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크리스 하먼의 《왜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에 빠지는가?》:
마르크스주의 경제위기론의 정수를 밝힌 현대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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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대폭 올리자 전 세계 주요국의 환율이 급등하고 주식시장이 폭락하며 금융 불안정이 크게 증대했다. 조만간 초대형 경제 위기(“퍼펙트 스톰”)가 올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가 경제 위기에 빠질 때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위기론이 재조명을 받곤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장애물은 자본 자체”라고 주장하며,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위기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1942~2009)의 고전적 저작인 《왜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에 빠지는가?》(책갈피, 초판 발행 연도는 1984년)가 지금 번역돼 출판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마르크스의 경제위기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마르크스의 설명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적용해 자본주의 경제 위기들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하먼은 마르크스가 강조한 이윤율 저하 경향을 자세히 살펴보며, 이 법칙으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호황과 불황을 설명한다.(1990년대 이후의 경제 위기에 대한 논의는 하먼의 또 다른 저작인 《좀비 자본주의》(책갈피)를 참고할 수 있다.)
하먼도 인정하듯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이윤율 저하 경향 자체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자본주의가 체제 전체로는 이윤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니 말이다. 이는 자본가들이 경쟁자들보다 앞서려고 생산수단에 더 많이 투자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하먼은 이 책 1장에서 마르크스의 주장을 종합하면서도 최대한 쉽게 이윤율 저하 경향을 설명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위기론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 봐야 한다.
한편, 이 책은 이윤율 저하 경향뿐 아니라 그것을 상쇄하는 요인들도 상세히 살펴본다. 하먼은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상쇄 요인들을 검토하며 이 요인들이 현대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한다.
특히, 하먼은 자본가들의 비생산적 소비(사치재나 군비 지출) 증대가 이윤율 저하에 미친 영향을 자세히 분석하면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런 지출[군비 지출 같은 비생산적 소비]은 자금을 생산적 투자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므로 … 이윤율에 대한 장기적 저하 압박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먼은 자본주의가 1950~1960년대에 장기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또, 군비 지출 증대가 낳은 모순적 효과들 때문에 어떻게 1970년대 중반부터는 다시 새로운 경제 위기의 시대가 시작됐는지도 보여 준다.
이는 단지 지나간 역사에 대한 설명에 그치는 게 아니다. 오늘날에도 좌파 다수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조절하면 경제 위기를 끝내고 장기 호황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50~1960년대 장기 호황이 냉전 시기 군비 경쟁의 의도치 않은 효과라면 지금 장기 호황기로 되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반복적인 위기의 기원이 1970년대에 다시 시작된 이윤율 저하 경향 때문이므로 독자들은 현재의 경제 위기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위기론들
이 책의 부록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위기론들과의 대화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여기서 하먼은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임금 인상, 정부 지출, ‘장기 파동’, ‘헤게모니 위기’, 자원의 희소성, 독점 등을 지목하는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이론들 대부분이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발생한 경제 위기들을 설명하려 한 것들이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론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 중 상당수도 근본적 원인으로서 이윤율 저하 경향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제 위기의 원인을 시기마다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 데이비드 하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를 일으키는 요인이 그때그때 다르다고 보는 관점은 그 다양한 요인들이 왜 어느 때는 작용했다가 어느 때는 작용하지 않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경제 위기의 여러 현상들과,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하먼이 지적하듯이, “이윤율 저하 ‘법칙’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설명에서 단지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이 법칙은 자본주의가 결국 실패하기 마련인 체제라는 마르크스 주장의 핵심이었다. … 그리고 이 법칙은 체제를 어설프게 땜질하는 것이나 자본가의 자기 조절로는 경제 위기를 피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이번 책은 1995년에 다른 사람이 번역한 책(《마르크스주의와 공황론》, 풀무질)과 전혀 다른 새 번역판이다. 번역도 깔끔해 문장들도 술술 읽힌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마르크스주의 경제위기론을 비판하는 주장들을 다뤄야 했기 때문에” 상당히 논쟁적이고 때때로 전문적 논의도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심각한 경제 위기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전에 없이 첨예해지고 있는 지금 심각하게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