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전세지옥 ─ 91년생 청년의 전세 사기 일지》:
한 청년의 전세 사기 르포르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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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도 계속해서 전세 사기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2500가구 이상이 피해를 입은 대전 전세 사기, 2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고소를 진행한 수원 전세 사기 등.
얼마 전에도 전세 사기를 당하고 500만 원 차이로 최우선 변제금도 받지 못한 3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많은 피해자들이 전 재산을 날리고 빚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전세지옥 ─ 91년생 청년의 전세 사기 일지》(최지수, 세종서적, 2023)는 이런 상황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 청년이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저자 최지수 씨는 월세 30만 원을 아끼려고 전셋집을 계약했다가 전 재산을 잃고 돈을 벌기 위해 결국 원양어선을 탈 계획이다.
최지수 씨는 2020년 7월 천안에서 전셋집을 계약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천안에 있는 반도체 제조 장비 회사에 취업해 처음엔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들끓는 바퀴벌레, 녹물, 집에서도 마주쳐야 하는 회사 사람들을 견딜 수 없어 탈출하듯이 구한 집이었다. 보증금 5800만 원 중 4640만 원을 대출로 마련했다.
72세대가 거주하는 그 건물에는 근저당이 33억 원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중개인은 건물이 70억 원이 넘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만에 하나 경매에 넘어간다 해도 소액 임차인이기 때문에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모두 거짓이었다. 올해 4월 경매가 종료됐을 때 낙찰된 금액은 25억 4000만 원이었다. 낙찰금을 은행들이 가져가고 나면 후순위 세입자들에게 돌아올 돈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최지수 씨는 최우선변제금도 받을 수 없었다. “[2020년 계약] 당시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5000만 원 이하 계약이니 5800만 원으로 계약한 나는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부동산] 사장은 마치 최우선변제금 17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열변을 토하며 설명했다. 이게 사기가 아니면 무엇이 사기일까?”
경매 통지서가 붙은 이후 건물주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른 피해자를 통해 건물주가 전 재산을 은닉해 지금 그 사람의 통장에는 현금 1000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40여 세대의 전세금만 모아도 30억 원 가까이 될 텐데 그 돈은 지금 다 어디 갔을까? 우리 인생을 철저히 짓밟은 건물주는 1원도 반납하지 않은 채 길어야 2~3년 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형 로펌이나 전관예우를 받는 검사, 판사 출신 변호사를 고용해 무죄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신나게 법원을 나설 수도 있다. 정말 불공정한 세상이다.”
전세 계약을 한 지 2년이 지나자 전세대출 연장은 되지 않았다. 당시 첫 직장을 사직하고, 헝가리로 해외 취업을 가 있었던 저자는 전세 대출을 갚기 위해 10퍼센트가 넘는 금리로 33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이 때문에 매달 300만 원씩 빚을 상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국에 돌아와서 빚을 갚기 위해 주 6일간 매일 12시간씩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건물주가 진 빚을 왜 내가 갚아야 하나.” 신라면 하나 사먹기 망설여지는 가난 속에 자책, 자기 비하, 고립감이 저자를 괴롭혔다. 정신과 치료와 술,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이 엄습해 들었다.
소용 없는 정부 대책
올해 초 인천 미추홀구의 피해자들이 연달아 자살을 하며 전세 사기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부분 소용이 없었다.
정부는 경매를 중지시키겠다고 발표했지만 저자의 경우처럼 이미 낙찰이 진행된 곳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다행히 긴급생계비지원은 받을 수 있었지만 고작 3개월간 62만 원을 받기 위해 한 달이 넘게 이 기관, 저 기관을 찾아다니며 “서류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그나마 긴급생계비지원은 예산이 소진돼 지금은 받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국회에서 전세 사기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은 거의 없었다. 특별법에서 제공하는 금융지원은 대부분 추가 대출을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 또다시 빚을 지라는 것은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 생존한 이들에게 크루즈 여행권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저자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고통을 알아 주고 격려해 주는 주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나 같은 피해자가 한 명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 나가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됐다.
저자는 용기를 내서 올해 5월 대전 MBC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부모님과 룸메이트 동생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털어놓으니 생각보다 후련했다. 내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재촉하거나 다그치지도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감사했다. 책을 쓰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분노와 억울함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저자는 앞으로도 “전세 사기 피해자 집회 참여, 건물주를 상대로 진행하는 형사 소송, 공인중개사협회를 대상으로 진행할 중개 사고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법무부 장관 한동훈은 이 책을 들고 나와 “정책의 기본”으로 삼겠다며 “전세 사기를 엄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상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을 우선하며 종부세 감면·각종 규제 완화·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등 전세 사기를 낳을 사회적 토양을 키우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구제책을 요구할 때 국토부장관 원희룡은 전세 사기는 사회적 재난이 아니라며 “개인 간 채무 해결”에 국가 재정을 투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정부가 전세 사기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낳는지 느낄 수 있다. 전세 사기를 개인의 탓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커질수록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고립돼 고통받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피해자들이 자책하거나 고립감을 느끼지 않고, 목소리를 내며 행동하는 것을 통해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는 운동이 더욱 커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