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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전세 사기 대책:
까다로운 조건에다 보증금 보상도 없다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 사태로 사회적 공분이 일자 최근 정부가 추가 대책을 내놓았다.

전세 사기 피해자가 자신이 살던 집을 구매할 수 있게 우선 매수권을 주고, 구입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LH가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제공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우선 매수권을 부여하더라도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그 비용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고, LH 매입 대상 조건도 너무 까다로워서 실효성이 의심된다.

지원은 뒷전이고 선별심사에 열올리겠다는 정부 4월 28일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들의 기자회견 ⓒ출처 참여연대

정부가 6가지 규정을 모두 충족해야 ‘피해자’라며 지원 대상을 매우 까다롭게 선별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세 사기 혐의로 수사가 개시되고 다수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등에만 지원 대상이 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 해당하는 피해자들은 매우 소수일 것이다. 인천 미추홀구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전체 3000가구 중에서도 200여 가구에 대해서만 전세 사기 기소가 이뤄졌다.

집주인이 사기 의도가 없었지만 깡통전세로 전세보증금을 떼이게 된 경우, 집단 피해 사건이 아닌 경우, 경매를 진행하지 않았거나 못한 경우 등도 피해를 구제받을 수 없다.

무엇보다 정부 대책에는 전세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고 싶다는 피해자들의 염원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는 실제 피해자 지원은 최소로 줄이고, 까다로운 선별 심사로 시간을 끌며 피해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정부 대책이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 피해자를 걸러내기 위한 법안”이라며 이럴 거면 차라리 특별법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책임 회피

윤석열 정부의 대책을 보면, 이번 사태를 개인 간의 사기 문제로 환원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기 사건과의 형평성 운운하며 매우 제한적인 대책만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지 개인 간 사기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전세 제도 자체가 역대 정부들이 시장주의적으로 주택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확대됐다. 1960~1970년대 산업화 추진으로 도시 인구는 폭증했지만,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같은 주거 복지 정책은 외면했다. 주택은 부자들이 여러 채 소유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 수단이 됐고, 이 과정에서 전세 제도가 발달했다.

지난 몇 년간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세를 활용한 ‘갭투자’는 기승을 부렸다. 특히 박근혜·문재인 정부가 감세 혜택 등을 주며 민간 임대사업자를 육성하자, 갭투자를 통해 수백, 수천 채의 주택을 소유해 큰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 문제가 더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집값과 함께 오르는 전셋값 때문에 세입자들이 고통을 겪었지만, 정부는 전세 대출을 늘려 주기만 할 뿐 전세 보증금을 보호할 대책은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 사례가 급속도로 늘었지만 정부는 대책 마련을 등한시했다. 오히려 주택 가격을 떠받치려고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으로 임대사업자들의 갭투자를 부추길 대책을 내놨다.

이처럼 정부의 시장주의적인 주택 정책이 지금의 전세 사기와 깡통주택 문제를 키워 왔다. 지난해 공동 주택 중에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이 80퍼센트 이상인 ‘깡통 주택’의 비율이 전국적으로 38퍼센트에 이를 정도여서 상당수 서민들이 피해를 볼 위험도 커졌다. 집값 폭등기에 서민들은 심각한 전세난을 겪어야 했고, 지금은 재산 대부분을 날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말처럼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낳은 “사회적 재난”이다. 정부는 마땅히 서민들을 구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 피해 모두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고 보증금을 보상해 주라고 요구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온전한 보증금 보상

한편, 정부 대책이 턱없이 부족하자, 야당들은 보증금 지원을 늘리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 조오섭 의원은 정부가 나서 피해자들에게 먼저 전세금을 일부 보상해 주고, 이후에 주택 경매나 임대주택 전환 등을 통해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

그러나 조오섭 의원의 안은 전세 보증금보다 먼저 변제되는 선순위 근저당 등이 있는 경우 그 가치를 평가해 일부만 보상해 주는 방안이어서 세입자들은 여전히 보증금의 상당 부분을 날릴 수 있다.

그래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정부 보상액이 전세보증금의 50퍼센트 이상은 돼야 한다는 내용을 발의 법안에 담았다. 이는 조오섭 의원의 안보다 낫지만, 전세보증금을 최대 50퍼센트까지 잃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민주당뿐 아니라 정의당도 전세 보증금 일부 보상에 그치는 안을 내놓는 것은 전세가 개인 간 거래 문제라는 관점을 공유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전세 제도 문제는 서민층의 주거 복지와 관련된 것이다. 이 문제에서 자본주의적 재산권을 우선해서 보면 서민층 보호 대책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전세 보증금 보상을 위한 재원 마련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지난달에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반도체 기업들에 수조 원의 감세 혜택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또 정부는 건설 기업 지원을 위해 미분양 아파트들을 비싼 가격에 사들이기도 했다. 이런 돈을 서민들을 위해 쓰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전세 보증금을 온전히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대중 투쟁이 커져야 한다. 정치권 내의 법안 논의에만 집중한다면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며 시간을 끌고 피해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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