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기사로 보기] 시사/이슈 톡톡:
전세 사기와 부동산 정책
—
전세 사기 멍석 깔아 준 정부. 국회 타협 말고 정부에 보증금 반환 책임 물어야
〈노동자 연대〉 구독
안녕하세요. 노동자연대TV의 [시사/이슈 톡톡]입니다. [시사/이슈 톡톡]은 다양한 시사/이슈 어떻게 봐야 하는지, 팩트부터 배경, 논쟁점까지 좌파적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지난해부터 전세 사기, 깡통 전세 피해가 전국에서 속출하면서, 세입자들이 피땀 흘려 모으고 빚을 내 마련한 전세 보증금을 떼이고 살 곳을 잃는 등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노동자 연대〉 신문의 강동훈 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전세 사기, 깡통 전세 문제가 떠오른 게 1년이 넘었는데요. 해결이 되기는커녕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피해 규모도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말씀하신 것처럼 전세 사기가 전국 곳곳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인천 미추홀구를 시작으로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부산, 경남, 경북, 전남 등 전국 곳곳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인천에서만 전세 사기범의 소유 주택은 모두 3000여 채로 알려졌고, 피해 규모는 수천억 원에 달합니다. 세입자 1명당 평균 피해액이 약 8000만 원가량으로 추산된다고 하죠.
국토교통부가 올해 들어 전세 사기를 기획조사 했는데요. 인천 미추홀과 서울 강서, 부산 해운대, 전남 광양, 세종시 등 전국 29개 동에서 전세 사기 의심 거래 2000여 건을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또, 국토부는 올 1~3월 중 전세 사기 의심 거래 469건을 경찰청에 수사 의뢰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역 곳곳에서 피해 신고 접수가 이제야 이뤄지는 상황이라서,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전세 사기가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달 한 달 동안에만 피해 신고가 1300여 건이 접수됐고, 피해 예상 금액은 300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피해가 더 확대되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최근 발생하는 전세 사기 피해는 집값과 전셋값이 폭등하던 4년 전, 2년 전에 이뤄진 계약들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요. 2021년에 체결된 전세 계약의 2년 만기가 돌아오는 올해 말, 그리고 내년까지 피해가 대폭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집주인의 사기 의도가 없었다 해도 전세 보증금을 떼일 위험에 놓인 세입자들이 매우 많다는 점입니다.
통상 집값 대비 전셋값의 비율이 80%를 넘어가면 ‘깡통 전세’라고 부르는데요, 전세 보증금이 과도하게 높아 세입자가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높은 주택을 말합니다. 지금 집값이 급락하고 있어서 깡통 전세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는 너무 모호합니다. 사기꾼들도 집값이 올랐다면 보증금을 모두 돌려줬을 것이라며 대부분 사기 의도를 부인하죠. 전세 사기의 정의가 모호한 점도 정부가 아직 전세 사기의 전체 규모나 피해자 수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에도 집 없는 설움, 세입자 고통은 다종다양했지만, 전세 사기 피해가 이렇게 대규모로 일어난 건 처음인데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이전에도 전세 보증금을 떼이는 일은 있었습니다. 2010년대 초만 해도 전세 사기라 하면, 보통 집주인을 가장한 사기꾼이 월셋집을 전셋집으로 속여 보증금을 가로채거나, 공인중개사가 집주인 대신 전세금을 받아 달아나는 사건을 뜻했습니다.
이번 사태처럼 피해가 전국에서 발생하고, 총 피해 규모가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심각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전세 사기 급증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원인은 지난 몇 년간 ‘갭 투자’ 혹은 ‘갭 투기’ 광풍이 불어 그 여파로 깡통 전세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갭 투자는 집값과 전셋값의 차액이 적은 집을 골라 전세를 끼고 집을 매입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를 말합니다. 2020년 즈음부터 2022년까지 집값과 전셋값이 폭등하고 금리는 0%대로 낮아졌을 때 갭 투자로 주택 수십, 수백 채를 구매한 사례들이 회자됐습니다.
국토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2017년 9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세입자 보증금을 승계하는 방식, 즉 갭 투자 방식으로 매입된 주택이 73만 3000채나 된다고 합니다.
이 보고서는 금리가 상승하고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고 있는 지금, 갭 투자 방식으로 매입된 73만 채 중 무려 28%, 즉 20만 9000채의 세입자가 보증금을 반환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갭 투자의 이런 문제점은 예상할 수 있었던 일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갭 투자 자체가 이미 ‘전세 사기’ 혹은 ‘전세 보증금 사고’를 일으킬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 집값 하락 시기에는 임차인의 보증금까지 앗아갈 수 있으니까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죠.
그런데 정부는 갭 투자의 위험성을 훤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전세 세입자들을 지원한다면서 전세 대출을 크게 늘렸는데요. 이에 대한 관리 감독은 제대로 하지 않아서, 집주인들은 세입자의 전세 대출을 이용해 갭 투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지금의 대규모 전세 사기, 깡통 전세 사건 대란을 만든 원인입니다.
지금 설명을 들어 보면, 이번 사태가 단지 개인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는데요. 전세 사기 급증이 역대 정부들의 정책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좀 더 설명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것 중 하나가 민간 임대사업자 활성화 제도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 정책을 본격 장려했습니다. 민간의 전·월세 공급을 늘리겠다며 임대주택사업자에게 온갖 세금 감면 혜택을 확대한 겁니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혜택은 계속 확대됐습니다.
그 결과, 2012년 106만 채였던 등록 임대주택 수는 2019년 220만 채까지 급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집값 상승을 막는다며 민간 임대사업자 혜택을 축소해, 그 수가 다소 줄긴 했지만 여전히 140만 채를 웃돌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민간 임대사업자를 활성화하며 온갖 혜택을 주자, 갭 투자가 활개칠 수 있는 여지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집주인들에게 각종 규제 완화와 감세 혜택을 줘서 주택 공급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가질 뿐 갭 투자를 규제하거나 관리·감독하는 일은 거의 손을 놓았습니다.
이와 함께 앞서 말씀드린 무분별한 전세 대출도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이미 담보 대출이 잡힌 집이라도 은행은 집주인이 전세 사기꾼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고 전세금을 빌려줬습니다. 은행들은 정부의 전세대출금 상환 보증으로 대출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간 임대사업자들을 대거 양산한 정부와 함께, 정부 보증을 안전판 삼아 맘 놓고 이자 장사를 한 금융기관들이 전세 사기의 배경에 있었던 겁니다.
전세 사기꾼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실제 전세 사기 사건 중에는 전세 계약 당시 중개사나 임대인이 ‘대출 상품을 알아봐 주겠다, 보증금을 쉽게 대출받을 수 있다’고 임차인들을 유혹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세 사기는 사기꾼들이 벌인 짓이지만 이들이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준 건 정부의 정책이었던 겁니다.
이제 대책에 대해서 좀 얘기해 보겠습니다. 전세 사기 문제가 터지자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 탓, 개인 탓을 많이 했는데요. 지금까지 어떤 조처들을 취해 왔나요? 정부 대책의 내용과 문제점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전세 사기 사태가 불거지자 지난해 7월 윤석열은 전세 사기 대책 마련을 지시했습니다. 그 후 9개월간 정부가 몇 차례 대책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온 게 없었습니다.
세입자들에게 긴급 금융 지원을 한다거나, ‘안심 전세앱’을 출시해 집주인의 납세 정보 등을 열람할 수 있게 하겠다는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세입자들이 알아서 문제 있는 집주인을 피하고, 경매 등으로 보증금을 잘 받아 내라는 것이죠.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 3명이 최근 잇달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도 정부 대책에 기대할 게 없어서였을 것입니다. 목숨을 끊은 30대 피해자는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결국 피해자 여럿이 자살하며 공분이 커지자, 정부와 여당은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는데요. 정부가 내놓은 안을 보면, 지원 대상 선정 기준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핵심은 전세 사기 피해자임이 입증돼야 한다는 겁니다. 정부는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를 구분해, 사기성이 분명한 경우에만 지원하고 깡통 전세 피해자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 해당하는 피해자들은 매우 소수일 겁니다. 인천 미추홀구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전체 2700가구 중에서도 고작 160여 가구만이 사기 정황이 입증됐습니다.
무자본 갭 투자는 전세 사기로 취급해 지원 대상을 조금 넓힐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최근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해도 정부 특별법이 ‘피해자 보호법’이 아니라 ‘피해자 걸러내기 법’ 수준인 것은 여전합니다.
이렇게 어렵게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어느 정도 구제를 받을 수 있나요?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 지원 대상이 돼도 정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정부는 경매로 넘어간 집을 사려고 하는 세입자에게 우선 매수 권한을 주고, 저금리로 4억 원까지 빌려주겠다고 합니다. 피해자가 거주만 원한다면, 낙찰은 LH가 받고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해 20년간 살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부가 전세 보증금을 일부라도 되돌려주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셈입니다. 손실을 일부라도 회복하고 싶으면, 정부가 돈을 빌려줄 테니 피해자들이 알아서 집을 사서 집값이 오르길 기다리라는 것이죠.
그러나 우선 매수권을 부여하더라도 피해자들이 그 비용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미 수천만 원의 피해를 본 사람더러 다시 수천만 원의 빚을 내라는 것이니까요.
공공임대주택 제공 방안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이 세입자들은 저리의 이자만 내고 전세를 살던 사람들이라 전세 보증금을 떼이는 큰 손실을 본다는 점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이번 사태를 개인 간의 사기 문제로 치부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보증금 회복의 책임을 세입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개인 간 사기 문제로 치부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개인 간 벌어진 사기 피해에 국가가 개입해서 세금으로 지원해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주장을 어떻게 보시나요?
이 사태는 개인 간의 사기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앞서 말씀 드렸듯이,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이번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 피해를 만들어 낸 원인 중 하나입니다. 피해자들의 말처럼 이 문제는 정부의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재난”인 것입니다.
상당수 세입자들은 정부가 유도한 대로 전세 대출을 늘려서, 정부가 육성한 민간 임대사업자의 주택에서 전세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가 전세는 개인 간 거래일 뿐이라고 말하는 건 명백한 책임 회피입니다. 정부의 정책으로 피해 본 서민들을 구제하고 전세 보증금을 돌려줘야 할 책임이 정부에게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서는 전세 사기 관련 특별법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 중인데요. 피해자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요? 먼저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이철빈 빌라왕피해대책위원장: 저희 피해자들, 지금 특별법에 매우 분노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졸속 입법으로 저희 피해자들을 우롱하지 마십시오.]
[전세 사기 피해자: 저는 9살 아이를 혼자 키우는 한부모 가정입니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찹니다. 제가 바라는 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피해자로 인정받고 이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제발 단순히 보증금액을 기준으로 피해자를 나누지 마시고 정부의 도움이 절실한 피해자인지 아닌지 판단하여 주세요.]
전세 사기 피해자의 얘기를 들어봤는데요. 국회에서는 피해자 지원에 관해 어떤 논의가 되고 있는지 얘기해 보겠습니다. 민주당의 입장은 무엇인지, 정의당과 진보당 등 좌파 측에서는 어떤 대안을 내놓고 있는지 얘기해 주시죠.
민주당, 정의당 등은 정부·여당의 특별법에 반대하면서 이른바 ‘선 구제, 후 회수’ 안을 내놓았습니다. 피해자들의 전세 보증금 채권을 정부가 구입해 먼저 보증금을 일부 보상해 주고, 이후에 정부가 구상권을 청구해 그 비용을 회수하자는 것입니다.
또, 피해자 범위를 넓혀서 전세 사기 피해자뿐 아니라 깡통 전세 피해자도 지원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이는 정부 대책보다는 나은 방안입니다. 그러나 보증금을 전액 보상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민주당 조오섭 의원 법안은 전세 보증금보다 먼저 줘야 하는 선순위 대출이 있으면 이를 감안해 보증금 채권 가격을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선순위 대출이 많으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정부가 매입하는 보증금 채권 가격이 전세 보증금의 50퍼센트는 되돌려줄 정도가 돼야 한다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습니다. 이는 민주당보다 나은 안이지만, 여전히 전세 보증금을 최대 50퍼센트까지 잃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정의당이 여기서 후퇴한 안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5월 1일 정의당, 진보당, 기본소득당이 민주당과 함께 기자회견을 했는데요. 정부의 보증금 채권 매입 방안 대신 소액보증금 우선변제권 대상을 확대하자는 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 새 안은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세입자들에게 일부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애초 정의당의 보증금 50퍼센트 보전안보다 후퇴한 방안입니다.
정의당은 정부가 선 구제, 후 회수 안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어 새 안을 내놓았다고 말했습니다. 국회에서 국민의힘과의 협상에 치중하다 보니 이런 후퇴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보증금을 다 떼이게 생긴 세입자들에게 일부 지원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후퇴는 전세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고 싶다는 피해자들의 염원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안 좋은 안으로 합의하기보다 정부가 온전히 책임지라고 요구하며 싸워야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시간 끌면서 피해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술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습니다.
정의당이나 진보당도 전세 보증금 일부 보상안에 그치고 있는데요. 전세 사기, 깡통 전세의 피해자들을 위한 진정한 대안은 뭐라고 보시나요?
사실 전세 피해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토부 장관 원희룡은 전세가 “개인 간 채무” 문제라며 여기에 국가 재정을 일절 투입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문제는 정부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재난”입니다. 정부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본 서민들에게 정부가 전세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전세 보증금 보상을 위한 재원 마련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국토부 장관 원희룡은 “모든 사기 피해는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입니다. 그동안 시장 실패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정부는 기업들에게는 여러 지원책을 내놨습니다. 건설 기업들과 금융 기관들의 부실 채권을 매입해 줬고, 앞으로 더 해 줄 예정입니다. 건설사 부실이 커지자 올해 1월에는 각종 부동산 규제를 대폭 풀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혜택을 주기도 했습니다.
전세 사기와 같은 서민층의 재산 손실 문제는 나 몰라라 하면서 말이죠. 심지어 윤석열 정부는 예산을 절감해야 한다며 공공주택 매입 예산을3조 원 넘게 삭감했습니다.
기업 감세를 되돌리고 삭감한 복지 예산을 복구하면, 전세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전세 사기 대란으로 전세 기피 현상이 일어나자 이번엔 월세가 올라 서민층 고통이 커졌는데요. 내 집 마련이 하늘의 별따기인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주택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주택 문제, 도대체 왜 이렇게 심각한 건가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번 전세 사기 대란은 집값과 전셋값이 급등했다가 떨어지면서 발생했습니다.
집값이 치솟을 때는 서민층의 일부도 대출을 늘려 집을 사기도 합니다. 그러나 ‘벼락 거지’를 면해 보려고 집을 사지만,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지면 늘어난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어 ‘하우스 푸어’가 되는 식입니다.
상당수 서민들은 최근 집값 급등기에 전세 대출을 늘렸습니다. 오른 전셋값을 대거나, 월세보다 대출 이자가 싸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대출 이자가 올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또 보증금을 떼일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전세는 줄고 월세 가격이 올라 생계비 문제가 커지고 있기도 하고요.
이처럼 오늘날 주택 문제의 구조적 원인은 사람의 삶에서 필수적인 주거조차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속에서는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은 집값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끊임없이 주택난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주택 경기는 자본주의 경제 상태와 연동해 움직이기 때문에,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의 일자리와 소득에 영향을 미칩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임금이 좀 오를 수 있지만, 치솟는 집값을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경기가 나쁠 때는 집값이 떨어질 수 있지만, 일자리와 소득도 줄어들어 서민층이 집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서민층 상당수가 내 집 마련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는 자본주의에서 실현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제 ‘2019년도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자가점유율(자기 소유 주택에서 살고 있는 비율)은 58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서울은 더 심각해서 42.7퍼센트밖에 안 되고요.
그렇다면 이런 주택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해결 가능한가요?
결국 자본주의에서 주택난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시장 논리에서 벗어난 주택을 늘리는 데 있습니다. 즉, 양질의 영구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해야만 주택난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윤을 우선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복지 정책이 공격받기 일쑤입니다.
한국은 공공주택이 턱없이 부족한 나리입니다. 서구 일부 국가에서는 전후 복지 확충으로 한때 공공주택이 많이 공급되기도 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공공 주택이 대거 매각되며 주거 복지가 후퇴했습니다.
주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이윤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를 우선해 생산이 이뤄지는 사회로 바꾸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증대한 생산력은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양질의 주택을 공급할 잠재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능력이 합리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부유층이 소유한 집을 적절히 나누고, 필요에 맞게 주택을 지어 나누면 주택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윤 논리 때문에 이런 일이 가로막히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