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10월에 또 전기·가스 요금 인상:
올겨울 많은 사람들을 에너지 빈곤 상태에 빠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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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발표된 정부의 전기, 가스 요금 인상안을 반영해 일부 개정했다.
올해 8월 전기 요금은 전년 동월 대비 18.2퍼센트나 올랐다. 도시가스 요금도 18.4퍼센트 올랐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의 3배에 달하며 물가 상승을 부추겨 온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10월 전기·가스 요금을 애초 예고한 것보다도 더 큰 폭으로 올렸다.
10월부터 주택용 가스 요금은 무려 15.9퍼센트 오른다. 서울시 기준으로 가구당 월 평균 5400 원 인상된다.(3만 3980원에서 3만 9380원으로) 가스 요금 걱정에 올 겨울 추위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10월부터 전기요금도 킬로와트시당 7.4원 인상했다. 4인 가구당 월 평균 2271원 인상되는 것이다. 애초 4.9원 인상할 예정이었는데, 한 해에 킬로와트시당 5원까지 올릴 수 있는 연료비조정단가 상한선을 높여 더 크게 인상했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은 올해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무총리 한덕수는 “전기요금 훨씬 올라야 한다”며 전기 가스 요금 대폭 인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한국전력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올해 적자가 30조 원에 이를 것이라며 이를 만회하려면 4인 가구 한 달 기준으로 8만 원에 달하는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가스공사도 적자를 해소하려면 가스 요금을 두 배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 속에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지며 최근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다소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거에 비해 높은 상황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향후 불안정성도 크다. 게다가 환율 급등은 에너지 수입 가격을 더욱 높이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 상승의 부담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환율 급등에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
책임
반면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에너지 기업들과 민간 발전 기업들은 상당한 이득을 봤다.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12조 3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3분기에도 수조 원의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를 생산해 한전에 판매하는 민간 발전사들도 수익이 크게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SK E&S, GS EPS, GS파워와 같은 민간 발전사들은 영업이익률이 17~30퍼센트에 달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한전이 이들 발전소에서 전기를 구매하는 가격인 전력도매가격은 천연가스 가격에 비례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연가스를 싸게 구입해 둔 민간 발전사들의 수익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발전 공기업들은 이렇게 얻은 추가적 수익을 한전과 나눠 갖지만, 민간 기업들은 이윤을 고스란히 자기 몫으로 챙긴다. 한전의 적자가 커진 데는 이처럼 전기 생산 분야에서 민영화를 확대해 온 영향도 있는 것이다. 현재 전기 생산 부문의 30퍼센트가량을 민간 기업들이 담당할 정도로 민영화는 확대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기 생산 부문을 넘어서 판매 부문에서도 민영화를 확대하려 한다.
게다가 한전은 지금까지 기업들에게 막대한 전기 요금 할인 혜택을 줬다. 2015~2019년 5년간 전력 소비 상위 50대 기업에게 한전이 준 요금 감면 혜택은 10조 원이 넘는다.(민주당 김성환 의원, 2020)
따라서 한전 적자의 책임은 이제까지 혜택을 본 기업들이 져야 한다. 기업들에게 주는 특혜를 없애고, 에너지가격 폭등 속에 폭리를 취한 기업들을 규제하고 그들의 이윤에 세금을 매겨 노동자·서민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전력도매가격 상한제를 도입해 민간 발전사들에게 주는 비용을 줄이려는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민간 발전사들의 반발 속에 금새 정책 추진을 포기했다. 또 민주당은 올해 상반기에 에너지 기업들의 막대한 이윤에 횡재세를 물리겠다고 언급했지만, 기업들의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다.
10월 전기 요금 인상안에서 정부는 산업용 전기 요금도 일부 인상했다. 그러나 기업들에 대한 막대한 전기요금 인하 혜택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에너지 복지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 내년 에너지바우처 등 에너지 복지 예산은 492억 원(15퍼센트) 줄어들었다.
이런 정책 속에서 노동자·서민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물가 인상, 금리 인상으로 가뜩이나 생활고가 커지는 상황에서 공공요금 인상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그 부담은 커진다. 2020년에 전기료를 체납한 가구가 80만 곳에 이르고, 지난 5년간 35만 가구가 전기요금을 못 내 단전을 경험했다.
한편, 좌파 일각에서도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전기 소비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정부가 보통 사람들의 삶을 옥죌 전기·가스 요금을 인상하는데도 좌파 진영에서 반대 목소리를 듣기 힘든 데는 이런 혼란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전기 요금을 올린다고 노동자·서민의 전기 사용이 쉽게 줄이기 힘들다. 낭비하는 게 별로 없어서 그렇다. 고통 전가로 생계비 위기만 깊어질 뿐이다. 탈탄소 전환을 위한 부담은 노동자·서민이 아니라 탄소 배출로 큰 이익을 거둬 온 기업들이 져야 한다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만이 아니라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노동자·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에 맞선 저항들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에너지 가격 상승의 부담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려는 정부에 맞서 대중적 저항이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