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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전세 사기 특별법 국회 통과:
피해자들을 빚의 구렁텅이에 방치하는 것

오늘(5월 25일) 전세 사기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자들을 구제하지 못하는 누더기 법안이라고 반발하며 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특별법의 핵심 내용은 대출을 해 줄 테니 피해자들이 경매를 통해 집을 사라는 것이다. 또 경매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으면 LH가 집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거주하게 해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 재산에 빚까지 내서 마련한 전세 보증금을 떼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정부가 전세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피해자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우선 지급하고 추후에 경매 등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라는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특별법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

피해자 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이 안 되면 ‘최우선 변제금 제도’(소액 세입자들에게 보증금 2500만~5500만 원을 최우선으로 지급하는 제도)라도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확대 시행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포함되지 않았다.

특별법에 담긴 것은 피해자들이 살던 곳에서 나와 다른 전셋집을 구할 때 최우선 변제금만큼 무이자로 10년간 대출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전세 사기를 당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빚을 내 전세를 얻으라는 말이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전세금을 떼이고도 전세 담보대출은 고스란히 갚아야 한다. 특별법에 담긴 대책은 이 빚을 20년간 분할 상환하게 해 주겠다는 것뿐이다. 사기꾼들이 떼먹은 빚을 평생 갚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모인 오픈 카톡 방에는 이 법안을 성토하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특별법 진짜 화나네요. 누굴 위한 특별법이죠? 우리한테 또 빚을 지라는 게 어이가 없네요.” (전주의 한 피해자)

“앞으로 남은 건 빚뿐이라 결혼도 안 하고 빚만 갚으면서 평생을 살아야겠네요. 빚만 남은 인생. 정부는 출산율 운운하지마시길.”(경남의 한 피해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5월 2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누더기 특별법안을 규탄하고 있다 ⓒ출처 참여연대

이런 알량한 혜택조차 정부는 엄격하게 선별해서 주겠다고 한다. 국회 협의 과정에서 애초 정부가 제시했던 피해자 범위가 일부 확대되긴 했지만 여전히 깡통전세 피해자들은 제외하고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선별해서 특별법 대상으로 하겠다는 골간은 유지됐다. 그래서 대규모로 집단 사기를 당한 경우가 아니거나, 보증금 5억 원을 초과하는 등의 경우는 배제된다.

정부는 “혈세 낭비”, ‘사기 피해자들 간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피해자들을 지원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정부는 부도 위기 건설사들의 채권을 매입해 주는 데는 수조 원의 펀드를 조성하고 있고, 반도체 기업 등 대기업들에게는 5년간 무려 13조 원에 달하는 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겠다고 한다.

문제는 기업과 부자만 위하는 정부의 우선순위인 것이다.

심지어 정부는 23일 국회에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 용지를 전달하려는 피해자들을 경찰을 동원해 막고 사지를 들어 끌어내기도 했다. 윤석열이 민주노총 집회를 공격하며 “엄정한 법 집행”을 외친 날 경찰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시위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우선순위

한편, 피해자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5월 22일 국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를 앞두고 “민주당과 정의당에도 정부의 생색내기 추가 대출에 합의하지 말”라고 촉구했지만, 야당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피해자들을 위하는 듯 행세해 왔지만 사실 애초부터 매우 부족한 대책을 내놨었다. “선 구제, 후 회수” 안을 내기는 했지만, 보증금에서 선순위 채권은 빼고 지급하는 안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상당한 손실을 부담해야 했다. 민주당도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세금 지원을 많이 할 수 없다고 전제한 것이다.

민주당은 집권 시기 동안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보다는 시장 타협적인 부동산 정책을 쓰며 전세 사기 사태를 키운 책임이 있다. 민주당은 턱없이 부족한 안조차 정부 여당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쉽사리 후퇴하며 결국 누더기 특별법안에 합의했다.

정의당은 처음에 전세보증금의 50퍼센트 이상은 보전해 주자는 안을 냈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후퇴하며 누더기 법안 통과에 일조하고 말았다. 심상정 의원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폭넓게 지원하는 법을 만들고자 애를 썼지만 최선의 법안을 만들지 못해 죄송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지만 말이다.

특별법이 누더기로 통과된 것은 국회 내 협상이 아니라 대중 투쟁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국민의힘, 민주당과의 합의 처리에 집중하다 보니 특별법으로 혜택을 보는 피해자들의 범위가 점점 좁아져서 투쟁의 동력이 더욱 훼손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애초에 피해자대책위가 ‘전원, 전액 구제’를 요구하며 대중 운동 건설에 나섰다면 투쟁을 더 크게 키울 잠재력이 있었을 것이다.

최근 안타깝게도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 또 한 명이 자살을 택했다. 전국적으로 역전세난이 심해지고 있어 전세 사기‍·‍깡통전세 문제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누더기 특별법을 비판하며 제대로 된 대책을 요구하는 투쟁이 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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