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국민주권주의 비판 제2부: “국민주권정부”의 국민주권 이념과 실천
〈노동자 연대〉 구독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를 “국민주권정부”로 규정하며,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국정 비전으로 내세운다. 이재명 정부의 정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기반으로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 전략을 추구하며, 참여민주주의를 정당성 확보와 사회 통합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방위산업 등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국민성장펀드와 산업금융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과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이 글은 국민주권주의를 순전한 허구로 치부하지는 않는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권 확대, 노동시간 단축, 군·경 통제 강화는 만약 실현된다면 실질적 내용을 담은 개혁이다. 그러한 개혁은 노동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의 조건을 개선하고, 권위주의적 정부 운영을 제약하는 효과가 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러한 개혁이 노동자에게 생산과 투자에 대한 직접적 통제권을 넘겨주지 못하고, 군·경이 사회 위에 군림하는 전문 강제기구라는 본질을 폐지하지 못하며, 국가기구를 대중의 직접적인 자기통치 기관으로 대체하지도 못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에서는 노동자의 협상권이 확대되지만, 생산수단과 기업 경영권은 여전히 자본가에게 속한다. 산업정책에서는 (메가프로젝트에서 보듯이) 공적 자금과 국민 자금이 전략산업 투자에 동원되지만, 투자 결정권과 이익 통제권은 여전히 국가관료와 금융기관, 기업 경영진의 몫이다. 경찰정책에서는 외부 감시와 민간 통제가 강화되지만, 경찰의 물리력과 국가 질서 유지 기능은 유지되며 오히려 조직 역량이 보강된다. 군사정책에서는 불법 계엄 방지를 위한 개헌을 포함한 제도적 통제가 추진되는 동시에, 국방예산과 미사일·드론·인공지능 전력, 방위산업(이하 무기산업)이 확대된다.
이 네 분야(경찰·군대·산업·노동)는 국민주권주의의 기본적인 모순을 보여 준다. 국민은 국가의 주권자로 선언되지만, 경제와 국가 강제력의 일상적 운영에서는 결정권을 거의 갖지 못한다. 국민주권주의는 대중의 실질적 민주주의 열망을 표현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와 국가권력의 독점성을 은폐한다.
1.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의 이중성
이재명 정부는 공식적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국정 비전 전면에 내세운다. 이 비전 아래 통합과 참여의 정치, 국민과 소통하는 정부, 군대에 대한 민주적·제도적 통제, 혁신경제, 자본시장 개혁, 생산적 금융과 신산업 규제 재설계가 맞물려 있다. 국민주권주의는 민주적 정치제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부의 경제·행정·안보 정책 전체를 합리화하는 포괄적 원리로 자리매김돼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제헌절(2026년 7월 17일) ‘빛의 위원회’ 출범 기념 행사 연설에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에 맞선 시민들의 행동을 ‘빛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이재명 정부가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매년 12월 3일을 법정공휴일인 ‘국민주권의 날’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같은 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지만, 국민주권은 일상에서 직접 행사되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실현된다고 밝혔다. 선거는 대리인을 선출하는 절차이며, 선출된 공직자가 국민을 위해 권한과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국민주권의 일상적 형태라는 설명이다.
이 설명은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국민주권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것은 루소식 직접주권이라기보다 의회주의적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민주권이다. 국민이 국가의 원천적 주권자이지만 실제 정책 결정과 집행은 대통령, 국회, 국가관료와 전문기관이 담당한다. 시민 참여는 대의제의 작동을 보완하고 정부의 책임성을 높이는 장치로 자리매김된다.
국민주권이라는 개념 자체는 대중의 민주적 염원에 부합한다. 계엄을 좌절시키려고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간 사람들과 그 후 윤석열 탄핵을 부르짖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헌법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가사로 한 노래에 맞춰 손팻말을 흔들고, 확성기와 육성으로 이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그들이 이 노래를 부른 것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적 요건을 전혀 갖추지 않은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조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주권이 권력자나 군대가 아닌 ‘국민’에게 있음을 단호하게 선언하기 위해 이 헌법 조항을 방패이자 무기로 삼은 것이다. 이 노래(제목: ‘헌법 제1조’)는 2008년 촛불집회 때부터 널리 불리기 시작해,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집회 등 대규모 반권위주의 집회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다. 노동계급에게도 선거권,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부를 비판하고 교체할 권리 등 국민주권과 직결된 권리들은 중요한 권리다.
그러나 거리에서 계엄을 저지한 시민들이 국가와 경제의 일상적 운영까지 통제하게 된 것은 아니다. 대중은 이재명 정부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다시 정책의 대상이자 단순한 의견 제출자로 돌아갔다. 주요 산업의 투자 방향, 산업 구조조정, 군비지출, 경찰력 배치, 국가재정의 우선순위는 여전히 선출되지 않은 국가관료, 대기업 소유주, 금융기관이 결정한다.
국민주권주의의 이중성이 여기에 있다. 국민주권주의는 대중이 실제로 행사한 민주적 힘을 인정하면서도, 그 힘을 국가의 합법성과 정통성 쪽으로 넘긴다. 대중이 국가를 직접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투쟁으로 탄생한 정부가 국민을 대표해 통치한다.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은 국민주권주의가 아무런 현실도 반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주권주의가 어떤 현실(실재)을 표현하고 가리는지, 어떤 계급관계를 보편적 국민의 의지로 치환하는지 분석한다.
2. 이재명 정부의 이념: 자유주의, 발전주의, 참여민주주의
이재명 정부의 정치 이념을 참여민주주의 하나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정부는 적어도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하고 있다.
첫째, 자유주의 정치 이념이다. 여기에는 국민주권, 보통선거, 권력분립, 법치, 기본권, 대의제, 책임정부가 포함된다. 검찰·경찰·군대·감사원 등 권력기관을 개혁하고, 선출된 민간 권력의 통제를 강화하며, 헌법 질서를 침해한 세력을 처벌하는 일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국가자본주의적 발전주의이다. 이재명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 국가가 산업 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재정과 정책금융을 투입하며, 메가프로젝트에서 보듯이 전략산업 기반시설을 지원하고 규제를 재편해 민간의 자본 투자를 유도한다. 물론 개입의 목표는 기업 경영권을 노동자에게 일부라도 넘기거나 필요에 따라 생산을 민주적으로 계획하는 데 있지 않다. 대기업의 생산성, 수익성, 수출경쟁력, 기술력을 높여 자본 축적을 촉진하는 것이 진짜 목표다.
셋째, 부차적으로 참여민주주의다. 시민 의견 수렴(가령 부동산 토론에서 온라인 의견 청취), 숙의 공론, 타운홀 미팅, 정책 제안, 공개 회의와 집단지성을 주장한다. 이 참여민주주의 요소는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관료 지배보다 진보적일 수 있다. 그러나 시민 참여는 대체로 기존 국가의 정책 결정에 의견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친다. 주요 생산수단과 국가 강압기구에 대한 직접적 통제권은 결코 시민에게 넘기지 않는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의 참여민주주의를 전적으로 형식적인 장식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 참여는 자유주의적 대의제와 자본주의적 경제성장 전략에 종속돼 있다. 참여는 통치의 주체를 바꾸지 않은 채 통치의 정당성을 개선할 뿐이고, 시민은 정부를 대체하지 않고 정부가 더 잘 통치하도록 돕는다. 참여민주주의는 가장 온건하고 보수적인 형태의 개혁주의인 것이다.
3.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문제 제기
마르크스주의는 국민주권주의를 왕권이나 군부독재와 아무 차이도 없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봉건적 특권과 절대군주제에 맞서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는 원리를 확립한 것은 거대한 역사적 진보였다. 보통선거와 민주공화국은 노동자와 피억압자가 조직을 결성하고 투쟁하는 데 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법적·정치적으로 평등한 국민이 경제적으로도 동등한 사회적 주체라는 가정을 거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모두 한 표를 행사하는 국민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고,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통제하며 타인의 노동을 지휘한다. 노동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지만, 자신이 일하는 기업의 이사회 구성, 투자 계획, 생산량, 고용 규모, 자동화 방식 등은 결정하지 못한다.
국민주권주의는 정치 영역에서 개인들이 형식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사회 전체로 확대한다. 그 결과 사회는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으로 분열된 사회가 아니라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하나의 국민 공동체로 묘사된다. 계급적 적대는 국민 내부의 이해관계 차이와 갈등으로 치환되고, 국가는 그 차이를 공정하게 조정하는 중립적 기관으로 비친다.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국가를 사회에서 독립된 도덕적·자유주의적 실체로 취급하는 사상을 비판했다. 그리고 자유의 목표는 국가 자체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 위에 군림하는 국가를 사회에 완전히 종속시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레닌은 자본주의 국가의 한 형태인 민주공화국이 상대적으로 가장 발전한 민주주의를 제공할 수 있으나, 자본주의적 착취가 설정한 좁은 한계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빈곤과 노동에 시달리는 다수 노동자는 정치에 참여할 시간과 자원이 부족하다. 반면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지배계급은 자본, 언론, 교육, 조직력을 동원해 정치 과정에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모순은 선거가 허구라는 것이 아니다. 선거는 실질적 권리이며 그 결과에 따라 정부와 일부 정책이 바뀐다. 진짜 모순은 정치 영역의 형식적 평등과 경제 영역의 실질적 불평등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국민주권주의를 평가하려면 국민이 누구를 선출할 수 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통제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4. 국가와 자본의 구조적 상호의존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국가가 자본가의 단순한 대리인이라는 주장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국가는 특정 기업인(들)의 의지를 대신 행하는 대행 기구가 아니다. 국가는 개별 자본가를 규제·처벌하고 세금을 부과하며, 노동자에게 양보하거나 때로는 특정 산업을 국유화한다. 정부는 지배계급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장기적 안정을 위해 개별 자본의 단기적 요구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는 자본 축적의 성공에 구조적으로 의존한다. 기업 투자가 감소하고 경제가 침체하면 고용과 세수가 줄어 재정이 압박받고, 정부 지지율도 떨어진다. 자본 유출과 금융 불안은 환율, 물가, 국채 시장, 국가 신용을 위협한다. 정부가 자본가에게 직접 지시를 받지 않더라도 수익성, 투자 환경, 시장 신뢰, 국가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압박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는 개별 자본가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지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부터는 자율적이지 못하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도 이런 이중성을 보여 준다. 정부는 재벌과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고, 노동자의 교섭권을 확대할 수도 있다. 동시에, 정부는 첨단산업 투자, 자본시장 활성화, 기업 생산성과 수출경쟁력을 국정의 핵심 목표로 삼는다.
이재명 정부가 기업 성장과 투자 확대를 추구하는 까닭을 대통령 개인의 친기업 성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국가의 일상 행정을 관리하는 정부는 자본 축적과 세수, 경제 성장을 필요로 한다. 이 구조적 의존성이 노동·산업·경찰·군사 정책의 한계를 규정한다.
5. 경찰개혁과 국가 강제력
5-1. 경찰국 폐지와 정치적 중립성
경찰국 폐지는 윤석열 정부가 행정안전부를 통해 경찰을 직접 통제하려 했던 구조를 정상화하는 개혁이었다. 경찰이 정권의 당파적 도구로 전락할 위험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독립한다고 해서 국민에 대한 민주적 책임이 곧바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행정안전부의 직접 통제에서 벗어난 경찰은 자체 관료 조직과 수사권을 바탕으로 더 비대해진 조직적 자율성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런 위험을 보여 준 사례가 경찰의 장윤기 사건 축소 시도였다. 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경찰 내부비리 근절과 외부 통제 강화를 내세운 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인사·감찰 제도의 보완과 민간 참여 확대였다.
정부 대책은 경찰 부패를 조직 내부의 ‘썩은 부분’, 즉 일부 경찰관의 유착과 비위, 감독체계의 실패로만 본다. 해결책도 비리 경찰 적발과 처벌, 감시기구 및 인사제도 개선에 치중해 있다. 물론 구체적인 부패 행위자·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부패가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 경찰 부패는 단지 도덕성이 부족한 개인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막강한 강압 권력을 가진 전문 조직이 보통 사람들로부터 분리돼 있기 때문에 반복되는 것이다.
경찰은 시민과 대등한 관계에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다. 수사, 체포, 구금, 정보수집 등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할 권한을 독점한다. 시민은 경찰의 결정에 복종하도록 강제되지만, 정작 경찰 조직의 일상적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권력의 이 비대칭성이 조직 보호와 은폐의 조건을 만든다. 경찰관은 자신들의 판단과 행위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와 법적 권한을 독점한다. 상명하복의 위계와 폐쇄적인 인사 구조는 외부 비판보다 내부 충성을 우선시하게 만든다.
5-2. 자유주의적 경찰 개혁의 한계
자유주의적 경찰 개혁은 경찰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전문적이고 청렴하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기관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시민과 민간 전문가가 심의위원회에 참여하더라도 경찰관을 직접 선출하거나 소환하지는 못한다. 외부 조사 기구가 경찰의 잘못을 사후에 조사할 수는 있으나, 노동자 등 보통 사람들이 경찰의 예산, 인사, 정보 수집, 집회 대응 방식을 일상적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자유주의적으로 추진되는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경찰의 강제력을 대중에게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전문 경찰 조직의 강제력이 법적 절차 안에서 올바르게 행사되도록 감독하는 방식이다. 통제 대상은 경찰권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경찰권의 오·남용이다. 그러나 경찰은 누구의 질서를 지키는가? 경찰이 살인, 강도, 폭행, 절도 등의 범죄에 대응하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므로, 경찰의 모든 활동을 지배계급의 이익 보호로만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경찰은 기업주의 경영권과 자본주의적 질서를 지킨다. 파업 현장에서 기업 시설과 출입을 보호하고 점거와 봉쇄를 해산하며, 연좌농성자, 철거민, 이주민, 시위대에 법적 강제력을 행사한다. 기존 법질서가 생산수단과 부의 소유, 사용자의 경영권과 국가의 행정명령을 ‘정상적인’ 권리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공장을 점거하면 경찰은 노동자의 생존권과 기업주의 소유권 중 어느 쪽을 법적으로 집행할지 선택해야 하는데, 자본주의하에서는 소유권과 경영권이 우선적 법적 권리로 보호된다.
따라서 경찰을 청렴하게 만드는 것과 경찰의 계급적 기능을 바꾸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부패하지 않은 경찰도 파업을 해산하고 소유권을 집행한다.
5-3. 마르크스주의적 대안
마르크스와 레닌은 파리 코뮌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경찰과 관료제를 (단순히 감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적으로 다른 조직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마르크스는 근대 국가가 상비군, 경찰, 관료제, 사법기관을 갖춘 중앙집권적 권력으로 발전했다고 지적했다. 파리 코뮌에서는 경찰이 정부의 독립적 도구라는 지위를 잃고, 코뮌에 책임을 지며 언제든 소환될 수 있는 기관으로 바뀌었다. 행정 관리와 재판 담당자도 선출직으로서 책임을 지고 소환될 수 있어야 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자유주의적인 ‘민주적’ 통제에서는 선출된 정치인과 위원회가 전문 경찰조직을 감독한다. 반면 코뮌(과 소비에트) 민주주의에서는 강제와 행정 기능을 담당하는 주체들이 일터와 지역의 노동대중에게 직접 책임을 지고 소환된다. 혁명적 방식은 (범죄와 폭력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전에 필요한 기능을 일터와 지역 노동대중의 민주적 자치조직 아래 두는 것이다. 이는 경찰이라는 사회 위의 특수한 권력 기구를 유지한 채 외부 위원회를 덧붙이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6. 군부 개혁과 군사력 증강
6-1. 윤석열 군사 쿠데타 미수 사건의 경험과 군에 대한 민간의 통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당시 군대가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동원된 경험은 이재명 정부의 군사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이후 위헌적 계엄과 군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제도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물론 이는 당연한 민주적 개혁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군 개혁은 군대 규모나 군사적 기능의 축소가 아니다. 정부는 ‘국민의 군대’와 함께 ‘첨단 강군’ 육성을 지향하며, 국방예산과 첨단 전력, 무기산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이재명 정부의 군사정책은 두 가지 지향점을 동시에 지닌다. 한편으로, 군이 국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헌법적 통제와 정치적 중립을 강화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의 전투 능력과 첨단 무기, 미사일·드론·인공지능 역량을 극대화한다. 국내 정치 개입은 원천 차단하되, 대외적 군사력은 대폭 강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국민의 군대’는 국민이 군을 일상적으로 직접 통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군대의 지휘체계는 여전히 위계적이며, 국방부와 군 수뇌부가 작전과 조직을 결정한다. 국민은 대통령과 국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군을 통제한다. 위법 명령 거부권과 민간 통제가 강화되더라도 병사들이 지휘관을 선출·소환하거나 군사작전과 무기체계를 결정하지는 못한다.
‘국민의 군대’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헌법에 복종하고 선출된 민간 정부의 지휘를 받는 군대를 뜻한다. 이는 군사독재나 군사반란보다는 명백히 진보적이지만, 노동자 국가의 ‘무장한 인민’과는 다르다. 파리 코뮌은 상비군을 폐지하고 ‘무장한 인민’으로 대체했다. 대의원(대표자) 등 공직자는 선출과 소환의 대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코뮌의 이러한 조치가 단순히 기존 국가기구를 민주화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민주주의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비군이 존속하는 한 무력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집단은 사회 다수로부터 분리된다. 민간 정부의 지휘를 받더라도 군대는 명령과 복종, 비밀주의, 전문 장교단과 독자적인 조직문화를 유지한다.
윤석열 군사 쿠데타 미수 사건은 이러한 상비군과 국가기구가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비상계엄에 가담한 몇몇 지휘관을 처벌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왜 몇몇 지휘관이 수많은 병력과 무기를 동원할 수 있었는지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문제의 근본 원인은 그대로 남는다.
6-2. 군사력과 자본 축적의 융합
군사력 강화는 무기산업 육성과 직결된다. 국민성장펀드의 첨단산업 지원 대상에 무기산업이 포함됐으며, 정부는 드론 전투실험을 국내 드론산업 발전의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군사비는 단순한 국가안보용 지출을 넘어 산업정책의 기능도 하는 것이다. 무기 개발과 수출, 군사기술, 그리고 조선·항공·전자·인공지능 기업의 성장이 맞물린다. 이 과정에서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험은 기업에 시장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국가의 안보 이해관계와 무기산업의 이윤 추구가 서로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군비 증강을 국민 안전과 국익을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하지만, 노동자 등 서민이 얻는 안전과 무기산업이 얻는 이윤은 결코 같지 않다. 군사비 증가는 복지, 공공의료, 주거, 기후 대응에 투입할 재원을 잠식한다. 첨단 무기 도입은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 군비 경쟁과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도 크다.
결국 국민주권주의는 군사력과 무기산업 확대를 국민 모두의 공동 이익(“국익”)으로 포장한다. 군사정책을 둘러싼 계급적·산업적 이해관계와 아류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경쟁은 ‘국익 중심 안보’라는 수사 뒤로 가려진다.
6-3. 헌법을 지키는 군대와 국가 간 경쟁
현대 자본주의에서 군대는 영토 방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국가는 시장, 원료, 수송로, 기술, 동맹, 해외 투자와 국제적 영향력을 두고 경쟁한다. 군사력은 이 경쟁을 뒷받침하는 수단이다. 이재명 정부의 군비 증강도 외교 관계, 미·중 경쟁, 북한 핵무장, 동아시아 군사 질서와 분리해 이해할 수 없다. 각국은 군사력 강화를 방어용이라고 설명하지만, 한 국가의 방어력 증강은 타국에 위협으로 인식된다. 각국이 방어를 강화할수록 군비 경쟁과 전쟁 위험은 커진다.
국민주권주의는 노동자를 각자의 국민국가에 결속시키는 효과를 낸다. 한국 노동자와 주변국 노동자 사이의 (계급적) 공통 이해관계보다 한국 국가의 지정학적 경쟁과 군사적 이익이 (“국익”의 이름으로) 우선시된다. 이런 결속 효과 속에서 군비 증강과 경쟁은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국내적으로는 헌법에 충성하고 대외적으로는 강력한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춘 군대를 지향하는 국민주권주의는 군사주의와 짝을 이룬다.
7. 산업정책과 자본 축적
7-1. 국민성장펀드와 전략산업 육성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전략에서 가장 상징적인 정책 중 하나는 국민성장펀드다. 정부는 이를 시중 자금을 부동산이나 단기 금융상품에서 생산적 산업으로 이동시키는 ‘금융대전환’으로 설명한다. 국가가 금융과 산업의 방향을 설정하고 민간 자본을 장기 투자로 유도하려는 취지다.
분명 이 정책은 신자유주의와는 다르다. 국가는 시장의 결과를 사후적으로 조정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전략적으로 육성할 산업을 직접 결정하며 공적 신용과 재정을 활용해 투자 위험을 분담한다. 그러나 국가 개입이 곧 사회주의나 진보적 개혁 조치를 뜻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점은 국가가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누구의 통제 아래 개입하는가다.
7-2. 공적 위험과 사적 지배
국민성장펀드에서 국가는 리스크(위험)를 떠안는 역할을 한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장기 자금을 제공하고, 일부 국민참여성장펀드에서는 재정이 손실을 우선 부담한다. 국가는 민간 자본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투자를 꺼리는 첨단산업에 자금을 공급한다. 연구개발의 불확실성, 대규모 기반시설 비용, 긴 투자회수 기간을 사회적으로 분담해 기업 투자를 촉진한다.
그러나 국가가 위험을 떠안는다고 해서 기업 소유권·경영권이 공공으로 이전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지원을 받은 기업도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주와 경영진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며, 특허와 기술, 이윤을 지배한다. 손실은 재정과 정책금융, 국민투자금으로 분산되지만, 성공에 따른 결정권과 이윤은 사적으로 집중된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국가 개입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국가는 사회 전체의 자원을 동원해 축적 조건을 만들지만, 생산에 대한 직접적 지배는 자본가에게 남겨 둔다.
7-3. ‘국민 참여’의 금융화
국민참여성장펀드에서 국민 참여는 투자자로서의 참여다. ‘국민’은 생산 계획을 토론하고 기업 경영자를 선출하는 대신 금융상품에 가입한다. 이 참여는 민주적 참여와 성격이 다르다. 펀드 가입자는 투자 대상 산업을 세부적으로 결정하거나 기업의 고용·노동·환경 정책을 통제하지 못하며, 투자 수익을 기대하고 위험을 분담하는 개인 투자자가 될 뿐이다. 국민주권이 금융 참여로 치환되는 것이다. 국민은 전략산업의 소유자나 통치자가 아니라 국가가 설계한 축적 프로젝트의 자금 제공자이자 수익(극히 일부) 공유자로 참여한다. 국민의 집단적 권력은 개인의 금융투자 선택으로 전환되고 축소된다.
이러한 방식은 계급적 차이를 은폐한다. 모든 국민이 비슷한 액수의 금융자산을 보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투자 여력이 충분한 사람은 더 큰 이윤을 얻지만, 생활비가 부족한 노동자는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소액 투자에 그칠 수밖에 없다. 국민 모두에게 열려 있는 금융상품이라는 형식은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한다.
7-4. 전략산업과 국가경쟁력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무기산업, 로봇, 미래차 등은 단순한 소비자 편익용 산업이 아니다. 세계 시장에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적 분야다. 이재명 정부의 산업정책에서 국가는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는 생산 계획 기구라기보다, 한국 자본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자원을 집중하는 집합적 자본가(‘총자본가’) 역할을 한다.
인공지능 투자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인간의 자유시간을 늘릴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이 소수에 의해 지배되는 조건에서 인공지능은 노동자 감시, 노동 강도 강화, 인력 감축을 통한 이윤 증대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발전은 기술적 성과를 가져오지만, 대규모 전력·용수·토지와 공공 인프라를 요구한다. 그 비용과 환경적 부담은 보통의 국민이 떠안게 된다. 무기산업은 국민성장펀드의 지원 대상에 포함돼 있다. 전쟁과 국제적 군비 경쟁이 자본 축적의 기회로 이어지는 셈이다.
산업정책은 생산력 발전이라는 진보적 가능성과 자본 축적 및 제국주의 경쟁이라는 파괴적 속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어느 쪽이 지배적일지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통제 방식에 달려 있다.
7-5. ‘국민경제’라는 탈계급적 활동
정부는 산업정책을 국민경제의 재도약, 국가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과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한다. 이러한 미사여구 속에서 기업의 성장, 국가 경쟁력, 국민의 이익은 하나로 통일된다.
그러나 기업의 성공이 노동자의 성공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기업이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생산성을 높이면 주주에게는 높은 이윤이 돌아가지만, 노동자에게는 인력 감축과 노동 통제 강화가 돌아올 수 있다. 수출이 늘어도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질일 수 있으며, 전략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은 교육·보건·돌봄·주거와 기후 대응에 투입할 공적 자원을 감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성장시키고 누구의 필요를 위해 생산할 것인지, 성장의 비용과 이익은 누가 부담하고 전유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국민성장”이라는 이재명 정부의 개념은 이러한 계급적 질문을 “국민 모두의 공동 성장”이라는 미사여구로 은폐한다. 산업정책에 반대하거나 환경·노동 문제를 제기하는 주체는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집단으로 매도당하기 쉽다.
이것이 산업정책에서 국민주권주의가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이다. 특정한 자본 축적 전략이 국민 전체의 의지와 이익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 쟁점은 첨단기술과 산업 발전 자체가 아니라, 생산력 발전을 누가 담당하고 어떤 사회적 목적에 종속시키는가다. 투자와 기업 운영에 대한 대중적 통제 장치가 없는 국민성장펀드는 국민이 경제를 지배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국가가 국민 자원을 동원해 자본 축적을 지원하는 도구에 머물 뿐이다.
8. 노동정책의 개혁성과 한계
8-1. 노동자는 권리의 주체이지만 생산의 주권자는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을 단순히 노동자를 기만하기 위한 수사로 치부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 원청 교섭권 확대, 노동쟁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 노동시간 단축, 산업안전 규제 강화 등은 일관되게 시행된다면 노동자 조직과 투쟁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법이 제대로 적용된다면 하청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여지가 다소 커진다. 기업이 복잡한 하청구조와 법인 분리를 이용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 온 관행에도 제동이 걸린다. 파업에 대한 천문학적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위축시키던 부작용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는 제대로 시행된다면 노동계급의 조직 조건과 교섭 조건을 다소 개선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고 노동조합 활동 시간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다. 원청 교섭권 확대는 하청 노동자가 형식적 고용주를 넘어 실질적 결정권자에게 직접 요구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러한 개혁을 단지 허구로 일축할 수 없다. 그러나 개혁의 범위는 임금노동 관계 내부에 머문다. 가령 개정 노동조합법은 노동자가 더 나은 조건으로 자본가와 교섭할 권리를 확대할 뿐,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노동자에게 넘겨주지는 않는다. 원청이 교섭 의무를 지더라도 생산량, 투자, 공장 이전, 자동화, 외주화, 사업 철수, 해고 등을 최종 결정하는 권한은 여전히 기업에 속한다.
노동자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조건을 협상할 수 있지만 생산의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기업 경영진이 무엇을 생산할지, 어디에 투자할지, 어느 공장을 폐쇄할지, 어떤 노동을 기계로 대체할지를 결정한다. 노동자는 결정이 내려진 뒤에야 비로소 고용과 임금에 미칠 영향을 두고 교섭하거나 투쟁한다.
여기서 국민주권주의와 경제적 현실의 모순이 드러난다. 노동자는 국가의 주권자라고 선언되지만, 자신이 일하는 기업에서는 주권자가 아니다.
정치 영역에서 ‘1인 1표’의 원리가 적용되는 반면, 기업 내부에서는 주식 소유량과 자본 통제권이 지배한다. 대주주는 노동자 수천, 수만 명보다 훨씬 강력한 결정권을 가진다. 자유민주주의는 일터의 문 앞에서 멈춘다.
8-2. 노동시간 단축과 생산성의 결합
주 4.5일제와 노동시간 단축도 같은 모순을 보여 준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계급의 역사적 요구다. 노동자는 삶과 시간을 자본의 통제에서 되찾기 위해 투쟁해 왔다. 그러나 기업은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노동 강도를 높이거나 성과 평가를 강화할 수 있다. 또는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기존 노동자에게 같은 생산량을 요구하기도 한다. 임금 보전이 충분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단축된 시간만큼 소득이 줄어 부업을 해야 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주당 노동일의 형식적 수치가 아니라, 누가 생산성과 노동 강도, 임금과 인력 충원 문제를 결정하는가다.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지 못하면, 노동시간 단축은 인간의 자유시간을 확대하는 개혁이 아니라 기업의 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변질될 수 있다.
8-3. ‘상생’은 계급 적대를 어떻게 치환하는가
정부는 개정 노동조합법의 취지를 ‘원·하청 상생’과 ‘대화 촉진’으로 설명한다. 이 표현은 정부 노동정책이 가진 본질적 성격을 반영한다. 원청과 하청 노동자의 갈등은 단순히 대화 부족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원청 기업이 비용과 위험을 하청업체와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수익성을 높이려 하는 방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은 기업에 비용이며, 노동시간 단축은 기업에 생산성과 수익성의 문제다.
물론 교섭과 타협은 혁명이나 혁명에 육박하는 상황이 아닌 한 불가피하다. 노동조합은 노동력 판매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자와 협상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조화롭다고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상생’이라는 말은 계급 적대를 ‘공동체’ 내부에서 조정될 수 있는 이해관계 차이로 치환하고 축소한다. 그 개념 속에서 국가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중립적 중재자로 나타난다. 기업의 수익성과 노동자의 권리를 조화시키는 난제가 정부의 임무가 된다.
경제가 성장할 때는 노동자에게 성장의 과실을 나누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침체와 국제 경쟁이 심화하면 상생의 내용은 노동자의 양보와 고통 분담으로 바뀐다. 임금 자제, 노동 유연화, 생산성 향상, 구조조정 등이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공동의 책임’으로 제시된다.
8-4. 노동정책이 보여 주는 국민주권주의의 한계
노동정책 사례는 이재명 정부의 참여민주주의가 왜 매우 제한적인지 보여 준다. 산업별 협의체와 국회 주도의 대화에서 노동자는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고 정부 정책에 의견을 제출하며 기업과 교섭할 수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과 기업 경영에 관한 최종 권력은 노동자에게 없다. 노동자는 정책 협의의 이해관계자일 뿐, 경제의 주권자는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개혁은 노동자 투쟁 수위에 따라서는 노동계급에게 약간의 양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가 임금노동자로서 기껏해야 조금 더 나은 권리를 갖게 하는 개혁일 뿐, 임금노동 관계를 폐지하거나 노동자가 생산을 통제하도록 하는 개혁은 아니다.
9. 네 분야에서 드러나는 공통점
경찰·군대·산업·노동 정책은 각각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공통된 구조를 포함한다.
경찰정책에서는 외부 감시와 민간 통제가 강화되지만, 경찰은 여전히 사회와 분리된 전문 강제기구이며, 자본주의 국가의 기구인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군사정책에서는 위헌적 계엄을 막기 위한 헌법적 통제(아마도 개헌)가 추진되지만, 상비군과 군사력, 첨단 무기와 무기산업은 오히려 확대된다.
산업정책에서는 국가와 국민 자금이 투자에 참여하지만, 기업 생산과 경영은 노동계급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노동정책에서는 노동자 권리와 교섭 참여가 확대되지만, 생산수단과 투자 결정권은 여전히 자본의 몫이다.
이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이재명 정부는 국가와 경제를 대중에게 넘겨주지 않으면서, 국가가 경제와 대중을 더 효과적으로 관리하도록 개혁한다. 이 개혁은 지배계급의 소유와 전문화된 국가 기구의 지배를 유지한다. 국민주권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의 자유주의적 재정비를 위한 이데올로기다.
10. 참여민주주의는 장식물인가?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이재명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를 골간으로 삼고 참여민주주의를 장식물로 여긴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대체로 타당한데, ‘장식물’이라는 표현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참여민주주의가 정책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오직 정부 홍보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뜻이라면 이는 옳지 않다. 시민 참여, 노동계 의견 수렴, 경찰 외부 심의, 군 개혁 공론화는 실제 정책 내용과 집행에 약간의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참여는 정책을 약간 수정할 수는 있어도 생산수단의 통제권을 바꾸지는 못한다. 국가와 경제의 기본 권력 관계를 바꾸지 않고, 기존 체제를 더 자유주의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종속된다. 참여는 실제적이지만 제한적이다. 참여는 정부에 정보를 제공할 뿐, 정부 정책을 대신하지 못한다. 참여는 경찰과 군대를 감시할 수 있으나 강제력을 대중에게로 이전하지는 않는다. 참여는 노동자의 교섭력을 약간 높일 수는 있지만 기업 경영권을 노동자에게 넘겨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장식물’보다 ‘종속적 보완물’이라는 표현이 더 엄밀하다. 참여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대의제와 자본주의적 성장 전략에 종속된 실제적 보완물이다.
11. 이데올로기와 전략으로서의 국민주권주의
국민주권주의의 효과는 완전한 거짓이 아니라 부분적 진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데 있다. 국민은 선거로 정부를 교체할 수 있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할 권리를 일부 보장받는다. (물론 특정 직군과 고용 형태의 노동자에게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조차 없고, 모든 노동자에게 정치 파업은 금지돼 있다.) 시민은 경찰의 비위를 고발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개혁은 이러한 권리를 약간 확대한다.
그러나 국민주권주의는 이 극도로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사회 전체에 대한 국민의 지배로 포장한다.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사실에서 국가기구를 통제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국민이 펀드에 가입한다는 사실에서 산업을 주도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시민이 경찰심의위원회에 참여한다는 사실에서 경찰이 국민의 경찰이 됐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군대가 민간 정부에 복종한다는 사실에서 군대가 국민의 직접 통제 아래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참여와 권리는 물질적 생산관계와 권력관계의 현실을 가린다. 사실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완전히 날조하기보다 현실의 한 측면을 전체로 제시한다.
12. 국민이라는 범주의 계급 은폐 기능
국민주권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국민’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는다. 국민성장, 국민경제, 국민의 기업, 국민의 군대, 국민의 경찰이라는 표현은 서로 다른 계급 이해관계를 하나의 “공익”(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뭉뚱그린다. 그래서 기업의 국제 경쟁력은 노동자의 일자리로 직결된다고 하고, 군사력 증강은 국민의 안전으로 직결된다고 하며, 경찰력의 신뢰 회복은 시민의 안전으로 직결된다고 한다. 노동자의 양보는 국민경제에 대한 책임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국민 내부에는 적대적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노동자에게 임금은 생활 수단이지만 자본가에게는 비용이다. 노동자에게 파업은 요구 실현 수단이지만 사용자에게는 경영권 제약이다. 평범한 지역 주민에게 환경은 생존 조건이지만 개발 기업에는 비용과 규제다. 무기산업체와 첨단산업 지원에 쓸 재정은 복지와 공공서비스에 쓰일 수 있다.
이 갈등은 단순한 오해나 소통 부족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생산수단의 지배, 즉 계급에서 비롯한다. 국민주권은 국민 통합을 전제하지만, 그 통합은 이 적대 관계(계급)를 해소하지 못한다. 오히려 착취적 이해관계를 국민 전체의 이익(“국익”)으로 포장해 노동계급의 독립적 요구를 억제할 뿐이다.
13. 민주적 개혁과 노동자 민주주의
이재명 정부의 한계를 비판한다고 해서 모든 개혁에 반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법 개정, 노동시간 단축, 산업안전 강화,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외부 감시, 위헌적 계엄 방지, 군인의 불법 명령 거부권 등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이는 개별 개혁의 효과와 정부 전체의 계급적 성격이 동일한 층위의 문제가 아님을 뜻한다.
이러한 구분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초좌파적 종파주의를 모두 피하면서, 노동계급의 독자적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게 한다.
노동계급의 독자적 이해관계가 제대로 구현되려면 노동자 국가가 세워져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국가, 파리 코뮌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공직자를 선출하고 언제든 소환할 수 있는 체제를 노동자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봤다. 이 전망 속에서, 선출된 대표와 행정기구는 대중으로부터 독립된 전문 권력이 아니라 대중에게 직접 책임지는 기구다.
마르크스는 이를 단순한 행정 개선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노동자 민주주의로 질적 전환을 이루는 과정으로 봤다.
이런 민주주의는 단지 더 많은 국민투표나 온라인 설문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사회의 물질적 생산관계와 권력관계를 변화시키는 실질적·능동적 민주주의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목표는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체제가 아니다. 스탈린주의 체제처럼 국가관료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를 지배한다면 국민주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적 자본가 대신 국가관료가 노동자에게 명령하는 체제는 노동자의 자력 해방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유가 국가 자체를 강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사회에 완전히 종속시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레닌도 계급이 소멸하고 생산수단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구분이 사라질 때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며, 그때는 강제 기구인 국가도 점차 불필요해진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권력은 강력한 국가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대중의 자기통치로 사회와 분리된 국가기구가 점차 소멸할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14. 결론
이재명 정부의 국민주권주의는 자유주의적 대의민주주의,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적 성장 전략, 참여민주주의를 결합한 이데올로기이자 전략이다. 물론 노동권 확대, 노동시간 단축, 경찰 외부감시, 위헌적 계엄 방지와 군의 민간 통제 등에는 민주적 내용이 약간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들은 자본주의적 소유와 국가의 전문 강제기구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노동자는 더 잘 교섭할 수 있으나 생산을 통제하지는 못한다. 국민은 성장펀드에 투자할 수 있으나 산업의 방향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시민은 경찰을 심의할 수 있으나 경찰을 선출하고 소환하지는 못한다. 국민은 선출된 정부를 통해 군대를 통제할 뿐, 상비군과 군사력 관리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한다.
이재명 정부의 국민주권주의는 민주적 개혁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 국가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대중의 참여를 체제 안으로 조직하며, 자본주의적 성장과 국가경쟁력을 국민 전체의 공동사업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국민주권주의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한국 국가를 자유주의적으로 쇄신하고 합리화하는 통치 이데올로기이자 전략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국민주권주의의 민주적 약속을 거부하지 않고 그 약속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왜 온전히 실현될 수 없는지 드러내며, 민주주의를 정치에서 경제로, 투표소에서 일터로, 정부에 대한 감시에서 국가기구의 온전한 통제로 확대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주권의 진정한 실현은 유능하고 소통하는 자본주의 정부가 아니라, 조직된 노동대중의 자기통치에 달려 있다.
참고문헌
- 고용노동부, 〈개정 노조법 2·3조 시행 및 현장 안착 관련 자료〉
- 금융위원회, 〈국민성장펀드 조성 및 국민참여성장펀드 운용계획〉
- 행정안전부, 〈경찰국 폐지 및 경찰 내부비리 근절·민주적 통제 강화 방안〉
- 국방부, 〈2026년 국방예산 및 군 제도개혁·첨단전력 강화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