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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팔레스타인·이란전쟁 극우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현장 르포
극우의 인큐베이터, 잠실 올림픽공원 시위 현장을 가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에서 2주 넘게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 시위의 성격에 대한 여러 혼란된 관측이 있다. 본지 김준효 기자가 여러 날 동안 집회장에 방문해 그 속내를 살펴 봤다.

극우의 “인큐베이터”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 시위대 ⓒ김준효

9호선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 앞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1,000원에 파는 노점상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깃발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처음 오는 사람들 노리는 상술이지.” 지하철역을 나서는 사람들이 숙덕거리며 준비해 온 깃발을 꺼내 든다.

올림픽공원 동문에서 핸드볼경기장까지 가는 길 내내 시위 참가자들이 주민들 곁을 활보한다. 대형 성조기를 두르고 왁자지껄 떠드는 청년들 곁으로 유모차를 끄는 여성이 지나간다. 유튜브를 보며 벤치에 앉은 청소년들 옆에서 손으로 쓴 “CCP(중국공산당) OUT” 팻말을 든 중년 여성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그들은 깃발로 서로의 존재를 식별하고 “파이팅”, “멸공”을 인사로 주고받는다.

만남의광장에서 핸드볼경기장으로 건너가는 육교 난간에는 온갖 손팻말이 빼곡하다. “공산당 OUT 중국 OUT”이라고 적힌 종이 옆에 “2026년은 나라 지키는 마지막 기회”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길목 전체가 그들의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꾸며져 있다.

‘DIY 구호판 만드는 곳’이라고 내걸린 가판대에는 몇몇 사람들이 상주하며 빈 종이에 쉼 없이 구호를 적는다. “‘부정선거 재선거’ 라고 크게 적으세요.” “자유 대한민국 지켜야죠.” 길 가던 사람들도 저마다 한두 장씩 적어서 들고 가거나 두고 간다.

쉼 없이 구호를 적으며 육교 난간에 종이를 붙이고 있다 ⓒ김준효

종이가 어느 정도 쌓이면 ‘자원봉사자’가 이를 수거해 일일이 내용을 살펴보고 곳곳에 부착한다. 내용에 따라 붙이는 위치도 달라진다. “윤석열이 옳았다 간첩 OUT” 같은 구호는 길목 잘 보이는 곳에, “대통령님 바른 민주주의를 만들어 주세요” 같은 구호는 구석진 곳에 붙인다.

통제

자생성의 한 꺼풀 외피 아래 치밀한 통제가 작동한다.

집회의 중심 장소인 1-3게이트 앞에는 수백에서 많을 때는 천 단위의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이들은 집회의 공식 구호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연거푸 외치고 애국가를 부르는 것만 할 수 있다. 다른 구호를 외치거나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들의 견제를 받아 주변부로 밀려난다. 언성이 높아지기라도 하면 어디선가 “우리끼리 분열하면 안 된다”며 핀잔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극우 유튜버들이 대열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킬문TV’ 같은 자들은 아예 봉고차 위에 올라서서 확성기를 들고 지시를 내린다. “빈자리 없이 서 주시길 바랍니다. 외신들이 여기를 계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를 선창하는 ‘킬문TV’ ⓒ김준효

지난해 대학가에서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를 하며 폭력을 행사한 젊은 극우들이 대열에 섞여 호응한다.

구호를 따라 외치는 사람들 중에는 30~40대 청장년이 많은데,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10~20퍼센트 가까이 됐다. 혼자 온 사람은 소수이고 대개 일행이 있다. 개중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나눠 주는 성조기와 태극기를 양손에 받아드는 사람도 있지만, 태극기만 골라서 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선거가 첫 투표이고 그 날이 첫 시위 참가라는 20대 여성 A씨도 그렇게 태극기만 들고 서 있었다. A씨는 성조기를 들면 “우리나라를 지키는 뜻이 흐려질까 봐” 우려해 태극기만 들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성조기를 들고 옆에 서 있던 A씨의 어머니는 복잡한 표정으로 딸을 쳐다봤지만,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 어머니의 가슴팍에는 윤석열 얼굴이 그려진 뱃지가 달려 있었다.

물품을 나눠 주고 길안내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초심자들이 부담 없이 대열에 섞일 수 있도록 외피를 씌우는 구실을 한다. 참가자 응대, 물품 운반 등을 세밀히 분업해 움직이는 솜씨가, 대형 교회 같은 곳에서 대규모 행사를 여러 차례 운영해 본 듯 능숙했다. 단체복을 입은 사람들이 중간중간 섞여 지시를 내리는데, ‘자원봉사자’를 나타내는 녹색 테이프를 붙여 옷에 적힌 소속을 가렸다.

이런 외피는 초심자들이 적은 시간대일수록 쉽게 벗겨진다.

저녁이 되면 교회에서 단체로 참가한 사람들이 예배를 한다. 둥글게 서서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하는 100여 명의 무리가 너댓 개씩 생긴다. “성전”을 부르짖는 목사의 옆에 커다란 이스라엘 깃발을 세운 무리도 있다. 찬송가를 연주하는 연주자 곁을 지나며 찬송가를 따라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적잖았다.

때로는 폭력성이 맹렬하게 터져 나온다. 젊은 극우들이 ‘수상한’ 사람을 둘러싸고 “‘멸공’ 해 봐, XXX야!” 하며 욕설을 퍼붓는 광경도 심심찮게 보인다. 어느 민주당 친화적 유튜버가 잠입을 시도하다가 ‘자원봉사자’에 의해 적발되자, 극우 시위대 수십 명이 모여들어 고성을 질렀다. “빨갱이 꺼져!” “저 새끼 잡아!” 당장이라도 뭇매를 놓을 듯한 기세에 그 유튜버는 몸을 피해야 했다.

휴식을 취하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참가자들이 수근댔다. “저 자식 우리한테 극우 프레임 씌우려고 왔네.”

배양

구호를 외치는 구역이 아닌 곳에서 참가자들이 대화를 나눈다.

극우는 유튜버나 향우회가 보낸 푸드트럭들(보낸 사람 이름은 대개 가려져 있고, 참가자들의 입소문으로만 알 수 있다) 앞에 줄을 서서, “뜻있는 시민”이 우등버스 네 대를 대절해 마련한 휴식 냉방차나 나무 그늘에서, 운영자 측이 경기장 주변에 쳐 놓은 텐트에서 더위를 피하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초심자들을 교육한다.

혼자 혹은 두셋이 온 청년들이 어색하게 서 있으면 성조기를 두르고 혐중 손팻말을 든 극우 시위대가 스스럼없이 다가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온갖 주장을 전도하듯 쏟아낸다.

극우는 날로날로 폭로되는 선관위의 어처구니 없는 행태에 이런저런 숫자와 통계 용어를 곁들여, 왜 ‘저들’이 부패했는지 열변을 토한다. 음모론으로 범벅이 된 그 장광설에서 ‘저들’은 선관위이자, 이재명 정부이자, 기성 언론이자, “대진연(대학생진보연합) 빨갱이들”이자, 북한의 남파 간첩들이다.

음모론은 기성 권력층에 대한 불신을 설명해 주고, 좌파 적대(“빨갱이는 죽여도 돼”), 이민자 혐오 등을 연결시켜 준다. 음모론은 극우에 입문하는 마중물 구실을 한다.

(이승만) 각하가 4·19로 지킨 대한민국을 더럽히는 시진핑의 수족 이재명”을 욕하는 노인의 단호한 태도에 군복 입은 청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극우의 주장이 앞뒤가 안 맞는 온갖 엉터리라는 점보다 그의 단호한 기세가 훨씬 중요했다.

1주일 휴가를 내고 6월 7일부터 매일 시위에 나왔다는 30대 남성 B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도 처음엔 잘 몰랐어요. 사흘째였나, 유튜브 보는 어르신 한 분이 알려 주셔서 많이 배웠어요. 광화문에 매주 나가시는 분이래요.”

B씨는 그 대화로 “마라탕·탕후루 먹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입맛을 탓하는 것은 아니었다. “젊은 사람들이 중국 문화에 젖어서 프레임에 쉽게 휘둘리는 거에요.”

그는 한때 할리우드에 있던 “문화 권력”을 이제 중국이 잠식하고 있고, “중국인과 조선족의 침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즘 안산이나 시흥은 난리도 아니에요.” 안산에 산다는 그는 중국 동포 때문에 자기 지역구에서 보수 후보가 졌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인천에서 왔다는 어느 50대 여성도 맞장구쳤다. “싹 청소해야 돼요.”

혐중 주장이 버젓이 유통된다 ⓒ양효영

B씨에게 올림픽공원은 숨통을 틔워 주는 곳이다. “솔직히 직장에선 이런 얘기 못하죠.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잖아요.” 때마침 “한미공조 국제수사” 구호를 외치며 옆을 지나가는 20대 남성 셋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저 친구들이 학교에서 저런다고 생각해 봐요. 당장 쫓겨날걸요?”

독자 구호를 외친다는 이유로 전날에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밀려났었다는 그 세 남성들은 이번에는 또 험한 꼴을 당하지 않으려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열을 누비며 구호를 외치던 것이었다. 그러자 그 뒤로 그들의 구호를 따라 외치는 사람들이 붙어, 몇십 분 만에 규모가 100명 가까이로 불었다. 그 셋은 통제를 우회할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B씨는 이렇게 말했다. “하긴 저 말도 틀린 건 아니죠. 어차피 부정선거 할 건데 재선거 해서 뭐 하겠어요. 다 잡아 족쳐야지.”

B씨는 직장과 동네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에 회사 가면 여기서 들은 얘기 좀 해 보려고요. 중국 프레임 바꿔야죠.” 그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집회장을 떠나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태극기와 성조기를 보란 듯이 흔들었다.

귀가하는 집회 참가자들 사이사이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연락처를 교환하고 카카오톡 채팅방에 서로를 초대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다음 날 다시 보자며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여성 참가자는 올림픽공원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할 때까지 성조기를 당당히 흔들었다. 그 다음 역에서 탄 승객들이 성조기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혀를 끌끌 차기 전까지 말이다. 누군가가 “뭐야, 왜 저런 걸 들고 다녀” 하고 투덜거리자, 그녀는 얼굴이 빨개져 성조기를 주섬주섬 가방 안에 감추었다.

6월 6일, 극우 단체 자유대학의 대변인 심재홍은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올림픽공원 집회를 “새로운 씨앗을 우파의 새로운 그룹으로,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가 인큐베이팅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한 주가 지나고 자유대학은 집회의 주도권을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치는 더 선명한 극우들에게 빼앗겼지만, 이 집회는 극우가 아직은 극우가 아닌 청중을 동원하고 자신의 지지자들과 운동을 “인큐베이팅”하는 수단으로 무르익었다.

거기서 배양되고 있는 극우들이 일터에, 지역 사회에, 캠퍼스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투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에 필요한 주장과 과제를 제시하고 반(反)극우 운동을 건설하는 좌파의 과제가 엄중하다.

시위대는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구호를 쉼 없이 외친다 ⓒ김준효
핸드볼경기장 주변에 잘 보이는 곳에 나붙은 구호들 ⓒ양효영
윤석열 계엄 지지 극우가 버젓이 활보하고 있다 ⓒ양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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