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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뱅크 파산:
경기 침체 속 금리 인상으로 커지는 금융 불안정

3월 10일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의 갑작스러운 파산은 세계경제의 취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SVB는 자금 조달 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문이 돈 지 불과 36시간 만에 예금 56조 원이 인출되는 뱅크런이 벌어지며 파산했다. 이후 암호화폐를 주로 거래한 미국의 시그니처은행도 뱅크런이 벌어지며 파산하는 등 여러 은행들이 동시에 위기에 처했다. 미국 정부는 긴급하게 파산한 은행들의 예금을 전액 보장하겠다고 발표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유럽과 아시아 등에서 은행 주가가 떨어지며 세계적으로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위기는 세계 9위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로 확산됐다. 크레디스위스의 자산 규모는 2008년 파산한 리먼브라더스의 두 배에 달한다. 파산을 막기 위해 스위스 중앙은행이 70조 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가 과연 2008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처럼 금융 위기의 방아쇠 구실을 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자국 금융시스템이 안정적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2008년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지기 전까지도 각국 정부들은 비슷한 말을 한 바 있다.

물론 SVB 파산은 리먼브라더스 파산과는 차이가 있다. 2008년에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자 주택담보대출과 그에 기반을 둔 파생금융상품들이 부실해지며 금융 위기가 촉발됐다.

이와 달리 SVB 파산은 IT 벤처기업 거품이 꺼진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IT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크게 성장했는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IT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었을 뿐 아니라 각국의 저금리 정책 덕분에 투자금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IT 벤처기업과 주로 거래하는 SVB도 지난 몇 년간 급성장했다. SVB의 자산 규모는 2020년 말 1155억 달러(약 150조 원)에서 2021년 말 2115억 달러(약 275조 원)로 거의 2배로 불어났다. SVB는 이렇게 늘어난 자금을 안전자산이라고 여겨지는 미국 국채에 대량 투자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경제가 침체하고 금리가 급격히 인상되자 IT 벤처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됐다. 이에 따라 이 기업들은 SVB에서 예금을 인출해 가기 시작했다. SVB는 예금 지급을 위해 보유하고 있던 국채를 팔았지만 금리 인상으로 국채 가격이 하락하며 큰 손실을 봤다. 이런 상황이 알려지며 뱅크런이 벌어진 것이다.

구체적인 양상의 차이는 있지만, 리먼브라더스와 SVB 파산은 근본에서 같은 원인 때문에 벌어졌다.

기업들의 수익률이 낮은 상황에서, 저금리로 부풀어 있던 자산 가격이 꺼지자 취약한 부문의 부실이 드러난 것이다.

영국 마르크스주의 경제 분석가 마이클 로버츠의 분석을 보면, 미국의 비금융 기업 이윤율은 2008년 전에 견줘 더 떨어졌다. 2008년 위기를 낳은 낮은 수익성이라는 문제는 지난 15년간 오히려 더 심화된 것이다.

ⓒ자료 출처 마이클 로버츠 블로그

각국 정부들은 저금리로 경기를 부양하려 했다. 이 돈 중 일부는 IT 벤처기업에 ‘과잉 투자’ 됐고, 더 큰 돈은 주식‍·‍부동산 시장 등에 흘러들어 자산 거품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부채도 크게 치솟았다. 세계 총부채는 2008년 이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00퍼센트 수준에서 지난해에는 GDP의 345퍼센트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등 각국 정부들이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 인상에 나서자 기업들의 부실이 증대하고 주식‍·‍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꺼지며 부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며 관련 기업들이 파산한 데 이어 최근에는 IT 벤처기업 관련 은행이 위기를 맞고 있다. 크레디스위스의 위기는 이 사태가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기업주들을 위한 막대한 지원

미국 정부는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신속하게 기업주들을 지원하고 나섰다. 고액 예금도 전액 보증하고, 연준이 위기에 빠진 은행들을 지원할 때 은행들이 보유한 국채 가격을 액면가대로 인정해 주는 등의 조처를 발표했다.

바이든 정부는 재정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재원을 활용해 예금주들을 지원하는 것이기에 2008년 구제금융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2008년에 기업주와 은행들을 살리려고 정부가 막대한 구제금융을 지원한 것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큰 것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SVB의 예금주 대부분은 IT 벤처 기업주들이다. 바이든 정부가 신속하게 예금 전액을 보증하겠다고 나선 것은 IT 기업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SVB의 자산을 판매해서 지원금을 회수하겠다고 하지만, SVB의 자산 가치가 하락한 상황이므로 결국 정부가 막대한 돈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위기에 처한 IT 기업들과 은행들은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며 수익성을 높이려 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런 노동자 해고와 임금 삭감 등을 막을 조처는 전혀 내놓지 않았다. 결국 2008년과 마찬가지로 기업을 살리는 데는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하는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큰 고통이 전가되는 것이다.

2008년 위기 속에서도 은행가들과 기업주들은 큰 보너스를 챙긴 반면, 미국에서만 900만 가구가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집에서 쫓겨났고, 일자리 수천만 개가 사라졌다. 이 때문에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었다.

지금도 SVB의 CEO 그레그 베커는 파산 직전에 주식 47억 원어치를 매각하며 돈을 챙겼다.

2008년과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 등 서민이 아니라 기업주와 은행가들이 지게 하기 위한 대중적 투쟁이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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