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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노란봉투법조차 윤석열은 거부하려 한다

5월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서 일명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의 본회의 직회부가 의결됐다. 법안이 2월 21일에 환노위를 통과했으나, 국민의힘이 법사위(위원장이 국민의힘)에서 심사를 차일피일 미뤄 왔기 때문이다. 환노위 의결 과정에서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항의하며 퇴장했다.

애초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들의 쟁의를 옥죄는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려는 취지에서 제기됐다. 사용자들은 1989년부터 노동자 투쟁에 대한 보복으로, 또 앞으로 벌어질 투쟁을 위축시키려고 손배가압류를 이용해 왔다.

1989년부터 2022년 5월까지 조사된 손배액은 약 3200억 원에 달하는데 손배는 대부분 노동자 개인에게 청구된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2021년 4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수집한 197건의 손배가압류 사건 기록 중 94.9퍼센트가 노동자 개인을 대상으로 손배를 청구했다.

손배가압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몰아 넣는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 2012년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는 손배가압류 압박에 죽음으로 항거했다. 2009년 대규모 해고에 반대하며 77일간 공장점거 파업을 벌였던 쌍용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잇따른 비극은 또 어떤가.

아쉽게도 이번에 직회부된 노란봉투법이 ‘손배 폭탄’으로 임금이 가압류되고 힘겹게 장기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엔 많이 부족하다.

국회 협상 과정에서 손배 청구 제한과 노동조합원 개인 부과 금지 내용이 빠졌기 때문이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명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며 민주당이 후퇴안(개인별 손해 책임 범위를 정하고, 신원보증인의 책임을 면제)을 정의당에 제안했고, 정의당이 이를 동의해 줬다.

합법 노동 쟁의의 범위는 다소 넓어졌다(임금 체불, 개별 해고 등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단체협약 불이행 등).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원청사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것은 나아진 점이다. 원청사가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어야 사용자로 본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말이다.(이 점도 정의당을 포함한 노동계의 원안에서 후퇴했다.)

손배 폭탄

그런데도 정부·여당, 사용자들, 친사용자 언론들은 이조차 수용할 수 없다며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 윤재옥은 노란봉투법이 “민주노총 지키기 법”이라고 비난했다. 200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손배 소송 151건 중 94퍼센트, 손배 인용액의 99.9퍼센트가 민주노총을 상대로 청구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여전히 다수의 노동 쟁의가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비록 오늘날 민주노총의 전투성은 노조 상층 간부들의 부문주의와 자기제한적 투쟁 때문에 과거 한때보다 많이 약화됐지만 말이다.

윤석열은 노란봉투법이 “사유재산권에 대한 헌법체계를 흔드는 법안”이라는 둥 호들갑을 떨며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면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용자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파업이란 어불성설이다. 파업은 그 정의상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이윤 생산을 멈춰서 업무에 지장을 주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다. 이를 통해 사용자(와 정부)를 압박해 양보를 강제해 내고자 한다.

‘손배 폭탄’을 맞은 노동자들의 고통은 윤석열의 안중에 없다 ⓒ출처 〈노동과세계〉

또한 정부·여당은 민주당을 향해 ‘문재인 정부 때는 처리하지 않다가 왜 이제 와서 밀어붙이냐’며 위선을 파고들기도 했다. 노란봉투법 추진은 자신들에 대한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거부권 행사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더는 것과 동시에, 민주당을 압박해 본회의 처리 협상 과정에서 법안을 더욱 누더기로 만들어 보겠다는 심산이다.

거부권

한편, 경총 등 6개 사용자 단체들도 공동성명을 내고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특히 이들은 원청사의 사용자성 인정과 노동 쟁의 요건 확대를 문제 삼는다.

이들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쟁의에 나서는 것이 법으로 보장되면 노동자들의 투쟁에 자극제가 될까 봐 염려한다. 그간 간접고용·특수고용을 확대하고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해 이윤을 늘려 왔는데 이에 제약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올해 초 행정법원이 CJ대한통운 원청이 (대리점주와 공동으로) 택배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어 더욱 민감한 듯하다.

민주당은 벌써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원내 지도부는 ‘조속한 처리’ 방침에서 ‘국민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는 입장으로 은근슬쩍 후퇴했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이 기업주들이라는 것은 뻔하다.

민주당은 (포퓰리즘적 전략을 사용하지만) 자본가 계급에 주로 기반을 둔 정당으로 사용자들의 이윤을 중시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이미 민주당은 환노위에서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노동계 요구를 삭감해 왔다. 공교롭게도 손배가압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사건들(배달호·김주익 열사)도 민주당 정부 때 일어났다.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안이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는 비난에 ‘합법 파업 보장법’이라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불법 파업’에는 손배가압류 방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셈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이렇게 말했다. “손배청구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불법 폭력 파업이라면 슈퍼 울트라 노란봉투법이 있더라도 손배청구가 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타협에 결정적 허점이 있다. 손배가압류 공격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진다.

왜냐하면 ‘합법’으로 용인되는 파업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용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일터를 점거하거나, 정부 정책에 맞서거나, 사회·정치적 요구를 내걸면 죄다 불법으로 낙인 찍힌다.

가령,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조와 화물연대의 작업장 점거, 대체인력 투입 저지를 불법으로 간주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일부 점거해 공정에 차질을 빚게 하자, 사측(당시 산업은행)과 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보고 노동자 5명에게 무려 490억 원의 손배를 청구했다. 노동자 5명의 임금을 대폭 올려서 연봉 1억 원을 받는다 해도, 각자 100년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안전운임제 등에서 거듭 드러났듯이, 국회 협상으로는 제대로 된 개혁 입법을 추진하지 못한다.

이는 민주당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내 개혁(용인되는 개혁만 추진)을 추구하는 정의당의 입법 전략이 갖는 근본적 약점을 보여 준다.

노란봉투법이 후퇴 없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제압하려면, 국회 울타리 밖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