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르펜이 폭동에 웃는다?:
르펜에 레드카펫을 깔아 준 것은 중도파다

매스미디어가 프랑스 투쟁을 다루며 지루하게 반복하는 헛소리가 있다. 프랑스 대중의 거대한 분노 표출이 마린 르펜과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RN)의 입지를 크게 강화해 줬다는 것이다. 르펜에게 대선 승리를 안겨 주지 않으려면 파시즘에 맞서 중도파를 지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합이 성장할 공간을 열어 준 것은 좌파 정치인 장뤽 멜랑숑, 체제에 맞서 싸우는 학생·청년·노동자가 아니다. 바로 중도파 정치인들이다. 중도좌파든 중도우파든 중도 세력은 르펜의 입지를 약화시키겠다며 인종차별적 언사를 내뱉고 이민 억제·억압 정책을 추진했다. 그 덕분에 국민연합은 정당성을 획득했다.

또, 역대 프랑스 중도 정부들은 부유층과 기업의 세금을 깎아 줬다. 대규모 부자 감세로 재정 적자가 유럽연합의 3퍼센트 한도(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퍼센트 이내로 유지한다는 재정 준칙)를 넘어섰다. 그러자 마크롱은 학교를 포함한 공공서비스와 복지를 대대적으로 삭감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의 살림살이가 쪼들렸고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이런 조건은 파시즘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됐다.

적잖은 중도파 인사들은 내년 대선 결선에서 멜랑숑과 르펜이 대결하면 차라리 후자에 투표할 수도 있다. 아래로부터의 도전을 억압할 르펜의 의지를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당과 공공광장을 아우르는 중도좌파 후보 라파엘 글뤽스만의 핵심 공약은 멜랑숑과 그의 불복종프랑스에 대한 적대감과 연대 거부다.

최근 폭동을 비롯해 대규모 저항 속에서 파시즘의 위협이 증대했다고 해서 그 책임이 학생들에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동적인 국가 탄압 탓이다. 프랑스 총리 세바스티앙 르코르뉘는 범정부 위기 대응 회의에 국민연합을 초청해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런 작태 덕분에 국민연합은 ‘혼란에 맞선 방파제’이자 ‘민주적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할 수 있게 됐다. 국민연합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는 경찰 탄압을 열렬히 옹호했고 정부의 섬광 수류탄 사용 금지 결정에 격분했다.

국민연합이 포퓰리즘 수사를 거두고 대중 운동을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9년 노란 조끼 운동과 2023년 연금 개혁 반대 운동 때 국민연합은 시위대의 변호자로 비치려 애썼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사회적 갈등이 너무 첨예하기 때문이다. 국민연합은 반기득권 세력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졌다.

국민연합에 고무된 파시스트 집단들이 곳곳에서 국가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다. 10월 17일 대규모 시위 직후 리옹에서는 파시스트 100여 명이 야간 통행금지를 무시한 채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행진했다. 또, 루앙, 니스, 리옹 등에서는 시위대를 폭행하다가 항의를 받으며 쫓겨났다. 따라서 저항은 계속돼야 할 뿐 아니라 더 커지고 더 심화돼야 한다.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낫겠다’ 파리의 시위대 ⓒ출처 Photothèque Rouge

국가 탄압

그러나 프랑스 지배계급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지배계급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잔혹한 국가 탄압이다. 르코르뉘는 10월 21일 7개 노동조합 총연맹 지도자들과 만났다. 그러나 학생 대표자들은 부르지 않았다. 노조 지도자들은 이 면담을 거부하지 않고 총리를 만났다. 하지만 르코르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법질서 유지를 당부했을 뿐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정부에 의해 무시당했다.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기성 정치인들과 거리 운동의 분노 사이에서 타협과 협상을 하는 노조 지도자들의 사회적 역할이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면담 직후 소피 비네 노동조합총연맹(CGT) 사무총장은 “정부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11월 5일로 예정된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현 국면에서 마크롱 정부의 중심 대응은 실질적 양보나 타협을 통해 운동을 달래고 더 전투적인 경향을 분산시키는 것에 있지 않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마크롱은 유약해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탄압을 지속한다. 극좌파와 거리 운동에 굴복했다고 르펜이 떠들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금융시장이다. 프랑스 국채 금리는 5퍼센트를 넘었다. 독일 국채 금리보다 1.5퍼센트포인트 더 높다. 금융시장은 마크롱 정부의 취약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마크롱 정부가 운동을 통제하거나 진압하지 못해 이윤 창출에 필요한 안정을 이뤄내지 못하면 무참히 난도질할 것이다.

마크롱 정부가 국가 탄압을 자행하는 것은 국민연합을 고무할 뿐이다. 만약 내년 봄 대선에서 르펜이 이기면 그에 맞선 파업, 시위,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르펜은 마크롱이 현재 사용하는 잔혹한 진압 방식을 더 크게 동원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들이 했던 일이다. 그러니 비판하지 말라.”

파시즘의 정상화

프랑스 자본가 계급은 마크롱 정부가 노동자와 학생들의 저항을 결정적으로 분쇄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일부 프랑스 자본가들은 이윤 회복을 위해 철권을 원한다. 파시스트들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극우의 정상화, 이것이 프랑스 지배계급 일부의 또 다른 대응 전략이다.

인종차별과 극우를 비판해 온 좌파 성향의 프랑스 매체인 〈메디아파르〉에는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비관과 정치인들에 대한 환멸을 전하는 마르틴 오랑주의 글이 실렸다.

“재계에 충격의 파도가 휩쓸고 지나갔다. … 그들은 국가와 권력의 붕괴를 보고 있다고 느꼈다. 예외 없이 정부의 ‘나약함’과 ‘무능함’을 규탄했다. … 우리는 더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것이 아니다. 체제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재계의 이런 분위기는 1930년대 초 독일 자본가들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도박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파시스트들의 거친 손에 권력을 쥐여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군화, 총, 감옥만이 질서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찰리 킴버의 페이스북에서 재인용)

프랑스 자본가들은 마린 르펜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부는 르펜만이 자신들이 원하는 ‘질서’와 ‘권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마치 1930년대 초 독일에서 언론 재벌 후겐베르크, 철강 산업가 티센, 전직 국립은행 총재 샤흐트 등 일부 자본가들이 나치에 자금을 대고 동조했던 것처럼 말이다.

국민연합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는 사용자 단체인 메데프(Medef)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다. 르펜은 매년 1,360억 유로 규모의 공공 지출을 삭감하겠다고 말해 최고경영자들의 환심을 샀다. 비단 프랑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영국 엘리트들의 신문 〈이코노미스트〉(10월 16일 자)는 알리스 바이델과의 인터뷰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바이델은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대표다.

요컨대, 프랑스 엘리트들은 아래로부터의 도전을 분쇄하기 위해 더한층 우경화될 태세가 돼 있다.

그리하여 르펜은 20년 전과는 판이한 대우를 받고 있다. 적잖은 유권자들이 ‘그래, 르펜이 안 될 건 뭐야’ 하고 말한다. 파시즘이 정상화되고 있다.

반파시즘 투쟁의 중요성

중도파와 사용자들은 파시즘의 부상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그 정당성만 더해 줬다. 따라서 르펜과 국민연합의 부상을 막을 해법은 이들을 어엿한 정치 세력으로 만들어 준 중도파를 지지하거나 사용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최소한의 요구를 내놓는 것이 아니다. 이들 모두를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저항이 일어나야 한다.

여기에는 파시스트들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10월 24일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집결 하나는 오를레앙에서 열린 국민연합 당대회에 맞선 시위였다. 3만여 명이 참가했다. 파시스트 집회에 정면으로 맞선 것은 수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총연맹 파리 지부는 오를레앙 반파시즘 시위에 애초 참가하기로 했다가 최종 철회했다(관련 기사: ‘프랑스 사회주의자가 말하는 저항의 배경, 전개, 전망’). 대신에 파리에서 경찰과 약탈자들에 대응하는 질서유지대를 두기로 했다.

이런 결정의 근저에는 헌법 질서와 투표로 파시스트를 격퇴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파시스트가 거리에서도 약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줘야 한다. 그러려면 파시스트들에 맞불로 맞서야 한다. 파시스트들이 행진하거나 학생들의 봉쇄를 방해하지 못하게 막으면 그 지지자들의 사기를 꺾고 반파시스트 진영의 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 이는 국민연합을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 수 있다.

〈노동자 연대〉를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보세요!
매일 아침 〈노동자 연대〉 기사를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