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 폭탄 정책에 힘 실어 준 한미 관세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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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한덕수 내각은 서둘러 한미 관세 협상을 시작했다.
애초 트럼프는 관세 등 경제 문제와 방위비 등 안보 쟁점을 함께 다루겠다며 “원스톱 협상”을 말했었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안보 쟁점은 제외됐다. 이는 관세 정책이 시장 충격을 낳으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동맹국들을 상대로 신속히 협상을 타결해 성과를 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신속히 협상에 나선 것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힘을 실어 주는 셈이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 노동자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힘들어지고 한국뿐 아니라 미국·중국·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이미 해고가 증가하거나 증가할 위험이 커지는 등 세계 각국에서 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는 미국에 “맞대응하지 않겠다”며 트럼프와 타협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이번 협상에서 한국 측은 무역 불균형 해소와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협조하겠다고 했다. 또, 미국 해군력 강화를 위해 트럼프가 원하는 대미 조선업 투자 확대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알래스카 LNG 사업 투자 등을 언급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가 여러 양보 조치들을 내놓자, 미국 측은 “한국과 매우 성공적인 양자 회의를 했다”고 흡족해 했다.
그러나 조선업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미 해군력 증강에 일조하는 것은 미중 간 군사적 갈등 위험을 키우는 짓이다.
또한 알래스카 LNG 사업은 미국의 석유 대기업들도 투자를 꺼리는 사업이라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이런 손실은 결국 복지 삭감 등으로 한국 노동계급에게 전가될 수 있다.
이번 협상에서 한미 양국은 앞으로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에 대한 논의도 의제에 올리기로 했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약값 상승 등 이윤을 위해 환경과 공공 서비스를 후퇴시키는 논의가 전개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세계적인 공급망을 뒤흔들어 세계경제가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는 특히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이라 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한국 정부가 관세 문제에서 미국과만 협상하는 것은 아니다.
관세 갈등이 심화되는 와중에 한국 기업주들은 중국과의 관계에도 신경 쓰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압박이 커지던 지난 3월 30일, 한중일 산업통상장관회의가 한국에서 열렸다. 그 회의에서 한중일FTA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한중일의 이해관계가 같지 않기 때문에 한중일FTA가 단기간에 체결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협상 재개 자체가 미국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또, 3월 말에 삼성 회장 이재용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을 만나 여전히 중국 시장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럼에도 한국 자본가들은 한미 동맹을 좀 더 중시한다. 게다가 그들은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일정 수준에서 강화되는 것은 자기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조선·반도체·자동차 산업 등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기술적 우위의 기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대중국 관세로 인해 한국의 배터리 기업들이 득을 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주들은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정부의 지원이 강화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여긴다.
이미 윤석열하에서 정부는 막대한 기업 감세 혜택을 주고,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담은 반도체법을 통과시키고, 주 52시간제를 후퇴시키며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재정 지출은 계속 줄이면서 말이다. 이런 공격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탄핵 전 윤석열 정부는 미중 갈등 심화 속에 한미동맹을 강화하며 대중적 반감을 산 바 있다. 이번 협상은 윤석열 없는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매국 협상?
민주당은 이번 협상이 “국익을 위협”한다며 협상을 중단하고 한덕수는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과 진보당도 “내란 공범” 한덕수, 최상목이 협상에 나설 자격 없다며 “매국 협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처벌받아야 할 쿠데타 방조 정부가 노동계급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협상을 진행하며 미국의 부당한 압박에 순응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 자본가 계급은 미국에 종속된 세력이 아니고 자기 나름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실상 민주당도 한덕수와 최상목을 탄핵하지 않는다. 미국과 협상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한미 협상에 실제로 타격이 갈 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 것이다.
민주당이 감세 정책과 반도체 산업 지원 강화 등에서 국민의힘과 협력한 것도 기업을 지원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협상을 “매국” 프레임으로 비판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특히, 지배계급 내 ‘애국적인’ 일부와 단결할 수 있다는 애국주의적·계급협력적 대안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것 때문에 세계 여러 곳에서 기업주들과 노동자들이 협력해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며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애국주의적 대안은 노동자 등 서민의 삶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자국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자들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압력을 거부하기 어렵게 돼 결국 노동자 등 서민에 대한 고통 전가가 강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애매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국익’ 개념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심화하는 경제·지정학 위기 속에 노동자 등 서민의 삶을 지키려면 노동자 투쟁과 국제적 연대가 전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윤 시스템 자체에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