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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트럼프의 선불 대미 투자 압박,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 7월 말에 합의된 듯했던 한미 관세 협상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말 미국의 관세를 2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낮추는 것으로 합의했다. 대신에 한국 정부는 미국 조선업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마스가’ 프로젝트를 포함해 미국에 3,500억 달러(약 500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3,500억 달러의 투자·운용 방식과 수익 배분 등을 놓고 양국 간에 여전히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7월 말 합의 때 한국 정부는 “3,500억 달러 대부분이 보증과 대출 성격이고, 현금은 극히 일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9월 4일 미국과 일본이 관세 협상을 타결하면서 한국의 처지는 어려워졌다. 미국 정부가 대일 관세 협상 관련 행정명령에서, “일본 정부가 미국에 5,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고 이 투자는 미국 정부가 선정할 것”이라고 규정하고는,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합의를 하라고 종용했다. 미국 상무부장관 하워드 러트닉은 “일본 모델을 수용하지 않으면 25퍼센트 관세를 내라”며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이재명 정부는 미국 측의 약간의 양보를 성과로 포장하려 할 것이다 ⓒ출처 대통령실

게다가 9월 25일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의 대미 투자가 “선불”이라고 말해 불을 질렀다. “일본에서는 5,500억 달러, 한국에서는 3,500억 달러를 받는다. 이것은 선불이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가 3,500억 달러를 선불로 납입하라고 요구하자 한국 정부는 난색을 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요구를 수용할 시 금융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미국 요구에 동의했다면 탄핵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3,500억 달러는 지난해 한국 GDP의 20퍼센트가 넘고, 한국 외환보유액(약 4,200억 달러)의 85퍼센트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한국 정부가 이 돈을 트럼프의 남은 임기 3년 안에 나눠서 낸다고 해도 매년 1,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분납해야 한다. 일본의 대미 투자 5,500억 달러가 일본 GDP의 13퍼센트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에 대한 요구가 더 부담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3,500억 달러를 마련하려고 하면 원화 환율이 급등하며 또다시 외환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이 1년에 쓸 수 있는 외환보유고가 최대 150억~200억 달러라고 말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20원을 넘어선 것에는 한국 기업들이 달러를 모으고 있는 것이 한몫 하고 있는데, 이는 대규모 대미 투자로 환율이 더 오를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대미 투자의 조건으로 일본처럼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요구했다. 통화 스와프는 자국 화폐를 상대국 중앙은행에 맡긴 뒤 미리 정해 둔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외환 거래 방식이다.

그러나 미국은 통화 스와프 체결 요구를 거부해 왔다. 통화 스와프는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체결되는 것인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현재 유로존과 영국, 일본, 스위스, 캐나다처럼 그 통화가 국제적으로 꽤 통용되는 국가들과만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맺고 있다. 현재 트럼프 정부는 연방준비제도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지는 못하는데, 연방준비제도도 자신이 시장 논리에 더 충실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한국의 원화처럼 국제적으로는 거의 통용되지 않는 통화와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극우 정부와 2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해 주기로 한 것과는 대조된다. 앞서 봤듯이, 한국의 대미 투자 금액도 GDP 비중으로 비교해 보면 일본보다 크다. 그만큼 트럼프 정부는 이재명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며 이재명 정부를 더 강력하게 압박해서 미중 사이에서 더 확실하게 미국 편에 서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재명 정부는 이달 말 열리는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관세 협상을 타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미 간 논의를 이어 가는 중이다. 10월 15일에는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를 만나 추가 협상을 했다. 협상 후 베선트는 “한국과의 이견이 해소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향후 열흘 안에 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고 19일 귀국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협의 결과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며 “APEC을 계기로 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타결될 협상안에 대한 예측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통화 스와프 체결 가능성뿐 아니라 투자금을 10년간 나눠서 내는 방안, 투자처 선정에 한국 정부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안, 원금 회수 때까지는 수익 분배를 공정하게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예측이 실제 얼마나 맞을지는 당연히 불확실하다(트럼프가 제왕적으로 행동하고, 한국 정부 관료들이 정직하지 못하므로). 통화 스와프 체결 가능성은 아마 크지 않을 것이고,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투자 시점을 일부 늦추는 것 등을 성과로 포장할 가능성이 클 듯하다.

한국 정부가 대미 투자를 거부하지 않는 이유

트럼프의 “선불 투자” 발언이 알려진 뒤 상당수 한국 언론들은 “패전국에나 할 요구”라며 트럼프 비판 보도를 쏟아냈다. 한국 대기업들의 신문인 〈한국경제〉도 사설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동맹국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돈만 밝히는 나라가 돼 가는지 보수·진보를 떠나 혀를 차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느니 차라리 대미 관세 25퍼센트를 두들겨 맞고 수출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는 게 더 이득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대미 투자 약속 철회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보복이 관세 25퍼센트로 그칠 리가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정부가 대미 투자를 지속하려는 이유에는 트럼프의 “전액 선불” 요구가 과장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가 너무 강경한 협상 전술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실제로, 미일 협상을 주도한 일본 경제재생 장관 아카자와 료세이는 트럼프의 선불 발언이 나온 후인 10월 2일 AFP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5,500억 달러 투자 중 “실제 투자 금액은 1~2퍼센트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대출과 대출 보증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또다시 반복했다. “일본이 관세를 낮추기 위해 5500억 달러를 선불로 줬다”는 트럼프의 주장과 배치된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투자한다면 어찌 됐든 기회가 생긴다고 여긴다 ⓒ출처 현대자동차그룹

물론 한국 정부가 선불로 직접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투자 손실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출이나 대출 보증이라고 하더라도 투자가 부실화되면 손실을 전적으로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반면 미국 정부는 투자처를 자신들이 결정하면서도 손실을 책임질 위험이 전혀 없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손실 위험을 어느 정도 지더라도 대미 투자는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정부나 기업이 얻을 게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7월 말에 이미 한국 정부는 ‘마스가’ 프로젝트를 먼저 제안하는 등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제조업 부흥을 외치며 육성하려고 하는 분야들이 한국의 경쟁력 향상에도 꼭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백악관은 미일 합의에 관한 설명 자료에서 대미 투자가 에너지, 반도체, 핵심 광물, 의약품, 조선업,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의 분야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이 분야들은 한국도 중국·일본·유럽 등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산업들이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은 미래 신산업이자 국방력 증강에도 꼭 필요한 산업이지만, 한국이 독자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는 쉽지 않은 분야들이다. 미국과 함께 투자한다면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길 것이다.

“핵심 광물”은 희토류를 뜻하는데, 희토류는 중국이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는 미국을 공격하는 주요 카드가 되고 있으므로, 한국으로서도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때마침 10월 13일 미국 최대 은행 그룹인 JP모건체이스도 희귀 광물, 조선, 원자력, 양자컴퓨팅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마 중국 정부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방침이 자극이 된 듯하다. JP모건체이스는 10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하고, 대출이나 채권 발행 등으로 향후 10년간 총 1조 5,000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대규모 대미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예컨대 현대차는 조지아 현대차 공장 습격과 노동자 집단 구금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260억 달러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미국 내 투자 의지를 재차 밝혔다. 현대차는 사드 배치 이후 중국 시장에서 거의 완전히 밀려나서 미국 시장의 중요성이 각별히 커졌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 정부가 이 같은 현대차의 행보가 관세 협상에서 한국을 불리하게 만든다고 보고 현대차를 강하게 질책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HD현대중공업이 한화오션에 이어 미국 조선소 인수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처럼, 한국 지배계급은 트럼프 정부의 압박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미국에 협력하고 있다. 한국 지배계급은 미중 간의 무역 갈등 격화가 한국 제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일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미국 시장만을 고려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트럼프 정부의 과도한 투자 요구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미국과 협력해야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세계 시장에서도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미 투자가 실제로 성공할지는 아무도 낙관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대미 투자금을 마련해야 할수록, 투자 손실이 발생할수록 그 부담을 노동계급에 전가하려고 할 것이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대미 투자 자금을 모으려면 한국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충분해야 한다며 기업을 옥죄는 정책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한국 정부의 재정 여력이 충분해야 위급할 때 국채 등을 추가로 발행할 수 있다며 민생 회복 소비 쿠폰 같은 복지 예산에 쓰는 돈을 줄이라고도 했다.

이런 친기업·긴축 정책의 부담은 결국 노동자 등 서민층(대부분 노동계급이다)에게 전가될 것이다.

IMF 외환위기 때의 경험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외환위기로 ‘한국이 망한다’는 생각이 많았지만, 그 위기가 미친 영향은 계급별로 차이가 컸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쫓겨나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부유층은 그렇지 않았다. 언론에는 강남의 부유층이 “이대로”를 외치며 늘어나는 부를 주체하지 못하고 흥청망청하는 것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번 대미 투자도 비슷한 것이다. 대미 투자가 성공하면 그 이윤의 일부가 한국 자본가들에게도 돌아갈 테지만, 실패한다면 그 부담은 전적으로 노동자 등 서민층에게 전가될 것이다.

투자 철회 요구

국민 10명 중 8명이 미국의 3,500억 달러 선불 요구가 부당하다고 여긴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러자 최근 한국 좌파 일부는 “대미 투자 철회”를 제기하며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진보당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와 정당 연설회 형식의 집회를 열고, “대미 투자 철회 선언으로 미국의 약탈적 협상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전농 등이 주도하는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은 ‘트럼프 사과, 대미 투자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별도로 대미 투자 철회 서명 운동과 기자회견, 선전전, 집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추석 연휴 전날인 10월 2일에는 진보당 국회의원들이 민주당,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동맹 무시, 경제 침탈 미국 규탄’ 기자회견을 연 뒤 미국 대사관 측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앞서 9월 25일에는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65명이 대미 투자 요구 철회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재명 정부가 트럼프 정부의 과도한 요구에 압박을 받으면서도 버티고 있고, 조국혁신당과 민주당 국회의원 일부가 대미 투자 철회에 동의하자, 위 언급된 좌파들도 대미 투자 철회 운동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좌파 애국주의자들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과 대미 투자 압박이 “약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관세협상에서 ‘약탈적 요구’를 할 수 있는 이유가 한미 전쟁동맹이라는 “종속” 때문이라며, 이참에 미국의 “약탈적” 대미 투자 요구와 “종속적인’ 한미동맹 모두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한다.

좌파적 애국주의는 계급협조주의를 키운다 ⓒ출처 민주노총

분명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의 무역·재정 적자 감소와 제조업 육성을 위한 부담을 우방국들에게 떠넘기는 ‘이웃 거지 만들기’ 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나 그런 횡포를 두고, “약탈”이라거나 “종속”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미국의 강제보다 한국의 자발성이 더 주된 측면이 된 지 오래다.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경제적·군사적 힘을 사용해 다른 국가들을 압박하는 것은 현대 제국주의 체제의 일상사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압박이 다 약탈, 종속시키기인 것은 아니다. 지금 미국은 자기 이익을 관철하려고 한국뿐 아니라 유럽, 일본, 캐나다 등 서방 동맹국들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국가들이 미국의 종속국은 아니다. 중간 규모의 강국이 된 한국의 지배계급은 나름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미국의 압박에 불만을 품어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 협력을 선택하는 것이다.

좌파 애국주의자들의 대미 투자 반대 논리는 좌파 나름의 국익론에 근거해 있다. 좌파적 “국익”론은 지배계급이 말하는 국익과는 다르다. 자본가들과 고위 국가 관료들은 자기들에게 이로운 것이 국민 모두에게 “국익”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좌파적 국익론은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 등 서민층의 이익을 가리키고, 국가가 이들의 이익을 제대로 신경 쓰지 않고 있음을 비판한다. 예컨대, 지금 좌파 애국주의자들은 대미 투자 철회와 국내 투자 증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좌파적 국익론도 공통 이익(국익)의 존재를 가정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국가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좌파적 국익론에도 모순과 한계가 많다. 한국인의 공통 이익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도 중요하게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투자 철회와 국내 투자 증대 요구는 수출 시장 다변화론으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김재연 진보당 대표는 “수출 시장 다변화와 주권 수호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면 투쟁 자제, 임금 억제 등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국가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희생과 양보를 해야 한다는 논리에 취약해지기 십상인 것이다.

좌파적 국익론에 기초한 좌파적 애국주의는 비타협적인 노동계급 투쟁을 강조하지 않고, 계급을 초월한 국민적 동맹을 추구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가령 조국혁신당의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3500억 달러 투자 요구가 “수탈과 예속을 강요하는 것,” “투자 협정의 외피를 두른 불평등 조약”이라고 비판하면서, “대통령이 국회를 지렛대 삼아 당당하게 협상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자”고 했다. 안타깝게도 진보당은 이런 조국혁신당,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하며 계급 동맹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이재명 정부가 대미 투자를 약속한 것은 미국과의 협력이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미 투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질수록 민주당과 이재명도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노동자 등 서민들이 고통을 부담하도록 하는 데에 나설 것이다.

이런 대미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계급 협조주의나 동맹 추구로 노동자들이 계급적 투쟁에 나서기 어렵게 만든다.

한편, 노동당은 한미 관세 협상이나 대미 투자 약속으로 한국 정부와 자본이 피해만 본다는 주장을 옳게 거부한다. “한국 자본 또한 일종의 공모자이며 한국 정부는 이런 한미자본의 공조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만 문제 삼지 말고, 대미 투자로 이득을 보려 하고 만약 손해를 보면 그 부담을 전가하려 하는 한국 자본도 비판해야 한다고 옳게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당은 비타협적 계급투쟁 대신에 국내 투자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물론 그 국내 투자를 “공공투자 및 공공서비스 대폭 확대”로 제시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지배계급 모두가 치열한 세계적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미국에든 국내에든 투자해야 한다고 보고 좌파의 지배적 부분이 계급간 타협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정부의 대대적인 공공 서비스 확대 등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현 정세 속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물론 앞으로 대미 투자에 대한 공분이 대중 저항으로 나타나 커진다면 “대미 투자 약속 철회”를 요구하며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점이 아닌 듯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재명 정부의 친미 입장을 비판하고 관세 협상이나 국방비 증액 등 한미 관계에서 생긴 부담을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 떠넘기려 하는 것을 폭로하고 비타협적(계급 동맹 반대라는 뜻에서) 투쟁을 설득하는 것이다. 막대한 대미 투자에는 돈을 쉽게 쓰려고 하면서도, 임금 인상이나 복지 확충 등에는 인색한 한국 정부와 자본가들에 맞서, 노동자들이 생활수준을 지키고 긴축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도록 고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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