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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적자를 서민층에 떠넘기지 말라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 반대한다

정부는 내년에도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월 15일 국회에서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당 51.6원 올려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월평균 307킬로와트시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전기요금이 1만 5841원 늘어난다. 4인 가구의 올해 10월 전기요금이 5만 2730원이었으니 7만 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폭등 정부는 전기요금을 올해 20퍼센트가량 올린 데 이어 내년에는 올해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한다

올해 10월 전기요금은 이미 지난해보다 18.6퍼센트 올랐다. 정부안대로 내년에도 추가로 인상되면 2021년보다 무려 50퍼센트 이상 인상되는 셈이다. 심지어 한전은 4인 가구 기준으로 월 8만 원을 더 올려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이제까지 전기요금 인상을 주장해 온 사람들은 한국 전기요금이 다른 나라보다 싸다고 말해 왔지만 더는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줄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이미 물가 인상, 금리 인상으로 생계비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물가 인상을 부추기는 것이니 말이다.

정부는 한전의 적자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에너지 가격 상승 속에 올해 한전의 적자는 30조 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된다. 역대 최대 규모이다.

적자의 원인

그런데 에너지 가격 상승은 세계적인 물가 인상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며 전쟁이 심화하는 것에 일조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

게다가 역대 정부들이 추진해 온 전력 산업 민영화는 한전의 적자를 더욱 악화시킨 요인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한전의 발전 부문을 자회사 6곳으로 쪼갠 뒤로 발전 부문의 민영화는 계속해서 진척됐다. 지금은 발전 용량의 30퍼센트 이상을 민간 발전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민간 발전 기업들은 올해 큰 이윤을 거뒀다. SK·GS·포스코·삼천리 등 대기업 계열의 민간 발전회사 6곳의 영업이익은 올해 3분기까지 1조 5233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얻은 8101억 원의 두 배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전이 발전소에서 전기를 구매하는 가격인 전력도매가격은 천연가스 가격에 비례해 올라간다. 그래서 천연가스를 싸게 구입해 둔 민간 발전사들의 수익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또 한전은 기업들에 막대한 할인 혜택을 줬다. 2015~2019년 5년간 전력 소비 상위 50대 기업에 준 요금 감면 혜택은 10조 원이 넘는다.

따라서 한전 적자의 책임은 이제까지 혜택을 본 기업들이 져야 한다. 가정용 전기요금을 인상할 것이 아니라 기업들에 주는 특혜부터 없애야 한다. 또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폭리를 취한 기업들을 규제하고, 그들에게 세금을 매겨 노동자·서민을 지원해야 한다.

기후 위기 대처하려면 전기요금 인상해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 환경 NGO 출신인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은 여당과 민주당 지도부가 한전의 채권 발행 한도를 늘려 주려는 것에 반대하며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전 채권 발행이 늘면 채권시장에서 기업들의 자금난을 더욱 악화시키고, 전기 요금을 올려야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한전 적자의 근본 원인은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적자를 해결하려면 “화석연료 과다 의존을 끊어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전기요금 현실화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병권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도 마찬가지 취지에서 “전기요금을 50퍼센트 이상 인상하고, 동시에 서민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한 정부 재정투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면 전기 소비를 줄여야 하고, 이를 위해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기후 위기에 시급히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 기후 위기 대응에 별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가정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부담만 키울 뿐 소비를 줄이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한국인 1인당 가정용 전기 소비량은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필수적인 전기 소비량 이상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김병권 씨도 인정하듯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전체의 1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부분 기업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탄소 배출도 대부분 기업들이 한다. 따라서 진정한 에너지 전환을 이루려면 기업들의 이윤 논리에 맞서 노동자 등 억압받는 사람들의 저항이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정의당과 기후 관련 단체들도 기업에 맞서야 한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기업만이 아니라 노동자 등 서민층도 전기요금 인상의 부담을 나눠서 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진정한 책임을 흐리게 된다.

이는 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해악적이다.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전기요금이 인상돼야 한다고 보면 기후 운동이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의 이해관계와 대립된다는 생각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후 운동에서 노동자들이 멀어지게 만든다.

이런 방향이 아니라 전기요금이나 에너지 물가 인상에 고통받는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의 불만을 대변하고, 고통을 떠넘기는 정부와 기업에 맞서 저항이 성장하도록 애써야 한다. 그런 투쟁이 성장할 때 기후 위기에 맞설 진정한 동력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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