 있는 ‘현실적’ 길이 열린다는 기대를 거는 듯하다.

그러나 ‘보호 책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외피

‘보호 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정부를 상대로 ‘국제 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정책 기조로, 그전까지 강대국의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던 ‘인도적 개입’ 논리를 더 강화한 것이다.

‘인도적 개입’은 미국이 주도한 나토의 1999년 발칸반도 폭격, 2000년대 초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에 명분으로 쓰였다. 하지만 국제 반전 운동이 부상하며 그 명분의 허구성을 들춰 내자 유엔이 2005년에 제시한 것이 바로 ‘보호 책임’이다.

그것의 성격을 구체화한 것은 친미 우파 반기문이다.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에 재임하며 《보호책임의 이행》(2009)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보호 책임’의 요소로 “경고, 제재, 무기 유입 제한” 등 비군사적 개입과 함께 “신속대응군 투입”을 꼽았다.

현실에서 그런 힘을 발휘해 타국에 개입할 능력이 있는 것은 제국주의 강대국들뿐이다.

그래서 ‘보호 책임’은 (특히 서방)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그들에게 이용됐고, 그들의 이해관계가 갈리면 내팽개쳐졌다.(이는 ‘보호 책임’을 천명한 유엔도 마찬가지다. 관련 기사 본지 508호 ‘유엔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2011년에는 유엔 안보리가 ‘보호 책임’을 명분으로 리비아에 개입했지만, 2021년에는 ‘보호 책임’에 따라 미얀마에 개입하라는 일각의 촉구는 무시됐다. 미얀마를 두고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재앙으로 끝난 리비아 “보호 책임”

‘보호 책임’이 적용된 첫 사례인 2011년 리비아의 경험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아랍 혁명이 독재자들을 잇달아 타도하자 서방 국가들은 중동 통제력을 되찾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 혁명의 물결이 리비아에 이르고 독재자 카다피가 이를 잔혹하게 탄압하자, 유엔 안보리는 ‘보호 책임’을 근거로 개입을 결정했다. 나토의 기치하에 영국·프랑스·캐나다 등이 리비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리비아에 포탄과 크루즈미사일을 퍼부었고, 미국은 이 전쟁을 “배후에서 이끌었다.”(오바마 자신의 표현)

그렇게 카다피가 제거되면서 생긴 권력 공백을 서로 경쟁하는 군벌들이 메웠다.

서방은 평범한 리비아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친서방 과도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리비아는 이내 두 정부로 쪼개져 내전에 휩싸였다. 둘 모두 리비아를 두고 경쟁하는 강대국들의 대리자 구실(트리폴리의 국민통합정부(GNA)는 유엔·미국·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았고, 동부에 수립된 정부는 프랑스·UAE·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았다)을 했을 뿐, 어느 쪽도 평범한 리비아인들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았다.

서방이 약속한 “재건” 노력은 이뤄지지 않았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 아이〉에 따르면 영국은 2011년 리비아 폭격에 3억 2,000만 파운드(약 5,300억 원)를 썼지만 인도적 지원에는 그 뒤 5년을 통틀어 그 5퍼센트도 쓰지 않았다.

현재 리비아는 유럽연합의 지원하에 북아프리카 난민의 유럽 유입을 막는 국경 경비대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리비아는 붙잡히거나 쫓겨난 난민들을 사고파는 인신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

요컨대 리비아에서 ‘보호 책임’은 서방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해 줬을 뿐, 평범한 리비아인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 왔다.

지금은 다를까?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한다는 사람들이 ‘보호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이런 서방의 개입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고 운동을 무장 해제되게 하는 문제가 있다.

물론, ‘보호 책임’을 제기하는 팔레스타인 지지 측 사람들도 그런 문제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2011년 보신각에서 열린 서방의 리비아 폭격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공동 주최자로 참여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보호 책임’을 제기하는 것은 그만큼 가자지구의 상황이 절박하기 때문일 텐데, “국제법상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호소는 현 상황에서 저항과 연대가 이스라엘을 물리칠 수 없다는 절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서방의 개입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인종청소에 실패한 탓에 건국 이래 상시적 저항에 시달리며 거듭 위기를 겪어 왔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심각한 정당성 위기와 분열을 겪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운동이 ‘보호 책임’ 발동에 기대를 거는 것은 이스라엘을 살리려는 강대국에 기대를 걸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지지하는 것과 배치된다.

유럽 강대국들이 파견하는 다국적군은 구호 물자를 싣고 이스라엘의 저지선을 돌파해 팔레스타인인들의 기아를 완화하는 구호 군대가 아니라, 구호와 안정을 빌미로 이스라엘 대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무장을 해제하는 군대가 될 것이다.

마치 2007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이후 레바논 남부에 투입된 유엔평화유지군(UNIFIL)처럼 말이다.(한국도 동명부대를 파병했다.) 당시 UNIFIL은 이스라엘을 패퇴시킨 레바논 저항 세력 헤즈볼라의 무장을 해제하는 데에 주력했고, 그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았다.

그 “평화유지”군은 이스라엘이 2024년 레바논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을 때, 그것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UNIFIL은 자신들의 기지가 이스라엘에 의해 의도적으로 공격당해도 반격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가자지구에 대한 다국적군 파병이 실현될 가능성은 무망해 보인다.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이를 거부하고 있고, 유럽 강대국들이 정말로 미국의 “비토를 우회”할 것 같지도 않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당장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절박성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2011년 리비아 개입 때도 똑같은 절박성의 논리가 동원됐다. 목이 마르다고 소금물을 들이킬 순 없는 노릇이다.

여지껏 네타냐후가 전범으로 처벌되지 않는 것에서 보듯, 국제법은 이행을 강제할 힘이 없고, 이번 가자 전쟁에 대해서도 국제법은 서방과 이스라엘의 이데올로기적 모순을 폭로하는 구실 이상을 하지 못했다.(관련 기사: 본지 336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국제법은 자본주의를 위한 것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오히려 국제법의 지평에서는 보이지 않는 일들이다.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은 서방의 제국주의적 개입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그것이 촉발한 국제 연대 운동으로 제국주의와 맞서는 데에 매진해야 한다. 그리고 특히, 아랍 세계에서 자국 정권과 그 지역의 제국주의 질서에 맞서는 노동자·빈민 대중의 거대한 투쟁이 벌어지기를 바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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