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가 말하는 이란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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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란 출신의 이란 노동운동사 연구자 페이먼 자파리가 12월 7일 중동 전문 잡지 《미들이스트 솔리대리티》 등이 주최한 온라인 강연에서 한 발제를 옮긴 것이다.
오늘(12월 7일)은 이란에서 선포된 3일간의 집중 시위와 파업 마지막 날이다. 오늘이 집중 행동 마지막 날인 것은 우연이 아닌데, 오늘은 이란의 “학생의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은 1953년 테헤란대학교 학생들이 당시 미국 부통령 닉슨의 이란 방문과 영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항의한 사건을 기리는 날이다. 그로부터 4개월 전인 1953년 8월 미국과 영국은 이란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려 한 총리 모사데크에 맞선 쿠데타를 조직했었다.
그해 이래로 12월 7일은 학생의 날로 정해져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독재와 외세의 지배에 항의하는 날이 됐다. 오늘 행동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지난 두 달 반 동안 이어진 시위가 이란인들이 자유를 쟁취하고자 벌여 온 집단적 투쟁의 오랜 전통을 잇는다는 것이다. 역사가로서 나는 항상 과거에 일어난 일에 관심이 있지만 시간 관계상 그 역사를 더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역사가 실로 20세기 내내 이어져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1906년에 이란에서는 이란 최초이자 중동 최초의 혁명인 ‘헌법 혁명’이 벌어졌는데, 이 역시 이란 정부의 억압과 외세의 지배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혁명적 전망이 있는 항쟁
두 달 반 동안 이어지고 세 달째로 접어들고 있는 이번 시위에 관해 내가 주목하는 점은, 이 시위가 수많은 이란인의 의식을 바꾸고 이란이슬람공화국 역사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전에 시위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다. 2009년에도 이란에서 대중 시위가 벌어져, 300만 명이 이란 수도 테헤란 거리로 나왔다. 이 시위는 주로 정치적 권리를 요구했다. 핵심 구호는 “내 표는 어디 갔나”였는데, 이는 당시의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것이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시위를 통해 아래로부터 압력을 가하면 체제를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느 사회 운동과 마찬가지로 그 시위에도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을 불문한 온갖 계층의 사람이 참가했다. 그러나 주된 구성원은 중간계급이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심각해지는 물가 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분출했다. 2019년 11월에도 비슷한 시위가 벌어졌는데, 당시 정부의 연료 보조금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이 시위는 전국적이었고 실직자와 불안정 노동자들이 주로 참가했다. 이 시위의 요구는 주로 사회·경제적인 것이었다. 정치적 요구도 당연히 일부 있었지만 말이다.
현재 벌어지는 시위에서 중요한 점은 정치적 자유, 사회 정의, 문화적 자유에 대한 요구가 융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융합이 균등하게 일어나지는 않고 있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하지만 지금 이란에서는 지역 수준에서 중간계급 청년과 노동계급 사람들 사이에 느슨한 연합이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힘을 합쳐 정치 체제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운동을 혁명적 전망이 있는 항쟁으로 규정한다.
이 시위를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이 시위가 혁명이 아니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말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나는 이 항쟁이 혁명의 동역학을 띠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본격적인 혁명은 아직 아니라고 본다. 그러려면 이란 거리 시위가 훨씬 커져야 한다. 현재 시위는 수만 명 규모다. 혁명이 벌어지려면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 명이 참가하고, 이란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통해 운동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또, 혁명이 벌어지려면 정권 최상층부에서 균열이 커져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무너지고 혁명적 운동을 위한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이 모든 동역학은 분명 작동하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다. 사태는 확실히 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사회와 정권 사이의 골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패였다는 점이다. 이란 사회가 시위 시작 전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두려움이라는 장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규모 탄압 속에서도 거리를 지키고 있다. 이미 1만 8000명 이상이 체포·투옥됐다. 470명 이상이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오늘 9명, 어쩌면 11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고 들었다.
시위를 지속시키는 두 요소: 대학과 쿠르드족
정권은 사람들을 겁주려 하지만 소득은 별로 없다. 향후 몇 달 동안 정권은 탄압을 하면서도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어느 정도 양보도 하는 이중 전략으로 방향을 바꿀 듯하다. 어디까지 양보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정권은 거리 시위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이미 몇몇 승리를 거뒀다. 예컨대 여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다. 여성들은 이번 시위의 최전선에 있으며, 여성의 권리는 시위의 요구 중 가장 전면에 있다. 시위 속 여성들은 그저 이 체제의 피해자로 인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저항의 최전선에 서는 것을 기뻐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래서 시위가 계속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시위가 발전해 온 궤적도 봐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 시위가 성공하려면 더 많은 대중이 참가해야 한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상당히 불균등하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 반 동안 시위의 규모에 기복이 있었지만, 두 가지 요소 때문에 지금까지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 요소는 오늘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이란의 대학들이다. 오늘 알라메 타바타바이 대학교 학생들은 “우리는 노동자의 자식, 우리는 노동자 곁에 선다”, “학생-노동자 단결, 단결”이라는 구호를 걸고 행진했다.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대학은 중요한 조직 거점인데, 학생들이 서로 만나고 모이며 운동을 지속시키는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둘째 요소는 쿠르드족 지역이다. 시위의 기복에도 쿠르드족 지역에서는 시위가 꾸준했는데, 탄압이 가장 심한 곳인데도 그랬다. 이는 쿠르드족 지역에 정치 조직과 노동조합 조직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업이 더 크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 두 요소가 현재 시위를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투쟁의 양상
그러나 과제는 대중 파업이 발전하는 것이다. 지난 며칠 동안 매우 긍정적인 징후가 분명 있었다. 예컨대 전국 40개 도시에서 상점 주인들이 철시를 했다. 물론, 그 곳의 모든 상점이 철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일부가 철시에 참가했다. 이란에는 인구가 2만 명이 넘는 도시가 340개 있다. 이중 거의 10퍼센트에서 철시가 있었던 것이다.
시위 초기에 산업 부문에서 몇몇 파업이 있었는데, 대개는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석유 노동자들이 벌인 것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다면 중요한 전환일 것이다. 이스파한 제철 노동자들과 몇몇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도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아직 산업 부문에서 대중 파업은 벌어지지 않았다.
서비스 부문에서는 교사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이란 여성 노동자의 다수가 서비스 부문에 고용돼 보건·교육 부문에 종사하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하다. 이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18퍼센트에 불과해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래서 여성의 복장에 대한 사회적 규제를 철폐하고자 하는 바람뿐 아니라 여성이 공적인 공간과 작업장에서 경험하는 차별을 없애려는 열망도 시위의 동기가 되고 있다. 이란 대학생의 약 60퍼센트가 여성이지만,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온갖 차별적 법률과 작업장 성차별에 시달린다. 시위 참가자들은 여기에도 맞서고 있는 것이다.
대중 파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마지막으로 이 파업들이 총파업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살펴보겠다. 첫째, 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국적 조직의 출현을 막으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이미 교사, 석유 등 여러 부문에 비공식적인 노동자 네트워크가 있다. 시위가 계속됨에 따라 향후 몇 달 안에 이 네트워크가 파업을 조율하고 연결하고 통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이란의 경제 상황이 실로 끔찍하다는 것이다. 나는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여러 노동자들과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그들 모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파업을 하지 않는 것은 파업 기금이 없어서 실제로 파업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적 빈곤 때문에 파업에 필요한 예비 자금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빈곤은 국가의 관리 실패와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란에 부과된 경제 제재 때문에 더 심각해졌다. 이런 식으로 제재는 사회를 멈출 잠재력이 있는 노동자들의 힘을 오히려 약화시킨다. 제재가 없었다면 대중 파업을 실제로 조직할 자신감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셋째, 현재 이 운동에는 사회 정의 요구가 부족하다. 많은 구호는 정치적 자유과 사회적·문화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나도 그 결과는 이슬람주의 엘리트를 세속 엘리트로 교체하는 데 그쳐서 유럽과 미국뿐 아니라 중동과 이집트 등지에서 추진되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지속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노동자들 사이에서 걷어내고 확신을 심어 주려면 사회 정의 요구가 중심에 놓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미 기층과 지역 수준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사회 정의에 관한 요구들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학생·노동자 단결’ 구호가 중요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란 밖에서 서방 정치 지도자들은 다른 담론을 밀어붙이고 있다. 서방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운동 대표자들을 선호한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사회 정의에 관한 구호를 내세우고 탄압받는 이란 반정부 세력 내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감옥에 갇혀 있는 레일라 호세인자데를 기리며 발제를 마치고 싶다. 호세인자데는 좌파 활동가, 학생 운동가, 학생회 회원이자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를 구축하는 조직자다. 현재 호사인자데는 건강 상태가 심각하며 석방이 필요한 상황이다. 매체와 공론장에서 그녀의 소식을 널리 알려달라고 모두에게 호소한다. 그로써 현재 이란의 수감자들이 충분히 조명받기를 바란다.
중동 전문 잡지 《미들이스트 솔리대리티》 편집자 앤 알렉산더가 녹취록을 읽기 좋게 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