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다:
세계경제 전망②
〈노동자 연대〉 구독
다음은 마르크스주의 경제 분석가 마이클 로버츠가 7월 2일 런던대학교에서 했던 강연과 정리 발언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마이클 로버츠는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자본주의 경제 상황을 분석해 왔고, 한국에는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2021, 책갈피) 등의 책이 번역돼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편집자이자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히다 — 알기 쉬운 요점 자본론》의 저자인 조셉 추나라도 패널로 함께 참석했다.
저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세 가지 모순에 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하나는 추나라가 앞서 설명했고,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추나라가 다룬 첫째 모순은 당연히 경제적인 것입니다. [2008년] 금융 붕괴와 [2008~2009년] ‘대침체’가 있었고 이후 14년째 ‘장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자본주의 역사에서 이런 침체기가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것들과 비교하면 지금의 침체기는 아직 평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21세기 들어 20년 동안 빈곤과 불평등은 악화됐습니다.
둘째 모순은 환경 문제입니다.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라는 거대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는 팬데믹이 잇따라 인류를 강타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사회 체제는 우리를 이런 재앙에서 지켜주지 못하고, 애초에 이런 재앙을 잉태합니다.
셋째는 지정학적 모순입니다. 이윤율이 떨어지면서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쟁투가 치열해지고 있고, 특히 서방 제국주의 블록은 자신들의 규칙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나라들(러시아, 중국, 인도 등)을 손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국가 간 갈등이 치열해지고, ‘무역 전쟁’과 ‘기술 전쟁’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보듯 실제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전망은 미국과 중국이 금세기에 크게 한판 붙는 것입니다.
먼저 경제적 모순을 살펴보겠습니다. 익히 아실 테지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결코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모두를 풍요롭게 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반복적이고 주기적인 위기를 거치며 호황에서 경기 부진으로, 그리고 다시 경기 부진에서 호황으로 나아갑니다.
이 그림은 그런 경제 순환을 도식화한 것인데, 이를 추동하는 것은 바로 이윤입니다. 이윤은 호황을 가속시킵니다. 이후 이윤율이 떨어지면 자본가들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경기 부진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해서 자본가들이 쓸모없는 것들(우리도 여기에 포함됩니다)을 털어 내고 나면 앞서 말한 과정이 재개되고 다시 순환을 거칩니다. 이를 바탕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벌어지는 위기의 성격에 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법칙은 … 이윤율이 자본주의 생산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생산은 그것으로 이윤을 낼 수 있는 경우에만 이뤄진다.” 이 얼마나 단순한 명제입니까! 오늘날 세계경제와 거대 기업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면 이 명제가 놀라울 만큼 명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업은 사회적 필요나 대중의 의사에 따라 생산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윤을 위해서만 생산합니다.
이윤이 핵심 열쇠라면, 자본주의 이윤율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알아야 자본주의가 잘나가는지 아닌지, 건강한지 취약한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윤율은 현대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자, 까다로운 문제들을 분석할 가장 필수적 도구입니다.
이윤율은 역사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지표입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발전했고 어디로 나아갈지를 보여 주죠. 다음 자료를 보시죠.
앞서 추나라가 주류 경제학의 인플레이션 이론들이 경험적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는데,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경험적으로도 상당히 잘 뒷받침됩니다. 1950년 이래로 세계 이윤율은 전체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였습니다.(사실 1850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서 봐도 그 추세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그래프는 세계 전체의 이윤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단지 미국이나 영국만이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들의 이윤율을 가중 평균치로 포괄해서 그린 것입니다.(이 자료는 제가 만들었지만 다른 이들도 비슷한 연구를 했습니다.)
물론 이윤율의 추이가 그저 직선으로 쭉 내려가는 형태는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이윤율을 일부 회복하는 국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大)신자유주의 시대에,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젊어서 일하던(또는 일자리를 잃은) 시절에 감내해야 했던 민영화, 노조 파괴, 경제 자유화, 대형 은행의 금융화는 자본주의의 상황을 호전시키는 데서 아주 작은 성과만을 냈습니다. 저하 추세를 뒤집지는 못했죠.
그런데 20세기 말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윤율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추나라도 지적했듯이 주요 자본주의 경제들에서 투자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신기술과 새로운 설비, 더 많은 숙련 노동자 고용에 투자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투자를 줄이는 대신 주식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이 그래프는 주요 경제의 국민총생산(GDP) 대비 투자의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오늘날 주요 경제의 국가들에서는 GDP의 약 20퍼센트가 생산적 투자에 쓰입니다. 1970년대에는 25퍼센트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20퍼센트로 줄어든 것입니다.
투자가 줄면 노동생산성 향상이 더뎌집니다. 노동생산성의 평균적 성장률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더 적은 노동시간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여가 시간이 늘어나야 할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에서는 그렇지 않죠. 그러나 일정 노동시간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면 물건 가격이 떨어지고 그러면 경제가 확장하고 사람들의 필요를 더 많이 충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또한 자본주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지만, 일반적 노동생산성 향상이 무엇을 성취하는지 대략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프를 보시면 여러 부문에서 1990년대 이래, 특히 2000년대에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줄었습니다. 녹색 막대는 최근 10여 년을 나타내는데, [주요 경제국들의 경우] 21세기의 생산성 증가율은 1990년대와 비교했을 때 최악이고 중국만이 여기서 예외적입니다.
다음 그래프는 총요소생산성의 평균 증가율입니다.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이 그래프는 기본적으로 신기술을 도입해서 이전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 노동 조직 방식의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계량화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혁신 지표인데, 아주 형편없이 떨어졌죠. 오늘날 세계는 이전 시기보다 덜 혁신적인 것입니다. 특히 주요 선진국에서는 최근 10년 동안 진전이 없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제 책에서 다룬 ‘장기 침체’에 관해 짧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발표한 지 시일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주장입니다.
지금 시기의 특징은 전반적인 저성장과 저조한 투자, 더딘 생산성 향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윤율 하락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래프 (바)가 현 시기인데요, ‘장기 침체’는 2008~2009년의 ‘대침체’에서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했다가 다시 떨어져 기존 성장 추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것은 침체의 궤적입니다.
‘정상적’인 시기라면 (가)와 (나) 그래프처럼 경기가 후퇴했더라도 이전의 성장률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게 호황-부진-호황이라는 교과서적 패턴이죠. 하지만 침체기[(라), (마), (바) 그래프]에는 그 이전의 성장률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만큼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각한 것이죠.
19세기 후반의 침체기는 숱한 경기 부진 끝에 지나갔고[(라) 그래프], 1930년대 대불황은 전쟁으로 끝났죠[(마) 그래프]. 지금의 장기 침체가 어떻게 종식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이처럼 성장률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2010년이 되기 전까지는 2003년을 기준으로 한 추세(노란색 직선)가 계속됐습니다. 주요 경제국들의 실제 성장률은 2007년까지는 그 추세를 그럭저럭 따라가지만 대침체 때 주저앉은 후부터는 빌빌 기어가고 있고, 세계 경제 성장률은 전체적으로 하락했습니다. 이것이 장기 침체입니다.
지금부터 설명드릴 내용을 저는 대단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난 2년을 돌아보면, 2020년 초에 팬데믹으로 경기 부진이 시작됐고, 2021년에 이른바 회복 국면이 있었지만, 2022년에 경기는 또다시 비실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이 없었더라도 경기 부진이 닥쳤을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에 이미 세계 경제의 성장률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2019년의 성장률을 그 이전 10년의 추세 성장률과 비교한 것입니다. 모든 지역에서 2019년 성장률은 그 이전 시기보다 현저하게 낮았습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는 성장률이 재앙에 가까웠고 이미 경기 부진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이윤도 팬데믹 시작 전부터 줄고 있었습니다. 이 그래프는 (이윤율이 아니라) 주요 경제국들의 기업 부문 이윤 총량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감률을 나타낸 것인데, 2019년 말에 이 수치는 사실상 제로였습니다. 이렇듯 이미 경기 부진으로 빠져들고 있던 와중에 팬데믹이 닥친 것입니다.
장기 침체라는 이 어려운 시기에 자본가들의 대응은 어땠습니까? 추나라가 지적했듯, 부채를 대대적으로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아주 저렴한 금리나 제로 금리로 돈을 더 많이 빌리는 방식으로 기업 파산을 막았습니다. 그 돈으로 생산을 늘리기도 했지만, 더 두드러진 것은 금융 자산 투자였습니다. 생산 부문 투자보다 이윤을 더 많이 안겨 줄 것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기업 부채(여러분이 집을 사려고 빌린 돈 말고, 기업들이 은행이나 채권단에 갚아야 할 돈 말입니다)가 역대 최대치에 이르렀습니다.
이 그림은 [GDP 대비] 기업 부채의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가장 왼쪽을 보시면, 그러니까 18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수치는 약 25퍼센트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00퍼센트가 넘습니다. 기록적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특히 20세기와 21세기 초에 빠르게 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이 너무도 자주 간과되곤 합니다. 신문에서는 이런 얘기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나, 이윤이 이토록 넘쳐나다니! 일론 머스크는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 말고는 그 돈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야.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초거대 기업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이윤을 긁어모으고 있잖아.”
하지만 이런 기업은 세계 자본주의의 수많은 기업들 중 소수일 뿐이고, 특히 선진국의 기업들입니다. 반면, 지금 전체 기업의 약 20퍼센트는 기존 부채의 이자도 제대로 갚기 어려울 정도로 이윤을 못 내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저렴한 금리로 부채에 더 많이 기대는 방식으로 파산을 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투자에 나서지 않습니다. 이들은 좀비, 즉 걸어 다니는 시체입니다. 경제를 생산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들은 이미 사망했지만, 저렴한 금리로 부채를 빨아먹으면서 사망 선고를 피하고 있습니다. 21세기 경제적 모순의 핵심 특징은 ‘좀비들의 시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개도국의 부채 비율을 한번 보시죠.
국민총소득 대비 부채 비율 | 수출 대비 부채 비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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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2019 | 2020 | 2011 | 2019 | 2020 | |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와 태평양 | 29.0 | 36.1 | 40.8 | 72.4 | 87.3 | 105.4 |
유럽과 중앙 아시아 | 38.3 | 46.7 | 51.9 | 113.7 | 124.9 | 155.8 |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 22.4 | 40.8 | 49.0 | 108.3 | 160.1 | 186.4 |
중동과 북미 | 14.4 | 32.5 | 37.5 | 50.0 | 116.5 | 183.6 |
남아시아 | 20.3 | 22.1 | 24.4 | 85.4 | 116.9 | 137.0 |
인도를 제외한 남아시아 | 27.5 | 31.2 | 34.0 | 153.3 | 215.9 | 288.2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 23.4 | 39.6 | 43.7 | 70.1 | 155.6 | 205.1 |
중국을 제외한 저·중위 소득국 | 26.1 | 36.6 | 41.5 | 92.1 | 126.3 | 153.9 |
출처: World Bank Debtor Reporting System and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추나라도 말한 바 있지만 정말이지 너무 처참한 상황입니다. 라틴아메리카(셋째 행)를 보십시오. 불과 10년 전인 2011년에는 국민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22퍼센트였습니다. 그런데 2020년에는 49퍼센트로 갑절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부채를 수출과 비교하면, 10년 전에는 부채가 수출의 100퍼센트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186퍼센트로 거의 2배에 달합니다. 라틴아메리카가 특히 심각하지만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사정은 비슷하게 나쁩니다. 세계 개발도상국들은 빚더미에 깔려 죽어 가고 있지만, IMF나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나 채권단은 부채를 탕감해 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새로운 경기 부진이 닥칠 것인지에 대해서 앞서 말씀드렸죠. 다시 말씀드리면, 경제는 2019년 말에 이미 경기 부진에 접어들고 있었고, 그러다 2020년에 팬데믹으로 혹독한 부진에 빠졌고, 엄청난 인명 피해를 뒤로한 채 2021년에 이른바 회복기를 맞이했지만, 2022년 중반에 접어든 지금 세계 주요 경제가 다시금 대규모 경기 부진을 향한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왼쪽 그래프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의 올해 2사분기(이틀 전에 끝났죠) 미국 GDP 성장률 전망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애틀랜타 연은은 2사분기 GDP가 전년 동기 대비 2퍼센트 수축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경제지에서는 온통 미국의 고용 상태가 양호하다고 하고 바이든은 경제가 잘 나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애틀랜타 연은의 생각은 다른 것이죠.
오른쪽 그래프는 유럽의 전분기 대비 주간 GDP 성장률을 나타낸 OECD 자료입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점이 최신 자료인데(바로 지난주 상황입니다) 이는 유럽 지역의 GDP가 [전년 대비] 마이너스임을 시사합니다. 이 지표들을 보면 주요 경제 기구 두 곳이 경기 부진을 전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이번 분기가 끝날 무렵 미국은 분명 경기 부진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이미 미국의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이 연율로 -1.6퍼센트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미 마이너스였던 것입니다. 물론, 미래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을 테지만, 애틀랜타 연은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처럼 우리는 또다시 경기 부진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후와 지정학 갈등도 우리가 토론해야 할 중요한 주제이지만 시간이 없군요.
끝으로 불평등 심화를 살펴봅시다. 국가 간 불평등은 정말 참담한 상황입니다. 다음은 주요 국가들의 1인당 부를 2018년에 측정한 것입니다.
산유국인 노르웨이 같은 곳에서는 1인당 자산을 12만 달러[약 1억 6000만 원]어치 갖고 있습니다. 반면, 오른쪽으로 갈수록 이집트,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튀르키예, 인도, 우크라이나처럼 인구는 아주 많지만 자산은 거의 없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G7(붉은 막대)과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G7은 모두 왼쪽에 몰려 있는 반면, 세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들은 그 반대편에 몰려 있죠. 제가 ‘제국주의 블록’이라고 일컫는 나라들과 나머지 사이의 불평등은 실로 엄청납니다.
개인 간 불평등도 어마어마합니다.
이 그래프에서 파란색 막대는 하위 50퍼센트가 차지하는 부를 나타냅니다. 유럽에서도 하위 50퍼센트와 상위 10퍼센트(붉은색)의 격차는 대단히 큽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대출 없이 주택을 물려받은 경우라면 포함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런 경우도 아주 드물 것입니다.)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려면 정말 많은 부를 갖고 있어야 하고 다수는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다음 그래프는 대단히 중요한데, 피케티가 최근에 제시한 것입니다.
피케티는 [세계적으로] 1820년 이래로 부의 분포가 사실상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 줬습니다. 그간 우리는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조금씩 풍요로워지고 있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죠. 그러나 적어도 최상층 부자들과 비교하면 바뀐 것은 없습니다. 하위 50퍼센트(파란선)는 세계 전체 소득의 약 6퍼센트(그조차 줄었네요)만을 가져가는 데에 반해 상위 10퍼센트(붉은선)는 60퍼센트를 가져갑니다. 이런 현실이 지난 200년간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자산이나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켜 주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다간 하염없이 세월만 흐를 것입니다.
부자들만이 다 가져가는 세상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늘어난 부는 대부분, 사실상 전부 부자들이 가져갔습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새로 늘어난 부의 2퍼센트만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평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0년 동안 현실이 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더 나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약 40억 명 이상이 빈곤층에 속하는데, 지난 35년 동안 10억 명이 더 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 세계 인구가 늘었지만 40억 명은 실로 엄청난 규모입니다. 여기서 빈곤층의 기준은 하루 소득 5달러[6600원]입니다. 당신이 하루에 6달러를 번다면, 적어도 이 기준에서는 빈곤층이 아닙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자본주의는 타인의 고통으로 이윤을 얻고 있고,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경기 부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전반적으로 침체된 경제 환경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20년과 팬데믹 동안 몇몇 사람들은 슈퍼 부자가 됐습니다.
관련 내용을 옥스팜의 2022년 보고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4개월 동안 억만장자들이 벌어들인 부는 그들이 이전 23년 동안[1987-2010년] 번 것보다 더 많습니다.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수십 년 내 최고치를 찍은 덕에 관련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이틀마다 10억 달러[1조 3000억 원]씩 늘었고, 식량 위기와 팬데믹을 거치면서 62명이 식량 부문에서 새로이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반면 팬데믹과 불평등, 식량 가격 인상 탓에 올해 2억 6300만 명이 극빈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는데, 그렇게 되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성취한 알량한 진보마저 허물어질 것입니다. 이를 평균으로 다시 계산하면, 매 33시간마다 100만 명이 극빈층에 합류하고,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30시간마다 한 명이 새로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억만장자 1명당 극빈층 100만 명인 셈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현실입니다. 경기 부진, 커지는 불평등, 전 지구적 수준에서 악화하는 갈등, 기후변화 무대책과 미래의 또 다른 팬데믹(뒤의 문제들은 다루지 못했네요) 등. 이것이 자본주의가 처한 모순이고 그런 만큼 우리는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정리 발언
‘실업률이 낮은 시대가 돌아왔다’는 얘기를 서구에서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공식 통계상으로는 실업률이 높지 않습니다. 대침체 직후 시기에도, 코로나 직전까지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몇몇 분이 지적하셨듯이, 기업들이 노동자를 자르지 않은 것도 일부 작용했겠지만 공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구조적인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임시직과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른바 서비스 산업에서 특히 심각합니다. 기업들이 이런 사람들을 내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임금이 쥐꼬리만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신기술이나 경제 확장에는 그다지 많은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고, 값싼 노동력에 기대서 생산 수준을 유지하는 일이 계속됐습니다. 개도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그랬죠. 그런데 기업들은 중앙은행이 제공한 그 많은 돈을 금융 시장이나, 자산 시장, 또는 암호화폐 같은 곳에 투기하는 데 모조리 써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크게 한 방 먹었다는 소식에 저는 고소해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암호화폐를 활용하면 중앙은행의 공식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추나라가 얘기했듯이, 암호화폐는 또 다른 투기 자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신용협동조합이나 상호금융 협동조합 등을 발전시켜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1850년대에 조제프 프루동이 주창했던 것입니다. 프루동은 자본주의란 “도둑질한 소유물과 금융”이라면서 자본주의의 병폐를 없애려면 신용협동조합으로 공식 은행의 통제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공식 은행의 통제를 진짜로 벗어나려면 우리가 은행을 장악하고 거대 금융기관을 국제적으로 접수해야 합니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소규모 신용협동조합을 세워서 그것으로 사회를 사회적 신용 체계로 변혁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고, 그 점은 이미 실제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입증됐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거대 자본가, 거대 은행과 각종 기관들에 맞서 싸우는 것 이외의 해결책이 없습니다.
실업률이 다시 높아질 것 같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1970년대 말에 폴 볼커는 미국 연준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태이니 금리를 대폭 올리겠다.’ 하지만 한동안은 효과가 없었죠. 인플레이션은 쭉쭉 올라갔습니다.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린 것은 1980~1987년 사이에 선진국을 강타한, 역사상 가장 급격한 축에 속하는 불황이었습니다. 금리 정책 같은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인플레이션을 해결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반론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금리를 올려서 불황이 온 것이잖아요.’ 금리 인상이 불황에 일조한 것은 맞지만 불황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었습니다. 주요 경제국들의 이윤율이 주저앉았었고, 커다란 이윤율 위기가 배경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상황을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불황 가능성을 한층 더 키울 것이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어떤 정책을 취하더라도 불황은 닥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강조하고 싶은 바입니다. 중앙은행의 정책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금리가 너무 많이 오르면 그때 가서 인상 속도를 조절해서 불황을 피하면 된다”고 많이들 말합니다. 저들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면 자본주의 경제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세금과 재정지출을 늘리거나 줄여서 경제를 조절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류의 거시적 관리 기법은 자본주의에서 통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황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이윤에만 관심이 있는 거대 기업과 거대 은행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윤이 떨어지면 불황을 택할 것입니다. 우리 중 4분의 1이 일자리를 잃는다 해도 혹독한 불황은 자본주의에 매우 유익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끔찍한 얘기겠지만 저들에게는 아닙니다. 저들은 불황으로 ‘쓸모없는 것’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새로운 경기 확장 국면이 열리길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항구적 위기란 없습니다. 우리가 나서서 상황을 바꾸지 않는 한, 저들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회 관계가 변하지 않고 세계경제를 결정하는 자들을 갈아치우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계속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신기술을 발전시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본주의가 그렇게 전진하기 대단히 어려운 시기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의 시기만큼은 물론이고 신자유주의 시기만큼 전진하는 것도 녹록치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가 분열돼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화는 1982년에 시작된 불황을 극복하면서 나타난 중요한 현상이었고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전진했습니다.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며 막대한 이윤을 창출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인데, 미국 제국주의와 세계화의 정책을 따르지 않으려는 국가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분열된 세계, “다극화된 세계”에 살고 있고 미국 제국주의의 헤게모니가 도전받고 있습니다. 미국이 달러를 이용해 세계의 통화를 통제하던 지위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헤게모니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러는 죽지 않았고 여전히 지배적인 통화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당장 러시아 제재만 봐도 이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처지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제 질서가 분열돼 있습니다.
당장은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문제로 유럽을 결집시켰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갈까요? 겨울에 가스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유럽에서 에너지 부족 사태가 심각해져도 여전할 수 있을까요?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또 어떻게 될까요? 두 나라는 각각 기술과 금융 부문에서 배제당했는데, 이에 대처하고자 서로 손을 잡을까요? 이런 변수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과거의 방식을 되풀이해서 이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처음으로 우리는 만만찮은 지정학적 갈등과 세계의 분열을 목도하고 있고, 세계는 극도로 위험해졌습니다. 향후 10년 동안 (만약 그때에도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다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정치적 충돌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명심하십시오.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이지만, 그 다음은 미국과 중국, 대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