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건강보험 적용 축소 시도:
인종차별 이용해 건보 보장성 후퇴시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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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윤석열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을 후퇴시키는 개악안을 발표했다(관련 기사: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개악안: 보장 축소, 보험료 인상으로 노동자·서민에게 고통 전가하기). 물가 인상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등 서민층에 더 큰 고통을 안기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주민의 건강보험 적용을 축소하는 내용도 담겼다.
현재 건강보험 외국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자격요건은 내국인과 같고, 모두 입국 직후부터 건강보험을 적용받는다. 그런데 이를 입국 후 6개월이 지나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외국인의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입국 직후부터 적용한다.
외국인 피부양자는 입국 후 6개월간 다치거나 병에 걸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6개월간 사고를 당하거나 큰 병이라도 나면 엄청난 의료비 지출을 감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외국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입국 후 고액 진료를 받고 출국하는 사례가 있다며 이를 정당화했다.
12월 9일 〈조선일보〉는 정부 주장의 인종차별적 성격을 보다 노골적인 말로 표현했다. “내국인들이 모은 건보 재정에 일부 외국인이 ‘무임승차’해 의료비 혜택만 받아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차원이다.”
거짓말
이는 완전한 사실 왜곡이다! 건보 재정은 내국인들만 모은 것이 아니다. 이주민도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
게다가 이주민은 건보 재정에 흑자를 안겨 주고 있다. 외국인에게 부과된 건보료는 2020년 1조 5417억 원으로 2016년 7756억 원 대비 98.7퍼센트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급여비는 72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외국인은 2015~2021년 건보 재정에 연평균 3400억 원이 넘는 흑자를 안겨 줬고, 2021년에는 그 액수가 5125억 원을 기록했다.
반면 정부는 가장 큰 체납자다. 정부는 관련 법에 따라 해마다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퍼센트에 상당하는 돈을 국고에서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2007~2020년 누적된 미지급금이 무려 28조 원이다. 2020년에만 3조 2700억 원을 미납했다(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건보 재정을 매년 국고로 지원하는 법 조항은 올해를 끝으로 일몰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는 1년 연장, 보건복지부는 5년 연장 입장이고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설령 이른바 ‘고액 진료’를 저렴하게 받을 목적으로 입국하더라도 그게 뭐가 문제인가? 이주민이 성년이 될 때까지 드는 육아·가사·교육·사회서비스 등 일체의 비용은 모두 본국에서 지출됐다. 이주민 도입 자체가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게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아낀 것이다.
본국에서 그 역할을 한 것이 이주민의 부모 등 가족이다. 그들이 병에 걸렸을 때 비용을 지원하는 것을 무임승차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또 ‘고액 진료’를 받은 것을 ‘의료 쇼핑’에 빗대고 엄청난 사치라도 부린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정부가 생명과 건강보다 돈을 앞세운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진료비가 비싸다는 것은 그만큼 치료가 힘든 병이라는 뜻이다. 정부가 ‘무임승차’ 사례로 내세운 것도 협심증으로 4개월간 2600만 원, 간 질환으로 1년간 9000만 원의 급여비를 받았다는 것이다.
본국에서는 해당 병의 진료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까지 와서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치료가 되고 나면 물가가 비싸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한국에 머물기보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기업 지원이나 군비 증강에 펑펑 돈을 쓰는 것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거나 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는 데 돈이 쓰인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 아닌가? 그 대상이 이주민이라도 말이다.
부정수급론
사실 내국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도 한국에 살지만 별도의 보험료를 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피부양자의 건보 적용을 축소하겠다는 것은 차별이다.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재정 지출을 줄이려는 신자유주의 정책일 뿐이다.
외국인 피부양자 건보 적용 축소가 전반적인 건보 보장성 후퇴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 보여 주듯이, 그렇게 줄인 지출을 내국인을 위해 쓰려는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런 논리가 발전하면 내국인 피부양자나 지역가입자의 세대원 등의 건보 적용 축소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것이다.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을 이용해 부정수급론(세금 낭비), 돈을 낸 만큼만 복지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시키고서는 이를 내국인을 포함한 전반적인 복지 축소에도 이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에 앞장선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76년 대선 유세에서 ‘죽은 남편 4명의 명의로 연금을 수령하는 흑인 여성 복지 여왕이 있다’고 선동했다. 저소득층 복지를 인종차별과 결합해 세금 낭비로 몰아붙인 것이다.
나중에 이 여성은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후 이런 복지 부정수급론은 복지 축소를 정당화하는 단골 메뉴로 이용됐다. 오늘날 미국의 복지, 특히 의료 복지는 열악하기로 악명 높다.
최근 한국 정부는 이민청 설립 추진 등 인구 감소에 대응해 이주민 유입을 일정하게 늘리려고 한다. 동시에 인종차별을 더욱 조장하며 이주민과 내국인 모두를 공격하려는 시도도 강화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후퇴와 함께 이주민의 건보 적용 축소도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