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교육·사회 환경: 프랑스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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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도 믿기지 않는 프랑스의 참담한 교육 환경을 두고 선진국 프랑스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탄식이 나온다. 특히 노동계급 거주지, 그중에서도 흑인·아랍계 등 유색인종이 밀집해 있는 노동계급 거주지의 교육 여건은 끔찍하다. 교육 문제가 계급·인종차별·빈곤 문제와 완전히 겹쳐 있는 것이다.
막대한 재정 적자와 수년째 이어지는 프랑스 정부의 강력한 긴축 정책이 그 바탕에 있다.
프랑스 재정 적자는 미국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올해 프랑스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4퍼센트다. 유럽연합(EU) 기준인 3퍼센트를 크게 웃돈다. 프랑스 국가부채는 GDP의 119퍼센트까지 늘어났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최근 5퍼센트에 육박했다.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마크롱 정부는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며 긴축 예산을 발표했다. 총리 세바스티앵 르코르뉘는 540억 유로 규모의 긴축안을 제출했다. 노동자, 연금생활자, 빈곤층이 직격탄을 맞는 긴축안이다.
은행가 등 자본가들은 공공 지출을 더 강하게 억제하라고 마크롱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채권 시장에서 볼 때 프랑스는 ‘유럽의 새로운 병자’다. 채권 시장의 투자자들(대형 은행, 헤지펀드 등)은 특정 국가 채권의 투자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대량으로 내다판다. 그래서 채권 가격이 폭락하면 국채 금리는 폭등한다. 이자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정부는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강경한 긴축 정책을 집행한다.
문제는 프랑스만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부 유럽 국가들 ― 이른바 ‘피그스’(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 이 재정 위기를 겪었던 2010년대 전반부와 달리, 지금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가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
그로 인해 주요국의 국채 금리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주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5.35퍼센트까지 올라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은 5.45퍼센트, 독일은 3.47퍼센트다. 국채 금리가 이러한 수준에 이르렀던 때는 2009년이었다.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부채 위기가 절정에 달하며 세계경제를 타격했던 때다. 17년 만에 국가부채라는 유령이 다시 위협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공공 부채 증가에 더해,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도 금리 인상 압력을 낳고 있다. 트럼프가 금리 인하를 기대하며 임명한 케빈 워시가 이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9월 중순 기준금리를 수년 만에 처음으로 0.25퍼센트포인트 올렸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다른 금리도 뒤따라 오른다.
AI 기업들의 대규모 차입이 격화시킨 자금 확보 경쟁도 국채 금리를 밀어 올리는 또 다른 요인이다.
부채 탕감
프랑스 좌파 정당 ‘불복종 프랑스’(LFI)의 지도자이자 대선 후보인 장뤽 멜랑숑은 국가부채 일부를 “없애 버리자”고 주장했다. “우리가 할 일은 프랑스은행이 쥐고 있는 18퍼센트를 불에 던져 넣는 것이다.” 이는 약 6,000억 유로 규모다.
멜랑숑이 모라토리엄을 제안한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인 프랑스은행이 양적 완화 과정에서 매입해 보유한 프랑스 국채를 소각해 부채 규모와 이자 부담을 줄이고, 그만큼 정부의 지출 여력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군사비 지출 규모에서 보듯 돈은 있다. 멜랑숑의 부채 (부분) 탕감 요구는 공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 지배자들은 이 제안에 강하게 반대한다.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연합의 대선 후보 마린 르펜도 반대한다.
프랑스 지배자들이 멜랑숑의 제안을 반대하는 데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멜랑숑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중도우파인 에두아르 필리프를 앞서고 있다. 대선 결선 투표에서 마린 르펜과 맞붙을 가능성이 꽤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부채 탕감은 지배계급에게 금기다. 프랑스 총리 세바스티앙 르코르뉘는 “돈을 빌려 놓고 갚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그것은 절도라고 부른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부채는 노동계급이 생산한 부를 빼앗고 자본가의 이윤을 늘려 주는 수단일 뿐이다. 프랑스가 국가부채 이자로 내는 돈(약 745억 유로)이 연간 교육 예산(약 640억 유로)보다 많다.
그래서 지배계급은 좌파 후보가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부 지출을 약속하지 못하도록 미리부터 한계를 부과하고자 한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 수준 향상 요구는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을 벗어난다는 논리다.
단, 러시아 때문에 유럽 지배계급에게 지금 군사비 지출은 결코 침해할 수 없는 성역이다. 프랑스 국방비는 삭감되기는커녕 오히려 증액돼 왔다. 2025년 505억 유로에서 2026년 570억 유로로 늘었고, 2027년에는 634억 유로에 달할 예정이다.
부채 위기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방어하려면 좌파는 지배자들의 반대와 협박, 거듭되는 개혁주의 정치인들의 순응이라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540억 유로에 달하는 긴축안과 부자 감세, 핵심 공공 서비스가 아닌 군대로 향하는 돈을 포함한 프랑스 정부 예산안을 폐기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예산안 투쟁에서 승리하면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도 몰아낼 수 있다.
국제적 맥락
현재 프랑스 투쟁을 촉발한 재정 적자의 책임을 보통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긴축 정책 강요 요인들은 세계의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 저항의 배경이 국제적 맥락과 연결돼 있기에 투쟁이 국경을 넘나들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주거와 강제 퇴거를 둘러싼 스페인의 대규모 투쟁, 포르투갈의 주거난 항의 시위와 공공부문 파업, 프랑스에서 영감을 받아 동참하는 벨기에 학생 저항, 독일의 징병제 반대 학생 시위, 인도 바퀴벌레 운동의 귀환 등이 일어나고 있다.(이번 호에 실린 ‘스페인, 독일, 벨기에, 포르투갈 ...: 프랑스와 함께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들’과 ‘인도 청년 반란 ‘바퀴벌레’ 투쟁 재개 — 현지 활동가의 목소리’를 보시오.)
이런 저항들에는 수년간 끓어오른 기성 사회 질서에 대한 울분과 반감이 깔려 있다. 생계비, 주거, 연금, 연료비 문제뿐 아니라 인종차별과 파시즘, 가자지구 인종학살, 환경 비상사태, “미래가 없다”는 절망감 등에 대한 거대한 울분이 표출되고 있다.
물론 사회적 분노가 언제나 왼쪽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극우와 파시스트는 절망과 원망을 먹고 자란다. 프랑스에서도 개혁주의적인 노조 지도자들이 저항을 억누른다면, 르펜과 국민연합이 지지를 더 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거리 투쟁이 더 강력해지고, 노동자들이 더 많이 참가해 완강하고 전투적으로 투쟁한다면 르펜의 소구력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