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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안 발표:
기후 운동의 과제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윤석열의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안 발표: 온실가스 감축은 시늉만, 에너지 요금은 또 인상”을 읽으시오.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이 발표되자 기후 운동 단체들은 일제히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일부는 공청회장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다만 환경 엔지오 대부분은 윤석열 정부의 계획이 문재인 정부의 계획에서 얼마나 후퇴했는지를 비판하는 데 압도적 비중을 할애했다.

윤석열의 계획이 후퇴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낮아지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축소한 점이 그렇다.

그러나 공통점도 많다. 구체적 이행 수단이 없는 점이나 기업주들의 자발적 노력에 의존하는 점이 그렇다.

사실 이들 환경 엔지오도 문재인 정부의 계획이 발표됐을 당시에는 정부 계획의 이러저러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제는 말로는 비판을 하면서도 실천에서는 탄소중립위원회 등 각종 정부 기구에 참여해 쓴소리하는 협력자로서 행동한 것이 약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며 무슨 압력을 느꼈겠는가. 어차피 선거 때는 민주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할 텐데 말이다. ‘거버넌스’는 정부에 압력을 넣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중 운동 건설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운동이 결국 민주당을 통해 변화를 이루려 한다면, 민주당 혹은 그 정부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는 수준으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차악론의 문제다.

윤석열 정부의 계획에 대한 이들의 비판에 노동자 등 서민층에게 부담을 전가할 에너지 요금 인상 계획에 관한 비판이 없었던 점도 아쉽다.

난방비 등 공공요금 인상에 반대하며 거리 행진하는 노동자들 ⓒ조승진

난방비 인상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기후 운동 내 좌파도 이 점에서는 약점이 많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윤석열의 탄소중립 계획을 비판했지만, 그 안의 요금인상 계획에 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장 의원은 난방비 폭탄 논란 당시에도 요금 인상을 지지한 바 있다. 당시 정의당의 공식 입장은 장 의원과는 달랐지만 인상 철회가 아니라 일시적 지원금 요구에 그쳤다.

정의당 녹색정의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의 계획이 저소득층에게 요금 부담을 전가하는 ‘시장원리’와 ‘원가주의’를 담고 있다고 옳게 비판했다. “에너지 다소비 계층의 소비를 감축”해야 한다고 모호하게 말해 노동자 등 서민층 일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뉘앙스를 남겼지만 말이다.

진보당도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을 비판했다. 하지만, 요금 인상 계획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진보당은 난방비 논란 당시에는 집회를 열고 난방비 폭탄을 규탄했지만 강조점은 인상 철회보다는 지원금 지급에 있었다.

노동당은 “서민에게 에너지값 폭등을 전가할 시장원리에 기반한 에너지 요금체계”를 옳게 비판했다.

다만, 난방비 논란이 뜨거운 쟁점일 때에는 논쟁을 회피하다가, 봄기운이 완연한 3월 중순에서야 인상 반대 요구를 내놓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414기후정의파업 준비위원회’도 비슷한 입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가정용 난방 요금 인하’라는 핵심 요구는 논쟁 끝에 13개 정책 요구 중 하나로 밀려나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됐다. 노동당은 이 연대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만 이 결정에 관해서는 별도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자신감

기후 운동 내에서 요금 인상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에너지 요금을 인상하면 소비가 줄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요금 인상을 지지하는 듯하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삶에 고통을 안겨 주겠지만 ‘지구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인간과 환경을 불필요하게 대립시키며 환경의 편에 서려는 이런 생각을 지지할 수는 없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인류가 지속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인류는 환경의 일부로서 다른 종들과 공존하면서도 물질적 삶을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 절대적·상대적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수십억 명에게 지구를 위해 생활수준 하락을 감수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현재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이 지구 생태계의 절대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주장도 별 과학적 근거가 없다.

다른 일부는 에너지 요금 인상이 적잖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각성’ 효과를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이대로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별것 아니라고 여긴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수많은 여론조사가 이를 보여 준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정부를 강제하고 사회의 작동방식을 바꿀 자신감이 부족한 데 있다.

따라서 기후 운동은 더 광범한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도움으로써 진정한 대중 운동을 성장시켜야 한다.

박근혜가 당선했을 당시에 좌절하고 사기저하됐던 사람들이 몇 년 뒤 그를 끌어내리는 투쟁에 나선 것은 단지 고통이 심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에 맞서려 한다는 사실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운동들이 이어졌고, 특히 당시에는 철도 노동자들의 저항이 구심점을 제공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사람들의 공분을 광범한 대중운동으로 성장시키고자 한 좌파의 노력도 있었다. 기후 위기를 멈출 실질적 조처들을 강제하려면 이런 요소들이 결합돼야 한다.

반면, 사람들을 고통으로 내몰아 의식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은 매우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이다. 이런 식의 주장을 하면 대중의 반감을 사기 쉽다. 마치 평화를 위해 전쟁을 겪어 봐야 한다는 주장과 비슷하게 들릴 것이다.

기후 운동과 좌파는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에 무관심하거나 냉담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삶을 개선하기 위한 그들의 투쟁이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투쟁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그런 투쟁을 촉발할 불만을 대변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