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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톺아보기②:
197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경제 위기의 전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

이 기사는 10월 6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연속 토론②의 발제문이다.

‘연속 토론① 지금의 경제 위기, 원인과 전망’ 토론 영상이나 발제문을 함께 보면 지금의 경제 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금리를 대폭 올리자 전 세계 주요국의 환율이 급등하고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그러자 “퍼펙트 스톰”(초대형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돈줄을 죄기 시작하자 부채 문제가 세계 경제의 가장 취약한 부분임이 드러나고 있다.

경제가 훨씬 취약한 신흥국들뿐 아니라 영국 같은 선진국도 지금의 금리 인상과 통화 가치 하락을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이렇게 부채의 연쇄고리가 지뢰처럼 퍼져 있다. 며칠 전 영국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같은 상황 직전까지 가면서 이런 문제점이 잘 드러났다.

이런 부채들은 장기 침체를 극복해 보려고 주요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고, (양적완화로) 자금을 공급하며 기업을 지원해 온 결과이다. 풀린 돈들이 경기를 활성화하지는 못하고 자산 시장 거품만 키웠지만 말이다.

현재의 부채 위기는 오래된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근원적인 원인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이 위기가 1970년대에 세계 자본주의의 이윤율이 하락하고, 그후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윤율 저하 경향은 무엇인가

이윤율은 자본가들이 투자한 돈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윤을 얻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을 말한다. 이윤율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동학의 핵심이다. 이 이윤율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산 노동’, 즉 자본가에게 고용돼 착취받는 사람들이 하는 노동만이 이윤을 만들어 낸다고 봤다. ‘산 노동’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데, 이 중 임금을 제외한 부분을 잉여가치라고 하고, 잉여가치가 자본가들의 이윤이 되는 것이다.

물론 자본가들은 산 노동뿐 아니라 ‘죽은 노동’, 즉 기계나 원료도 구입한다. 죽은 노동은 생산에 사용되면서 그 가치가 완제품으로 이전된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그 가치를 회수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경쟁 압력 때문에 자본가들이 죽은 노동에 점점 더 많이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값비싼 새 기계에 맨 처음 투자한 자본가는 개별 상품의 단가를 낮춰,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이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쟁자들이 너도나도 새 기술을 채택하면, 결국 노동자가 다루고 처리하는 기계와 원료가 더 많아진다. 산 노동에 비해 죽은 노동의 총량이 더 빨리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이윤율은 하락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조사 결과는 이윤율이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하락했음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의 목표는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윤율이 하락하면 기업의 투자도 감소한다. 투자 감소는 노동자 고용 감소를 수반한다. 그러면 사회 전체의 수요가 줄고, 따라서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기업이 생기게 된다. 이런 위기는 어느 순간 급속히 악화돼 생산의 중단, 대규모 기업 파산과 함께 실업·빈곤·비참함을 낳는다.

이처럼 각 자본가의 투자 확대(기계·설비 등)가 경제 체제 전체 수준에서는 이윤율을 떨어뜨리고, 이는위기를 낳는 근원이 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장벽은 자본 자체”라고 말한 까닭이다.

상쇄 요인

그런데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요인들도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매우 단순하게 위기로만 빠져드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몇 가지 상쇄 요인을 언급했는데, 핵심적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 자본가들이 더 많은 가치를 이윤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서구에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이를 노린 것이다. 실제로 1980~1990년대에 상당수 국가에서 노동유연화, 임금·복지 삭감, 노동시간 연장 등으로 이윤율이 일부 회복됐다.

둘째, 경제 불황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자본이 망해 사라지거나 다른 자본에 헐값에 인수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두고 자본 파괴라고 한다. 자본 파괴는 실업을 동반하기 때문에 임금 삭감도 쉬워진다. 그래서 이윤율 회복의 핵심 요인이 된다.

자본 파괴는 경기침체 때 극심하게 벌어지는데, 특히 1930년대 사례가 악명 높다. 대불황을 거치며 진행된 대량 자본 파괴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장기 호황의 주원인 하나가 됐다.

한국의 1997~98년 외환위기 때 30대 재벌 중 절반이 쓰러졌고, 살아남은 재벌이나 외국 자본이 이들을 헐값에 인수하며 득을 봤다. 그동안 노동자 100만여 명이 해고되고 비정규직이 급증해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이 망가졌다.

그러나 서구든 한국이든 신자유주의 시대에 착취 증대와 구조조정을 통해서도 이윤율은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첫째, 착취 증대에는 한계가 있다.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저항 탓도 있기는 하지만, 자본가도 노동자들이 다음날 건강한 상태로 출근하길 원하기 때문에 임금 삭감과 노동시간 연장에는 한계가 있다.

둘째, 자본 파괴에도 한계가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의 집중과 집적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자본 단위들이 어마어마하게 커지면 거기에 국가와 금융계가 긴밀히 맞물린다. 그러면 기업의 연쇄 파산은 경제 전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1930년대 같은 연쇄적인 기업 파산과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국가가 개입했는데, 이는 모순된 효과를 낸다. 결국 국가의 개입은 최악의 붕괴를 막았지만, 자본 파괴를 통해 이윤율이 충분히 회복되는 것도 막았다.

자본 파괴가 별로 진전이 없자 1970년대 이후 경제 위기 속에서 수익성 없는 자본들이 충분히 청산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윤율은 전후 사반세기 이상 동안 구가하던 높은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한 것이다.

금융의 팽창

지난 수십 년간 금융부문이 커지고 거품이 붕괴하는 위기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금융 위기는 실물경제의 낮은 이윤율이 근본적 원인이다.

금융은 생산 부문에 그저 기생하는 것이 아니다. 금융은 특정 자본가가 갖고 있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투자를 당장 원하는 자본가에게 대출돼 자본으로 사용되도록 중개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도를 넘어서면 금융은 자본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이 낮아지자 기업들은 생산적 투자를 꺼리게 됐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은 채권, 주식, 부동산 등으로 옮겨 가 투기적으로 이용됐다. 그러면서 거품이 커졌다 꺼지고, 거품을 또 다른 거품으로 대체하는 역사가 이어졌다.

1990년대 초에는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졌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닷컴 버블이 나타났다. 2000년대 중반에는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가 꺼지면서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터졌다.

투자되지 않은 돈의 일부는 실질임금이 줄어들어 소비 능력이 떨어진 노동자들이 빚을 내어 소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데 사용됐다. 은행들은 빚을 내서 소비하고 집을 사라고 노동자들을 부추겼고, 이를 통해 수요를 부양해 자본주의 경제가 이럭저럭 돌아갈 수 있었다.

위기가 올 때마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하고 정부는 기업들을 지원해, 수요를 부양하고 경기를 지탱하려 했다. 그러나 부채에 의존한 짧고 제한적인 회복 후에 자산 거품과 붕괴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런 일이 거듭 되풀이됐다.

그러는 사이에 정부, 기업, 노동자 할 것 없이 전반적으로 부채 수준이 높아졌다. 국제금융협회(IIF) 등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21년 상반기 전 세계 부채 규모는 296조 달러로, 2000년 당시 83조 달러의 3.56배로 늘었다. 같은 시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두 배에 가까운 속도다. 전 세계 GDP 대비 부채 비율도 2000년 230퍼센트, 팬데믹 직전에 320퍼센트, 지난해 상반기 353퍼센트로 치솟았다.

이렇게 치솟는 부채는 국가가 점점 더 금융 위기에 개입하기 어렵게 만든다. 국가 개입으로 위기를 모면해도 그다음에는 손쓸 수 없는 규모의 위기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는 목적 하나는 치솟는 부채가 더 심각한 채무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부채 의존 문제는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 즈음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부채에 의존해 성장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중국 정부는 부동산 투자를 독려하며 중국 경제의 성장률을 유지하려 했다. 이는 한동안 중국 경제가 고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그 결과로 지금 중국 경제는 부동산 거품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개혁주의적 좌파들의 견해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현재의 위기는 1970년대 이래로 이윤율이 회복되지 못해서 벌어진 문제이다.

각국 정부는 위기를 관리하려고 금리 인하나 양적완화, 재정 지출 같은 조처에 매달렸다. 하지만 위기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지배계급 내에서 갈등과 혼란이 벌어져 최근에는 더 심해지고 있다. 부채가 늘어나면서, 국가가 심각한 침체를 막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수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위기가 장기화되고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면서 광범한 불만이 자라나고 있다. 그러나 이윤율 위기가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기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 위기론의 정치적 함의이다.

그러나 많은 좌파들은 현재 위기의 원인과 대안을 이와는 다르게 설명한다. 그들은 금융화, 독점 증대, 이에 따른 노동계급의 수요 부족(과소소비) 등을 조합해 현 위기를 설명해 왔다. 데이비드 하비의 주장도 이와 유사하다.

특히, 한국 좌파들의 주류는 – 가령 정의당과 진보당과 노동당 – 현 경제 위기가 ‘경제의 금융화’와 재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주주 배당을 최우선으로 하는 ‘주주 자본주의’와 재벌의 탐욕·수탈 때문에 투자가 감소하고, 경제가 저성장하고, 실업·비정규직이 확대돼 불평등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을 통제해 자원을 생산적 부문으로 돌리고, 재벌 규제와 초과이윤 과세, 사내유보금 환수 등으로 중소기업과 노동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경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금융자본이나 독점자본이 조성한 불평등 확대가 수요를 감소시켜 경기 침체를 유발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국가를 이용해 수요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득주도성장론도 임금을 늘리면 수요가 늘고 이는 다시 기업 투자와 생산성을 높여 경제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금융자본이나 독점자본의 탐욕을 규탄한다. 고금리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은행들과 에너지 대기업들이 막대한 이윤 잔치를 하는 상황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이 자본들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이를 노동자·서민을 지원하는 데 써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자본의 특정 조직 형태나 일부 자본 때문에 저투자, 저성장,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설명은 옳지 않다. 금융자본이나 독점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실물 부문에 이윤율 높은 분야가 있다면 그들도 거기에 투자할 것이고 그 효과는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다. 결국 실물 부문의 투자 감소와 그에 따른 경제 전반의 저성장은 일부 자본의 탐욕이나 자본의 특정 조직 형태가 아니라, 실물 경제 전반의 이윤율 하락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노동자 소득을 올리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주장에도 약점이 있다. 물론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늘려 노동자 조건을 개선하는 조처에 당연히 동의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 성장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중의 소비보다는 자본가들의 투자다.

그러므로 지금 같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고쳐 쓰려는 개혁주의적 대안은 가망이 없다. 자본가들 전체와 정부가 이윤 회복에 혈안이 돼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처지 개선과 경제 성장을 조화시키기는 불가능하다. 경제 성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본과 타협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할 뿐이다.

경제 위기는 앞으로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는 해결하기 어려운 낮은 이윤율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고, 이는 노쇠한 자본주의가 처한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위기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체제의 혼란과 파괴적 성격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위기를 제거하려면 자본주의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 이윤 체제를 대중의 필요에 따라 생산하고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을 빚더미로 내몰고, 환경을 파괴하고, 놀라운 기술 수준 속에서도 굶주림과 질병이 확산되는 미친 짓을 멈출 수 있다.

이것은 당면한 투쟁과는 관계 없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는 것에 맞서 싸우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지금 같은 위기 시기에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을 방어하려면, 이윤 논리 자체에 맞서야 한다. 가령 생활필수품과 전기·가스 등의 저렴한 공급, 부채 상환 중단 등이 절실한 요구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은 은행과 기업들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지금 지배자들은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이 치르게 하려고 임금 삭감과 해고, 복지 삭감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공격에 맞서려면 노동계급의 투쟁을 노동조합과 개혁 정당 차원을 넘어 확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주의자는 이런 투쟁을 일관되게 지지하면서 연대 확대를 위해 애쓰고,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제거해야 진정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체제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