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긴 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다:
세계경제 전망①

다음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편집자이자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히다 — 알기 쉬운 요점 자본론》의 저자인 조셉 추나라가 7월 2일 런던대학교에서 했던 강연과 정리 발언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마이클 로버츠도 패널로 연단에 동석했다.

경제학의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성격이 지금처럼 노골적이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각계의 경제 관계자들의 말을 한 번 들어 보시죠.

영국 중앙은행 총재이자 50만 파운드[약 8억 원] 넘는 연봉을 받는 앤드류 베일리는 최근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 인상 요구를 정말로 자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실로 계급의식적인 발언이죠. 그런데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린 반응이 재밌습니다. 다음 글을 쓴 마틴 샌부는 딱히 급진적인 사람도 아니지만 이렇게 썼습니다.

“임금 인상이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지 묻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나머지, 마진[원가와 판매가의 차액]이나 이윤의 방어가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지는 묻지 않기 쉽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적 태도라고 본다. 자기도 모르게 특정 경제 계급에 유리한 해법이 나오도록 구도를 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적 계급이라는 개념은 매우 오랫동안 주류 경제학에서 퇴물 취급을 받았다.”

이런 글이 기업주들의 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렸다니 아주 인상적입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경제면 편집자] 크리스 자일스도 딱히 급진적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썼습니다.

“영국 중앙은행이 우리를 크게 한 방 먹이려는 것이 틀림없다. 영국 중앙은행은 사람들이 더 쪼들리고, 소비를 줄이고, 임금 올려 달라는 얘기를 꺼내기 무섭게 하려 한다.”

재미있는 발언은 더 있습니다. 제러미 러드는 하버드와 프린스턴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그야말로 주류 중의 주류인 인물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를 위해 연구 보고서를 씁니다. 그가 쓴 보고서에서 저는 다음 대목을 특히 좋아합니다.

“주류 경제학에는 ‘모두들 당연하게’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넌센스에 불과한 생각들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이런 생각들에 근거해서 실제 경제 현상에 관한 견해를 체계화한다… 이런 상황이 해롭거나 위험하지는 않을까?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실제로는 미심쩍은 생각들에 따라 중대한 정책을 시행하면 어떡하나 하고 우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로 그런 일이 현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방금 인용한 보고서의 각주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본 연구 보고서에서는 주류 경제학이 우리 사회에서 수행하는 주된 구실이 범죄적으로 억압적이고 지속불가능하고 불의한 사회 질서를 변호하는 것이라는 더 심각한 우려는 다루지 않겠다.”

이렇듯 지금 경제학은 대단히 정치적입니다. 여러 면에서 그렇지만,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사실은 현 상황에서 10퍼센트 이하의 임금 인상률은 실질임금 하락이라는 점입니다. 지금 철도 노동자 등이 파업에 나서는 것을 우리가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저는 인플레이션 위기의 맥락,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지배계급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마 청중석에 계신 분들 대부분은 지금처럼 가파른 물가상승률이 살면서 처음일 것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들은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을 기억하실 테지만, 영국이나 미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처음일 것입니다.

“영국이나 미국”이라고 단서를 달았는데요, 개발도상국과 빈국에서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등지에서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아주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바 있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촉발한 핵심 계기 하나는 식료품 등의 물가가 크게 올라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면 아주 격렬한 노동자 투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 몹시 중요합니다. 영국에 사는 우리에게 이런 일은 오랫동안 남의 나라 얘기였죠.

지금 보시는 것은 미국과 영국과 유로존 물가상승률의 장기 변동을 나타낸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1989년 1월 이래 지금처럼 물가상승률이 높았던 적은 세 지역 모두에서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설명할 이론이 주류 경제학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류 경제학에서 인플레이션을 설명하는 주된 이론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통화주의 교리로, 화폐 공급이 너무 많아서 인플레이션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돈을 너무 많이 찍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거죠. 다른 하나는 케인스주의의 천박한 변형으로, 경제가 ‘필립스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즉 물가와 실업률은 길항 관계여서 실업률이 낮으면 물가인상률이 높고 그 역도 성립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보시는 그래프는 해마다 광의의 화폐[현금이나 결제성 예금 외에도 저축, 시장형 금융상품, 채권까지 포괄한다] 공급량 증감률에 물가상승률을 대응시킨 것입니다.

통화주의가 옳다면 이 그래프의 점들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대각선 모양을 이뤄야 합니다. 하지만 점들의 분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습니다. 통화주의는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미국과 영국의 수치만을 제시했지만 다른 어느 나라를 조사해 봐도 역시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는 무의미한 데이터를 얻을 것입니다. 이것이 통화주의의 현주소입니다.

다음은 현실의 ‘필립스 곡선’입니다. 이론대로라면 점들이 매끄러운 L자형 곡선을 뚜렷하게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영국 자료에서는 그런 패턴을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자료는 양 극단으로 튀어나온 점들 때문에 언뜻 그런 패턴에 부합하는 듯하지만, 이 점들은 사실 팬데믹 동안의 예외적 현상들입니다. 미국에서는 물가 상승률이 낮은 시기에 팬데믹으로 실업률이 급등했고, 고실업이 끝난 후에는 전혀 다른 이유로 물가가 치솟았죠. 즉, 이 점들은 어떤 패턴이 아니라 예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반면, 그래프의 중심을 보면 ‘필립스 곡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설명

이렇듯 주류 경제학은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보다 잘해야겠죠.

공정하게 말하면 인플레이션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도 여전히 미완성 상태입니다. 저나 여기 있는 마이클 로버츠, 그리고 다른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런 이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통찰들은 역사적으로 이미 제시돼 왔습니다.

먼저, 인플레이션은 복합적인 수준의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는 현상인 만큼, 복잡한 현상이고 원인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매우 장기적인 수준에서 자본주의가 갈수록 생태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생산 비용은 순전히 마르크스주의적인 가치 면에서 더 비싸질 것입니다. 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하고 자본에 가해지는 생태적 압력이 커지면 이것은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을 훨씬 급속하게 일으키는 과정은 이런 과정과 구분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살펴보려면 화폐의 구실을 설명에 도입해야 합니다.

인플레이션은 가치와 화폐가 맺는 관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 가치와 화폐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화폐는 가치를 청구할 권리죠. 한편, 인플레이션은 자본주의 기업들에 의해 어떻게 가치가 생성되는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런 자본 축적 과정을 통해 갈수록 더 많은 가치를 축적하려 하죠. 그리고 이런 요인들의 상호작용을 보면 주류 경제학 이론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인플레이션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는 개념도이지만, 너무 겁먹지는 마십시오. 이것은 마르크스가 말한 산업 자본 순환에 화폐를 투입하면 자본주의 경제에서 보통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매우 대략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먼저, 화폐는 은행 등의 민간 기관이나 정부에 의해 신용 화폐나 불환 화폐 형태로 생성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화폐가 생산과 축적 과정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그림의 상단은 축적 과정이 건강할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화폐가 생성되고, 이윤 획득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그럼으로써 자본이 확대되면 화폐가 생성된 만큼 가치가 생성돼 균형을 이룹니다.

그림의 하단은 이런 순환이 고장난 경우입니다. 검은색 박스는 어떤 이유에서든 상품을 생산 비용대로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 경우,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체제의 원래 논리대로라면 잘못된 선택을 한 기업과 은행이 파산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길도 있는데, [구제금융 등으로] 부채를 부채로 돌려막거나 가격을 올리는 방법으로 손실을 사회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손실이 사회화된 상황에서 다음 화폐 생성 주기와 생산 주기가 계속되는 것이죠. 그 결과 [같은 화폐로 청구할 수 있는 가치의 양이 줄어듦으로써]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이런 설명이 통화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2008년 이후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를 통해 막대한 화폐를 생성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했나요? 금융 자산의 가격은 올랐지만,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실물 경제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닥치지 않았습니다. 자산 거품은, 오늘날 목도하는 재화·서비스 가격 상승과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그런 만큼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규명하려면 뭔가 추가적인 요인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매우 일반적이고 추상적입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더 나아가 특정 시기에 인플레이션을 추동하는 요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살펴볼 수 있는 요인들은 아주 많습니다.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적하듯이, 자본이 더 집중돼 있고 독점이 형성된 부문일수록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런 부문일수록 기업들이 가격을 올릴 여지가 더 많을 테니까요. 또한 정부가 수요를 떠받치려고 개입을 크게 늘리는 때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쉽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른 요인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것은 바로 경제 전반의 이윤율과 자본 축적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안와르 샤이크가 1980~1990년대에 시작한 매우 흥미로운 분석이 있습니다.(현재 그는 “고전적” 경제학자를 표방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를 표방했습니다.)

이 그림으로 샤이크는 인플레이션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을 실증적으로 잘 보여 줍니다. 그것은 축적률이 높지만(기업들의 투자율이 아주 높음) 이윤율은 빠르게 떨어지는 상황일수록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투자 의욕은 많지만(그래서 수요가 커집니다) 정작 투자할 만한 범위는 적습니다(이윤율이 낮으니까요). 샤이크는 이런 긴장을 측정하려고 “성장 활용 비율”이라는 지표를 개발했는데, 이것은 그냥 이윤율에 대한 축적률의 비율입니다. 그리고 이 지표를 보면, 1970년대에 인플레이션이 그토록 심했던 이유를 일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 전후 장기 호황이 길게 이어지면서 형성된 높은 축적률이 1970년대의 위기와 이윤율 급감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됐던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의 인플레이션을 추동하는 한 요인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양상이 사뭇 다릅니다. 이윤율은 아주 오랫동안 자본주의 전반에 걸쳐 저조했고, 축적률도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됐습니다. 축적률이 이윤율만큼이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일반적인 조건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뀐 것도 있습니다. 이 변화는 자본주의가 팬데믹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생긴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구체적인 수준의 분석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팬데믹 자체는 전혀 끝나지 않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각종 제한 조처가 풀리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취한 대응을 봐야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물가가 치솟는 것은, 그간 봉쇄 조치로 누적됐던 수요가 공급 사슬 교란, 노동시장 교란,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에 생긴 온갖 차질들에 부딪힌 결과입니다. 이런 상황, 특히 2021년 하반기에 봉쇄 조치들이 종료됨에 따라 투자가 늘었을 때, 단기적 물가 상승과 위기가 닥칠 것은 익히 예상됐던 일입니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둘 다 매우 중요한 식량 생산국입니다. 특히, 개발도상국과 빈국의 식량 공급에 중요한 나라들이죠.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의 뿔’ 등지에서는 현재 수백만, 수천만 명이 전쟁의 결과로 기아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에너지 산업에서도 비중이 큰 나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미국과 함께 세계적 수준에서 지배적인 에너지 수출국이 되고자 분투하는 3대 산유국의 하나죠. 이런 점이 인플레이션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여기에 투기꾼들까지 가세했습니다. 가격이 치솟는 곳에서는 언제나 이런 투기판이 벌어져 가격 상승을 더 심화시키는데, 이런 현상은 특히 에너지 부문에서 심합니다.

하지만 이런 우연적 요인들만 작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런 요인들이 전부였다면 인플레이션은 아주 빠르게 가라앉을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은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대처하는 방식 탓에 더 확대되고 길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기업들은 가격을 올려서 마진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가격 인상이 임금 인상률을 훨씬 웃돌고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각에서는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의 악순환’을 거론하는데 완전히 터무니없는 얘기입니다. 임금이 오른다고 해도 임금 인상률은 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지난 몇 달 동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해당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임금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플레이션 탓에 노동자들에게서 자본가들에게로 가치가 이전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이윤, 비노동비용(원자재, 소재 등 생산 단계에서 쓰이는 것들), 노동비용이 각각 물가 상승에 기여한 몫을 계산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계산을 했는데, 지금 보여드리는 것은 미국의 최신 통계로 계산한 것입니다.

이 그림을 보시면, 임금 인상은 물가 상승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합니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임금보다는 공급망 교란과 에너지 가격, 마진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입니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 위기는 이윤에 의해 추동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주의 정치와 계급 문제로 돌아가게 되죠.

특히, 에너지 기업들의 이윤은 정말 터무니없는 수준입니다. 에너지 기업들의 이윤이 얼마나 치솟았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는 차고 넘칩니다만, 에너지 기업들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지금 경제 전반으로 마진 늘리기가 확대되고 있고, 모든 주요 자본주의 기업들이 그러고 있습니다.

발제를 마치기 전에 지배계급의 대응에 관해 몇 마디 하겠습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중앙은행의 해결책은 사실상 하나뿐입니다. 신자유주의 시기를 지배한 교리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그 임무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며, 그 방법은 통화 공급을 옥죄고 금리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지배계급에게 두 가지 난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인플레이션이 국제적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한 국민 경제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닌 만큼, 중앙은행에 관한 신화를 받아들인다 해도 금리 인상이 어떻게 물가를 잡을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경제가 경착륙하고 경기가 빠르게 추락해, 그것의 효과로 인플레이션이 가라앉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다시 말해, 저들이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겠다며 취한 조처로 우리는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둘째, 더 일반적인 논점으로, 그런 시도가 불황을 초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 그래프를 보시죠.

이 그래프는 미국 연준, 영국 중앙은행, 유럽 중앙은행의 정책 금리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현 국면의 자본주의는 저금리에 중독돼 있습니다. 낮은 금리는 신용의 확대를 촉진하고 이것이 이윤율이 낮은 상황에서 경제를 추동해 왔습니다. 일종의 체제의 생명유지 장치인 셈입니다.

그 결과, 가계 부채도 물론 심각하지만 기업 부채가 특히 심각합니다. 선진국뿐 아니라 개도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970년대 말 금리가 크게 올랐을 때 라틴아메리카와 제3세계에서 부채[외채]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부채 위기는 특정 경제 부문이나 몇몇 나라들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 부채 위기가 닥칠 수 있고, 그 결과는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을 혹독하게 강타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실로, 일생일대의 싸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토론 요약

질문들이 많았던 만큼, 제한된 시간 내에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먼저, 암호화폐에 관해 짧게 답하겠습니다. 뉴스에도 많이 나오고, 제가 답변하면 그만큼 마이클 로버츠 동지의 답변 시간을 벌어 줄 테니까요.

암호화폐는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봤을 때 진정한 의미의 화폐 형태로 보기 어렵습니다. 마르크스뿐 아니라 고전적 정치경제학자들이 보기에도 화폐는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자 유통수단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암호화폐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투기적 자산군에 속합니다. 사실 애초에 그러려고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막대한 신용 거품을 배경으로 잇따라 거품을 형성했다가 엄청나게 폭락했죠.

더 일반적으로 말해, 현대 자본주의하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폐 외에 다른 용도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한 가지는 분명하게 조언할 수 있겠네요. 암호화폐에는 투자하지 마세요. [청중 웃음]

다음으로 짚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의 변화에 관한 것입니다. 몇몇 분들이 말씀하셨듯이, 팬데믹 기간에 실업 문제는 상대적으로 잠잠했습니다. 그 점에서 팬데믹 위기는 기이한 위기였습니다. 팬데믹 시기에 영국은 국민총생산이 역사상 가장 급격하게 하락했지만, 기업들의 채무불이행률, 부도율, 파산율은 오히려 모두 줄었습니다. 실업 문제도 믿기 어려울 만큼 잠잠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팬데믹 기간에 노동계급은 온갖 어려움에 부딪혔죠. 그러나 위기 수준에 비하면 실업 수준은 아주 낮았습니다. 유럽 전체를 보면, 18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노동시간 손실은 39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과 같았습니다. 정부 개입으로 그만큼 실업을 줄인 것입니다.

이것은 더 일반적인 흐름의 일부입니다. 자본주의가 노쇠함에 따라 자본의 기본 단위가 점점 커졌습니다. 또, 자본은 국가와 더 긴밀해지고, 금융 체계에 더 깊숙이 얽히고, 지리적 활동 범위가 더 넓어졌습니다. 그 결과 훨씬 더 복잡한 국제적 체계가 형성됐습니다. 그 결과, 이 기업들의 파산은 자본주의 체제 전반에 커다란 위협이 됩니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제가 말하는 ‘국가-중앙은행 복합체’가 양적완화, 초저금리, 구제금융, 직접 개입 등 다양한 형태로 개입을 늘리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 점은 청중 토론 시간에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던진 중요한 질문, 즉 ‘앞으로 신자유주의를 역행하는 과정이 전개될까?’에 대한 답을 줍니다. 이에 관해서는 매우 신중해야 하는데요, 신자유주의의 일부 고약한 요소들[특히, 노동조합에 대한 제약, 노동 유연화, 사회복지 감축 — 옮긴이]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 자본주의는 제2차세계대전 직후와 같은 형태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지금은 국가와 중앙은행 개입이 필수적인 국면입니다. 지정학적 갈등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제국주의(간) 갈등인 미·중 갈등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 등은 러시아와의 갈등에서도 중앙은행들을 동원합니다. 또한 국가와 중앙은행의 개입은 자본주의 위기를 관리하는 데에 필수적입니다. 그들이 원치 않더라도 개입해야 하는 일이 자꾸만 생기고 있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언제나 위험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전망을 해 보자면, 저는 앞으로 매우 심각하고 급격한 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불황은 대량 실업, 기업들의 줄도산과 같은 야만적 방식으로 인플레이션을 잠재울 것입니다. 그런 다음 자본주의는 또다시 위기 관리를 위해 금리 인하나 양적완화 같은 조처에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럴수록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토대를 망가뜨릴 것이라는 점입니다. 생태 위기, 노동쟁의, 지정학, 경제 위기 등의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은 전에 없이 첨예해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지만, 자본주의의 대안인 사회주의의 승리는 전혀 예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했던 것처럼 여러 흥미로운 그래프를 보며 마르크스주의적 인플레이션 이론에 관한 토론도 해야 하지만, 더 나아가 현 시기에 벌어지는 투쟁에 참여하고, 그런 투쟁들에 반자본주의·사회주의 정치를 도입해야 합니다. 즉,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이 있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맞서 싸우고, 그 체제를 타도하고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체제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한결같이 주장하는 정치를 투쟁에 도입해야 합니다. 지금 시기에 우리에게는 바로 그런 정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