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2019~23) 발표:
‘건강보험 보장률 70퍼센트, 문재인 케어’가 실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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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4월 10일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2017년에 발표한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률 70퍼센트 달성) 실현을 위해 6조 원가량의 재원을 추가로 마련,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건강보험료는 해마다 오르는데 병원비는 여전히 비싸 노동자들이 민간보험에 추가로 가입해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문재인 케어’로 초음파, 자기공명영상(MRI) 등 그동안 보험 적용이 안 돼 비싸던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며 일부 부담이 줄어든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문재인 케어 발표 당시에도 건강보험 보장률 70퍼센트 달성이라는 목표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있었다. OECD 평균이 80퍼센트인데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또, 보장률 상향을 위한 수단도 직접적인 가격 규제나 공공병원 확충 등이 아니라 보험 적용 대상을 차츰 늘려가는 방식이다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겠냐는 우려도 컸다.
예컨대, 보험 적용 대상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새로운 비보험(비급여) 항목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면 보장률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의료기기·제약 업계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제품들을 내놓으니 얼마든지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6년보다 고작 0.1퍼센트포인트 늘어난 62.7퍼센트에 머물렀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각종 규제 완화는 문재인 케어의 실현 가능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혁신의료기기법 등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했는데 그 결과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의료기기와 약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렇게 출시된 신의료기기·신약에 보험을 적용할지 여부가 논란이 될 것이다. 적용한다면 보장률은 높일 수 있겠지만 효과도 없는 약에 건강보험 재정을 써 기업주들 배만 불리는 일이 될 수 있다(최근 논란이 된 ‘인보사’ 사건을 보라). 적용하지 않는다면 보장률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낮은 목표와 그것의 실현 가능성 말고도 문제는 더 있다. 정부는 추가로 투입하는 재원의 대부분을 보험료 인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종합계획을 보면, 2022년까지 ‘2019년도 인상 수준’을 적용해 보험료를 매년 3.49퍼센트 인상하겠다고 한다. 2019년 인상 수준은 지난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이다. 4년 동안 15퍼센트 가까이 인상하는 셈이다.
반면, 국고 지원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도 현행 13.6퍼센트를 유지한다고 한다. 이는 보험료 예상 수입의 20퍼센트를 정부에서 지원하도록 정한 건강보험법조차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임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도 재정 지원에 인색하다.
그동안 비싼 의료비로 이익을 얻어 온 병원들에게는 무척 관대하다. 정부는 ‘비급여의 급여화’ 과정에서 “의료계의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존 비급여 수익의 총 규모[를] 보전”해 준다. 사려깊게도 병원이 하는 일들 중 ‘저평가’된 부분들에 대해 보험료를 올려 ‘적정수가’를 보장해 주겠다고도 한다.
물론, 건강보험의 재정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정부의 관료주의적 태도 때문에, 꼭 필요하지만 건강보험에서 제외돼 온 치료·약물도 있다. 이런 것들에 보험을 적용해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정부는 공공의료 기관들이 ‘착한 적자’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직접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보험 진료비가 원가에도 못 미친다는 의사와 병원 들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비보험 진료로 벌어들인 수익을 모두 제외하고도 전문의들의 평균 소득이 노동자 평균 임금의 서너 갑절 이상 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올려 이들이 비급여 진료로 벌어들이던 수입까지 모두 보전해 주겠다니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종합계획에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는 것과 아무 관계없이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조처들도 포함됐다. 심지어 역행하는 조처들도 있다.
개인의 민감한 건강정보가 포함된 건강보험 빅데이터도 산업계에 제공해 ‘스마트 건강관리’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한다.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비식별처리를 한다지만 완벽한 비식별처리법은 없다는 의견이 많다.
병원과 의료 자본들에 퍼 주다 보니 건강보험 재정이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당연하다. 이를 해결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노인들에게 주던 혜택을 축소하는 것이다.
65세부터 적용되던 외래진료 정액제를 70세부터 적용한다고 한다. 수명이 연장돼 이제 70세부터 노인이란다. 변변한 복지시설 하나 없는 나라에서 그나마 저렴하게 치료받으며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요양병원 이용도 제한하겠다고 한다. “불필요한 입원 방지”를 위해 본인부담금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케어’의 취지 자체를 역행하는 것이다.
OECD 최장 노동시간으로 평생을 착취당하고 60세도 되기 전에 퇴직당한 노동자들은 노인이 돼 온갖 질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노인들의 ‘의료 쇼핑’, ‘도덕적 해이’를 들먹이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이윤에 보탬이 되지 않는 노인들에게 쥐꼬리만 한 혜택도 아깝다는 매몰찬 신자유주의 논리를 보여 준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다른 많은 지표와 함께) 1위다.
사실상 절도에 가까운 병원들의 허위·부당 보험청구는 병원이 ‘스스로’ 점검하도록 두려 한다. 자율점검제의 “적용 항목과 기관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가난한 노인들에게 제공되던 쥐꼬리만 한 혜택에는 인색하면서, 병원에서 줄줄 새는 건강보험 재정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입원환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도 애초 계획보다 축소하려는 듯하다. 애초 2022년까지 10만 병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슬그머니 2023년 누적 ‘250만 명 입원’으로 축소했다. 연 250만 명 입원을 채우는 데는 5만 병상으로도 가능하다.
2023년부터는 보장률 70퍼센트를 유지(더 올리는 게 아니라)하면서도 누적 적립금 10조 원을 유지한다고 한다. 건강보험은 개념상 매년 필요 재원을 거둬서 그해에 모두 지출하는 ‘부과식’ 사회보험이다. 따라서 비상시를 대비한다고 해도 10조 원은 지나치게 큰 규모다. 박근혜가 추진했던 건강보험 기금화처럼 금융 투자 등 기업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기 위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앞으로 5년간 적용될 건강보험 계획을 세우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가입자들의 의견은 거의 듣지 않았다. 공청회를 단 한 번 열고는 이틀 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고 끝난다. 졸속이 아닐 수 없다. 종합계획 내용의 본질이 널리 알려지기 전에 처리해 버리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종합계획대로라면 ‘문재인 케어’는 보장률 70퍼센트라는 약속도 지키지 못할 공산이 크고, 보험료만 올려 대중의 반감을 사게 될 것이다.
규제 완화와 보험료 인상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재정을 투여해 공공의료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만이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