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개악안:
보장 축소, 보험료 인상으로 노동자·서민에게 고통 전가하기
〈노동자 연대〉 구독
12월 8일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 건강보험료 인상이다. 13일에는 윤석열이 직접 나서 ‘문재인 케어’를 “인기 영합적 포퓰리즘”이라 비난했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케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다. ‘문재인 케어’로 여성 난임시술, 아동 입원비와 충치 치료, 노인 중증 치매, MRI와 초음파 등 고가 검사비에 보험 적용 등 일부 개선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질병과 비용 부담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이들 중 일부에게는 적잖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애초 목표로 내세웠던 보장률 70퍼센트를 달성하지 못했다. 65.3퍼센트로 2퍼센트 남짓 보장률을 올리는데 그쳤다. 행위별수가제, 비급여 증가, 민간병원 중심 의료체계 같은 구조적 문제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가 추진하던 영리병원 설립 시도도 수수방관했다. 게다가 보험료는 임기 동안 연평균 2.7퍼센트나 인상해 비용 부담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겼다.
그런데 윤석열은 무임승차, 포퓰리즘, 재정 파탄이라는 자극적 용어를 써 가며 그나마 늘어난 혜택조차 줄이려 한다.
보장성 축소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이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며 건강보험 공격의 군불을 지펴 왔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국민연금처럼 적립해 뒀다가 나중에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매해 필요한 재원을 걷어서 사용하는 방식(부과식)으로 운영된다. 2022년 예산은 100조 원 규모로 결코 만만한 액수는 아니지만, 필요하면 정부 재정 지원을 늘리고 사용자와 부자들의 보험료를 인상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당장 윤석열이 추진하는 기업주·부자 감세 정책만 중단해도 매년 12조 원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건강보험은 수년간 흑자를 내 누적 적립금이 20조 원가량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 시작 전에 비해 늘어났다.
그러니 정부의 건보 재정 파탄 위협은 기업주·부자 들을 위해 노동자 등 서민의 보험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협박인 셈이다.
윤석열은 OECD 최하위 수준의 보장률로 고통받는 평범한 사람들을 비난한다. MRI, 초음파 등 의료를 과다 이용해 재정을 축낸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이 의료에도 낭비와 과잉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다. 무상의료에 가까울 정도로 보장률이 높은 유럽 국가들보다 보장률이 낮은 한국의 과잉 의료가 훨씬 심하다.
과잉 의료는 전체 의료기관의 90퍼센트를 넘는 민간병원들의 이윤 추구와 이를 규제하지 않는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서울대병원 김윤 교수에 따르면 행위별수가제, 실손보험을 통한 과잉 의료, 의료전달체계 미비로 인해 100조 원에 달하는 의료비 중 20~30조 원이 낭비된다고 한다.
반면, MRI, 초음파 검사에 보험 적용을 제한하면 평범한 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의료 불평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본인부담상한제도 후퇴시키려 한다. 정부는 소득 상위 3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의 본인부담상한을 연평균 소득의 8퍼센트에서 10퍼센트 수준으로 올리려 한다. 이들 중 다수는 특별히 고소득층이라고 할 것도 없는 노동자들일 것이다.
또 의료비 지출이 본인부담상한을 넘은 경우, 건강보험으로부터 초과 비용을 환급받으면 실손보험금은 그만큼 삭감하려 한다. 민간보험사에 돈을 내고도 돌려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자, 건강보험 재정으로 민간보험사 이윤을 챙겨 주는 셈이다. 실손보험료도 또 10~20퍼센트나 인상할 예정이다.
일부 사례를 침소봉대해 외국인들이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한다는 외국인 혐오를 퍼트리는 것도 악의적이다. 외국인 가입자들은 흑자를 안겨 주는 건강보험의 순(純)기여자다.(게다가 외국인 지역가입자는 내국인 지역가입자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외국인 피부양자가 입국 후 6개월간은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게 하고, 미등록 이주민이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환자 자격 확인을 의무화하려 한다.
윤석열은 이렇게 “절감된 재원으로 의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분들을 두텁게 지원할 것”이라지만 ‘불필요한’ 입원이 지속된다며 장기 입원을 방지하겠다고 한다. 병든 노인들이 마지막으로 갈 수 있는 ‘피난처’인 요양병원 입원마저 까다롭게 하겠다는 비정한 정부다.
보험료 인상, 공공의료 후퇴
윤석열 정부는 한국의 보험료가 선진국에 비해 낮다며 그만큼 보험 적용 범위도 늘리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몇몇 나라의 보험료율(독일 14.6퍼센트, 프랑스 13.0퍼센트, 일본 9.21퍼센트)이 한국보다 높다며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13퍼센트 전부를 사용자가 부담하고, OECD 평균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도 사용자 5.2퍼센트 대 노동자 3.5퍼센트(약 6:4)로 사용자가 더 부담한다. 정부는 이들 나라의 건강보험 국고 지원 비율(프랑스 52.2퍼센트, 일본 38.8퍼센트, 대만 22.9퍼센트)이 한국(14.3퍼센트)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도 숨긴다.
오히려 “적정 국고 지원 비율”에 대해 논의하겠다며 지원을 줄이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건강보험을 기금화해 주식 등에 투자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해 놓았다. 이에 따라 투자 손실이 나면 보험료를 올려 책임을 전가하려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출 개혁’으로 중증, 응급, 분만, 소아 등 “필수의료 지원”을 강화해 “지역완결적 필수의료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윤석열의 필수의료 강화는 “공공정책수가”란 이름으로 민간병원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는 역할만 할 공산이 크다. 지금도 공공의료 수가를 받은 민간병원이 그 재정을 필수의료에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가 만성 부족 상태인 이유는 이처럼 정부가 필수의료를 민간병원에 맡겨 놓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윤이 안 되면 투자하지 않는다.
필수의료를 강화하려면 정부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공공병원 민간 위탁, 공공병원 신증설 폐기 등 공공의료를 고사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의료 인력 확충 계획도 없다. 1년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간호사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은 채 졸업생만 늘리는 조처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 그런데 윤석열은 오히려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윤석열은 거창한 이름에 비해 초라했던 ‘문재인 케어’조차 모조리 폐기하고 건강보험과 공공의료를 축소하려 한다. 이는 항구적 생태 위기와 감염병 시대에 재앙적인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윤석열을 끌어내려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