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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세금 낮추지 말고 전기·가스 요금을 낮춰라

‘난방비 폭탄’이 서민의 삶을 강타하고 있다.

1월 가스 요금이 지난해보다 50퍼센트 이상 올라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런데 “진짜 폭탄은 2월 고지서다”라는 서민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2월 가스 요금은 1월보다도 60퍼센트 이상 늘었다는 얘기들이 많다.

정부가 전기·가스 요금을 대폭 올리자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5퍼센트 넘게 상승했다. 윤석열 정부가 물가 상승을 이끄는 주범인 것이다.

이미 고금리·고물가로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을 실감해 온 노동자들과 그 밖의 서민은 수십만 원이 오른 난방비 때문에 마른 수건도 쥐어짜야 할 처지에 놓였다.

난방비 폭탄에 대한 불만이 들끓자 윤석열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약 200만 가구에 가스 요금 지원을 늘리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기업과 부유층에 감세해 준 것만 되돌려도 공공요금 안정을 위한 재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조승진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불충분할 뿐 아니라 지원 방안도 구멍투성이다.

이미 가스 요금을 못 내 도시가스가 끊긴 가구, 지역난방을 사용하는 가구, 도시가스 대신 등유·연탄·LPG 등을 사용하는 가구 등에 대한 대책은 빠졌다. 에너지 요금 지원 대상인데도 신청 방법을 몰라 혜택을 받지 못한 가구가 수십만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게다가 정부가 내놓은 방안에는 평범한 대부분의 가구에 대한 대책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는 올 2분기에 전기·가스 요금을 더 인상하려 한다.

윤석열 정부와 친기업 언론들은 국제 연료비가 늘었으니 전기·가스 요금을 올리는 게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 세계 반도체 산업이 침체에 빠지자, 매 분기 수조 원씩 이윤을 남겨 온 거대 반도체 기업들에게 세금 감면 혜택과 보조금 지급을 늘려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고금리·고물가로 고통받아 온 노동자 등 서민을 위해 전기·가스 요금을 낮추자는 주장에는 극렬히 반대하면서 말이다.

전기·가스·수도·대중교통 같은 필수 공공 서비스의 요금을 연료비에 연동해 변경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런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들은 정부가 지원해, 공기업들의 적자를 메우고 노동자 등 서민에게 저렴하게 공급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한 재원은 기업과 부유층에 과세해 마련해야 한다. 당장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부자 감세만 되돌려도 공공요금 안정을 위한 재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진보 정당들과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은 전기·가스 요금을 비롯한 공공 서비스 요금을 낮추기 위한 대중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가스·전기 요금 인하하면 기후 위기 대처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무대책으로 일관하자 야당들은 서민 지원책을 내놓으라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소득 하위 80퍼센트 이하 가구에 1인당 10만~25만 원씩, 정의당·진보당은 모든 가구에 난방비 30만 원씩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들은 모두 에너지 기업들에 ‘횡재세’를 부과해 재원을 마련하자고도 주장한다.

이런 대책들은 서민들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한편, 이런 지원책들은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다는 약점도 갖고 있다. 요금 부과 후 지원 대책은 불필요한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기도 쉽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부가 상시적인 지원을 늘려 필수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때 전기·가스 요금의 연료비 연동제를 추진한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정의당·진보당도 (최근 입장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전기·가스 요금 인하를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있다.

진보당은 “서민 가스 요금 동결”을 주장했지만, 강조점은 여전히 난방비 지원에 있다. 정의당도 “무리한 가스요금 인상 철회”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최근 국제 가스 가격이 인하됐으므로 국내 가스 요금을 인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 애초에 가스 요금을 저렴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노동당도 정부 지원을 통한 가스 요금 인하를 지지하지 않는다. 러시아와 척지는 외교를 하며 러시아로부터 싼값에 가스를 들여오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데 그쳤을 뿐, 난방비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들여오려 하는 일본에서도 가스 요금이 폭등한 걸 보면 이런 주장은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정의당·진보당 같은 좌파 정당들이 전기·가스 요금 인하를 적극 요구하지 않는 것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전기·가스 소비를 줄여야 하고, 그러려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수요관리”의 논리에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바꾸는 것이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을 바꿀 대안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예컨대 김병권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이나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정부의 전기·가스 요금 억제 정책이 “국민을 둔감하게” 만들었다며, 에너지 요금 인하 대신 “기존 주택들의 단열 개선 지원”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전기·가스 요금을 올린다고 해서 노동자·서민이 사용량을 쉽게 줄이기는 힘들다. 낭비하는 게 많지 않아서 그렇다. 고통 전가로 생계비 위기만 깊어질 뿐이다.

그리고 왜 평범한 사람들이 값싼 난방비와 단열 개선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가?

사실 대다수 노동자·서민은 자신이 어떤 에너지를 얼마만큼 소비할지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주택을 지을 때 단열재를 얼마나 쓸지, 난방 시스템을 무엇으로 할지, 발전소는 화력으로 지을지 풍력으로 지을지 등 이 모든 것을 결정할 권한은 모두 건설회사·발전회사·정부가 독점하고 있다.

이들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기후 위기 대응은 뒷전으로 밀어 두고 있다.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당장 자신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할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십 년 치 월급을 모아야 겨우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고, 치솟는 전기·가스·대중교통 요금에 한숨부터 나오는 그들더러 에너지 절약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치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들을 기후 운동으로부터 이반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이윤을 지키려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을 굴복시키려면 거대한 운동이 필요하다. 그 운동은 저렴한 에너지 요금을 위한 재원 마련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비용을 부자·기업주들에게 걷자고 촉구해야 한다.

이런 대중 운동을 위해서는 노동자·서민의 생활고 문제를 중심에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