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파운드화 가치 급락: 영국발 금융 공황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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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리 리즈 트러스와 재무장관 쿼지 콰텡이 내놓은 [대규모 감세 정책 등의] “재정 이벤트”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가장 신랄한 것은 전 미국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의 비판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영국은 침몰하는 신흥국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는 영국 파운드화의 붕괴를 두고 하는 말이다. 9월 26일 파운드화의 가치는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새 보수당 정부에 대한 금융 시장의 대대적인 불신임 투표다.
논평가들이 말하는 “신흥국” 위기란 1990년대 초 멕시코에서 오늘날 터키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규모가 큰 개발도상국에서 되풀이돼 온 위기를 말한다. 이런 나라들은 보통 달러로 된 막대한 외채에 힘입어 잠깐 동안 호황을 누렸다. 그러다 거품이 터지면 그 국가의 통화 가치가 외환 시장에서 폭락했고, 그 결과 외채를 갚기 더 어려워져 위기가 악화됐다.
이런 식의 위기가 현재 전 세계적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달러의 가치가 급격하게 올라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논평했듯이 “‘거꾸로 된 환율 전쟁’[보통의 환율 전쟁은 자국 통화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식으로 이뤄진다]이 한창이다. 세계 곳곳의 통화 당국들은 0.25퍼센트포인트 단위로 금리를 조정하던 관행을 버리고 0.5나 0.75, 1퍼센트포인트 단위로 ⋯ 금리를 조정하고 있다. 달러 대비 자국 통화 가치의 하락을 막기 위해서다. 금리 인상이 ⋯ 어찌나 거셌던지 지난주 세계은행은 그런 조처들로 인해 세계 경제가 파괴적인 경기 후퇴를 겪을 것이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붕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많은 상품의 가격이 달러로 매겨진다. 그러므로 연준의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것과 다름없다. 부채 부담도 늘어날 것이다. 채무자가 더 높아진 이자를 더 비싸진 달러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있다. 2022년 초 그 규모는 517억 파운드로 국민소득의 8.3퍼센트에 해당한다. 영국은 식료품과 공산품 수입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전 영국 중앙은행 총재 마크 카니의 말처럼 “낯선 자들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즉, 끊임없는 해외 자본 유입에 기대야 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영국은 이미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인 유럽연합과의 관계가 틀어져 버렸다. 그리고 천연가스 수입에 의존하는 처지 때문에 영국은 현재 유럽의 물가 급등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한 에너지 위기에 특히 취약해졌다.
트러스와 콰텡이 곤경에 처한 이유는 지난 23일 그들이 정부 지출을 막대하게 늘릴 태세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은 단지 위기에서 가구와 기업들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트러스와 콰텡은 450억 파운드(약 70조 5000억 원) 규모의 부자 감세가 연간 경제 성장률을 금융 위기 이전 수준인 2.5퍼센트로 끌어올리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도박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마거릿 대처의 후계자를 자처하지만, 그들의 정책은 1980년대 미국의 대통령이자 대처의 막강한 동맹자였던 로널드 레이건의 정책을 더 닮았다.
그러나 영국은 미국과 달리 세계 주요 준비 통화를 통제하는 국가가 아니다. 그리고 시장은 트러스와 콰텡이 실패한다는 데 베팅하고 있다. 한 가지 이유는 영국 정부가 추가 지출에 쓸 돈을 더 비싼 이자를 내면서 조달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당은 가차없는 국제 통화의 압력으로 진퇴양난에 처했다. 이미 영국 중앙은행은 정부 정책이 낳을 물가 상승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애초 계획보다 금리를 훨씬 올리겠다고 강력하게 시사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주 9월 15일에 금리를 0.5퍼센트포인트 올리는 데 그쳤다. 이는 현재 잇따르고 있는 [미국 연준 등의] 0.75퍼센트포인트 금리 인상에 못미친다.
런던 금융가의 큰손인 도이체방크는 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위원회에 긴급 회의를 열어서 금리를 더 올리라고 촉구했다. 그렇게 해서 (《타임》의 경제 편집자의 표현을 빌리면) “중앙은행이 ‘무슨 수단이라도’ 동원할 태세가 돼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도이체방크 소속의 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장은 현재 영국의 실질 수익률과 환율하에서 영국이 대외 적자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돈을 댈 의사가 없다는 뜻을 매우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러스와 콰텡이 그토록 떠받드는 시장이 어쩌면 그들의 정부를 마비시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