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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김기홍 씨의 연이은 죽음: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개선 없는 트랜스젠더 차별

변희수 하사김기홍 씨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추모 입장을 냈고 여러 추모 행사와 항의 행동이 잇따랐다. 지난 일주일 동안, 수백 명이 모인 지하철 2호선과 서울광장 추모 행동, 온라인 추모 행사, 성소수자 생존을 위한 이어 말하기 집회, 서울 시장 후보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등이 있었다.

변희수 하사와 김기홍 씨의 죽음은 이 나라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의 현실을 아프게 보여 준다.

가족, 학교, 직장 등 이 사회 곳곳에 성별 이분법이 뿌리내리고 있다. 트랜스젠더는 일상에서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온갖 편견에 마주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차별혐오 실태조사’(2021년 2월 공개)에서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트랜스젠더는 신분증을 제시하는 의료기관 이용, 보험 가입, 은행 이용, 투표 참여, 증명서 발급, 담배 구입 등 일상 업무에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다. 법적 성별 정보와 외관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적 성별을 정정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 591명 중 86퍼센트가 법적 성별 정정을 시도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법적 성별 정정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성전환 수술 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60퍼센트가 꼽은 이유).

의료적 성전환에는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이 든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을 전혀 받지 못한다. 돈이 많은 사람은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트랜스젠더는 구직에서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57퍼센트가 구직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구직 과정에서 남자 혹은 여자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거나(48퍼센트), 주민등록번호의 성별과 외모가 일치하지 않아서(37퍼센트), 출신학교(남자 혹은 여자 학교)를 기재해야 해서(27퍼센트)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고 김기홍 씨도 생전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때 관리자에게 ‘계속 일하려면 화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협박을 들었다고 한다.

학교나 군대는 특히 억압적 공간이다. 92퍼센트가 교복 등으로 인해 학교 생활이 트랜스젠더로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법적 성별이 남성인 트랜스젠더는 군대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알려질 것이 두렵다고 답했고(52퍼센트), 관심 사병으로 분류되거나(28퍼센트), 성희롱을 겪거나(12.4퍼센트), 부적응 기관으로 이송된 경우(12퍼센트)도 적지 않았다.

고 변희수 하사는 그런 군대에서 처음으로 용감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성별을 정정했다. 수술 없이는 성별 불쾌감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동료들의 지지를 받았던 그는 “훌륭한 선례”가 되고자 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군”에서 잔인하게 내쳐졌다. 육군은 어처구니없게도 변 하사의 성전환 수술을 ‘심신 장애’로 판정했다.

최근의 연이은 애석한 죽음이 보여 주듯 차별과 혐오는 생명을 위협한다. 국가인권위 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 57퍼센트가 2019년 한 해 동안 우울증을 경험했고, 24퍼센트가 공황장애 진단이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 207명 중 40퍼센트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도 답했다.

우울증 증가, 취업자 대폭 감소, 의료 서비스 지연, 경제 불황을 심화시킨 코로나 위기는 취약한 트랜스젠더의 삶을 더욱 악화시켰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배반당한 기대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많은 성소수자가 문재인 정부가 이런 끔찍한 차별의 현실을 어느 정도 개선하리라고 희망을 가졌을 법하다.

하지만 임기가 1여 년 남은 지금, 문재인 정부가 차별을 개선한 것은 전무하다. 노골적인 혐오 발언은 삼갔지만 차별을 유지해 왔다. 고 변희수 하사의 다음 말은 평범한 성소수자들의 심정을 잘 보여 준다.

“저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저와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2020년 7월 3일,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

문재인 정부는 변 하사의 강제 전역이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인권법 위반이라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지적에 대해 ‘적법한 절차’였다면서 트랜스젠더 군 복무에 대해 또다시 “사회적 합의”를 운운했다. 법원은 지난해 성별 정정 요건을 일부 완화했지만 핵심 제약을 남겨 뒀다. 국방부는 지난달 신체검사 규칙에서 ‘성 주체성 장애’를 ‘성별 불일치’로 수정했지만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은 고수했다. 생색내기 외에는 우파 정부 때와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하나 발의하려고 해도 발의 요건(국회의원 10명)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논의도 안 되고 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차별금지법 발의에 군불만 지피다 눈치를 보며 결국 재보궐 선거 이후로 미뤘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 국회의원 윤호중은 녹색당 비례대표인 김기홍 씨를 겨냥해 “성소수자 문제라든가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 연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선거에서 이해득실을 따지며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이런 냉담한 행태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퀴어퍼레이드 “안 볼 권리”를 운운하는 안철수 등 우파 야당 후보들만이 아니라, 민주당 후보인 박영선도 과거 성소수자 혐오 발언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다. 진보 표를 의식해 ‘입장이 바뀌었다’고 모호하게 말하지만, 중도 우파 표도 받고 싶어서 차별금지법을 찬성한다거나 퀴어퍼레이드 개최를 지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3월 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 행동 ⓒ이미진

차별을 완화할 요구들

트랜스젠더의 차별을 완화하려면, 우선 본인 의사만으로 법적 성별 정정이 가능해져야 한다. 여러 나라가 외과적 수술을 법적 성별 정정 요건에서 삭제했다. 아르헨티나, 아일랜드에서는 의료 요건이 없는 것은 물론, 본인 의사만으로 성별 정정이 가능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남성, 여성 외에 논바이너리도 선택할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나 신분증 등 공문서에서 사용하는 불필요한 성별 정보도 삭제해야 한다.

법적 성별 정정 완화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트랜스젠더에게 ‘생존’과도 같은 의료 조처에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의료보험 적용). 수많은 트랜스젠더가 이 비용을 감당하느라 허덕이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43개 나라가 성전환 관련 의료 서비스의 전부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포함하는 차별금지법도 오랜 요구이다. 학교나 직장 등에서 겪는 차별에서 보호받고 구제할 법적 수단을 원하기 때문이다. 안전한 성중립 화장실, 무료 청소년 상담소, 학교에서의 포괄적 성평등 교육도 필요하다.

국가인권위가 변 하사의 진정에 대해 권고한 대로, 국방부는 트랜스젠더 장병이 복무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미 미국, 영국, 독일 등 20개 나라에서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영국 등지에서는 성별 불일치를 겪는 장병에게 필요한 의료 조처 비용도 국가가 지원한다.

정부는 세금을 방위비분담금 같은 데가 아니라, 차별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써야 한다.

차별 없는 세상을 이루려면

“커밍아웃이든 아우팅이든 이런 단어가 사라지는 세상이 저는 왔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같이 벽을 박차고 나와서 투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2020년 3월, ‘연분홍TV’에 보낸 변 하사의 영상편지)

변 하사가 이루지 못한 꿈을 만들어갈 과제가 우리에게 남았다.

이를 실현하려면,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우파에 반대할 뿐 아니라 차별 해소에 무관심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투쟁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 운동은 장차 노동계급의 대중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인 아일랜드에서는 2015년에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본인 의사만으로 성별을 정정할 수 있는 성별인정법이 통과됐다(성별 정정을 원하는 사람은 3장 정도의 문서만 작성하면 된다).

성범죄와 아동학대로 가톨릭 교회에 대한 환멸이 커졌고, 수년간 대중 투쟁으로 대중의 자신감과 의식이 고양된 덕분이었다. 정부의 수도세 징수에 반대하는 대규모 투쟁이 벌어진 뒤, 동성결혼 합법화 운동, 낙태권 투쟁이 연이어 크게 일어났다.

아일랜드에서는 성소수자 단체뿐 아니라 노조와 좌파 단체들이 제한된 요구를 놓고 힘을 합쳐 기층에서 차별에 맞선 투쟁을 크게 벌였다.

트랜스젠더 차별을 없애려면 개혁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동시에, 차별의 근원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도전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임금노동을 착취해서 이윤을 얻는 지배계급은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개별 가족에 떠넘기면서, 가족 바깥의 관계들을 차별하고 ‘여성성’ ‘남성성’에 관한 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트랜스젠더 차별을 부추기는 주장을 반박하며 기층의 투쟁을 발전시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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