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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보장성 축소에 이어 국고 지원도 줄이려는 윤석열 정부
부자 감세와 군비 증강이 아니라 복지에 돈을 쓰라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의 법적 시효가 지난해 연말 종료됐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에는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의 20퍼센트를 지원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이는 한시적 조항으로 2022년에 일몰됐다. 정부와 국회가 지난해 법 개정을 하지 않아서 지금은 국고 지원의 법적 구속력이 사라진 상태다.

한국 정부의 건강보험 지원은 다른 나라들(2020년 기준 프랑스 62.4퍼센트, 일본 23.1퍼센트, 대만 21.7퍼센트)에 훨씬 못 미치는데, 이조차 불안정한 일몰제로 운영해 왔다.

그 이유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 책임을 줄이려는 시도와 연관돼 있다. 역대 정부들은 건강보험 재정 악화에 대응할 필요 때문에 국고 지원을 유지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이용자 부담 원칙을 강화하고 국고지원을 최소화하려 해 왔다.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 본격 시작된 의료 영리화-산업화 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 지속적으로 국고에서 건강보험을 지원하는 것은 의료 영리화-산업화 정책과 모순되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모든 정부가 의료 영리화-산업화 정책을 폈고 국고 지원 일몰제를 유지했다. 첫 일몰 후 박근혜는 겨우 1년만 연장했다. 박근혜가 탄핵당한 뒤에야 다시 5년 연장돼 2022년까지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국고 지원을 제대로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박근혜 정부보다 국고 지원율이 낮았을 뿐 아니라, 국회 다수 의석을 점하고도 일몰제를 폐지하지 않아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과 무상의료운동본부 등이 1월 2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과 국고지원 축소 시도를 규탄하고 있다 ⓒ출처 보건의료노조

지난해 윤석열 정부는 국고 지원을 1년만 연장하고 더는 연장하지 않을 수 있음을 내비쳤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1년 연장, 복지부는 5년 연장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핵심 부처인 기재부의 1년 연장 입장이 정부 입장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12월 20일 기재부는 ‘일몰 5년 연장’이 정부 입장이라며 정부 내 입장 차이는 없다고 해명했다. 기재부가 이렇게 입장을 바꾼 데에는 지출을 지금처럼 유지한 상태로 국고 지원을 중단할 경우 보험료가 대폭 인상될 것을 우려하는 기업주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듯하다. 윤석열은 12월 13일 건강보험 지출 자체를 줄이겠다고(‘문재인 케어 폐지’) 발표했다.

기금화

그럼에도 국고 지원을 줄여 나가 결국 중단하려는 계획 자체는 계속 추진 중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고 지원 일몰을 앞두고 건강보험 기금화 추진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계획은 2016년 박근혜도 국고 지원 일몰을 앞두고 내놓았다가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기금화 법안은 건강보험 재정을 유가증권이나 수익증권에 투자해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켜 “건강보험 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기업에 투자해 기업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재정을 안정시킨다는 시장 논리다. 그러나 기금화는 건강보험 재정의 장기적 안정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지난해 〈조선일보〉는 “여당과 기획재정부가 2024년부터 건강보험을 기금화하는 방안을 추진”해 “‘문재인 케어’ 같은 선심성 정책”을 도입하기 어렵게 하고, “내년 11조 원을 지원하는 걸 마지막으로 기금으로 전환한다는 게 개정안 골자”라고 설명했다. 기금화가 국고 지원 축소 및 중단, 보장성 축소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 준다. 200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건강보험을 기금화하면, “국고지원금 축소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축소하고 기금화해 건강보험 재정을 자신들에게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경제 위기의 장기화, 지정학적 불안정 등 중첩되는 위기 속에 윤석열 정부는 기업을 지원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데 더 많은 재정을 써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법인세, 상속세, 종부세 등 온갖 감세로 기업과 부자를 지원하고, 서민에게는 고금리, 고물가에 난방비, 전기요금, 교통요금 폭탄을 안겨 부자 지원으로 구멍난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윤석열이 건강보험 보장성을 축소하고 국고지원을 꺼리는 것도 서민에게 고통을 전가하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당장에 국고 지원을 중단하거나 건강보험 기금화를 도입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장성 축소와 기금화 추진 논란은 윤석열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국고 지원에 부정적임을 보여 준다. 윤석열의 첫 복지부 장관이 기재부 차관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재정개혁특위에서 건강보험 기금화를 제안한 조규홍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고 지원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 상황을 봐야 한다. 올해 국고 지원 예산(약 11조 원)이 이미 편성돼 있다고 해서 상황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예산이 편성돼 있어도 집행할 법적 근거가 속히 마련되지 않는다면, 8월에 2024년 보험료율을 결정하는 재정 추계에 이 예산이 포함되지 않아 보험료가 대폭 인상될 수도 있다. 또 11조 원의 예산이 건강보험에 온전히 지원되지 않거나 다른 곳에 사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건강보험을 지속 가능케 하기 위해 국고 지원은 필수적이다. 보기 드물게 80퍼센트가 넘는 국민이 건강보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정도로 건강보험은 특히 서민에게 필요한 복지제도다. 따라서 국고 지원은 일몰제가 아니라 항구적이어야 한다. 건강보험노조, 무상의료운동본부 등의 요구대로 2월 임시국회에서 항구적 지원으로 법을 개정하고, 국고 지원 비율도 대폭 높여 보장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

고통을 서민에게 전가해 생계비 위기를 가중시키는 윤석열 정부의 보장성 축소와 국고 지원 중단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 부자 감세, 군비 증강에 쓸 돈을 여기에 쓰라고 요구하며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