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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 규탄한다

오늘(12월 1일) 윤석열이 노란봉투법 거부권을 행사했다. 11월 11일 발행한 기사를 재게재한다.

11월 11일 노동자대회에서 “윤석열 퇴진”과 “노란봉투법 즉각 시행”을 외치는 노동자들 ⓒ조승진

11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노란봉투법’이 통과됐다.

노란봉투법(정확히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법 2조와 3조의 개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의 사용자성을 더 넓게 인정하는 게 핵심 취지이다. 이를 통해 취약한 조건에 놓인 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을 강화하고, 정부나 사용자가 노동자(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해 손해배상(과 가압류)을 남발하는 것을 어느 정도 제어하자는 취지로 발의됐다.

노란봉투법 통과 전부터 결사 반대를 외치던 정부·여당과 사용자들, 친기업 언론들은 법이 통과되자 수용할 수 없다며 게거품을 문다. 윤석열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

경총은 “산업현장 혼란과 경제적 파국”을 낳을 것이며, 이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의 거부권밖에 없다”고 방방 뛰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은 “무분별하게 교섭을 요구하고 폭력적인 파업이 공공연해질 우려가 있[다]”며 윤석열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화답했다.

살인적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들의 살인적인 손배가압류 ‘폭탄’이야말로 진짜 폭력이다.

1990년대 초부터 정부와 사용자들은 노동자 투쟁을 보복하거나 또는 앞으로 벌어질 투쟁을 위축시키려고 손배가압류를 이용해 왔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의 조사를 보면, 1989년부터 2022년 5월까지 사용자들이 이런 식으로 사용한 손배가압류가 약 3200억 원에 달한다.

지난 20여 년간 손배가압류에 짓눌리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노동자(와 그 가족)는 수십 명에 이른다.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열사는 손배가압류 탄압에 맞서 싸우다 분신했고,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도 크레인 농성을 하다 목숨을 끊었다.

2019년에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 김주중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해고 기간 55개월,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액 14억 7000만 원, 퇴직금 가압류, 부동산 가압류.”

“죽음의 덫”이나 다름없는 이 손배가압류 문제는 윤석열 집권 이후 다시 떠올랐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8월 대우조선해양(현재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들(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파업에 대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490억 원의 손배소를 청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시급 1만 원 받는 하청 노동자 5명에게 말이다.

이 손배 청구에는 하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사용자가 아닌’ 원청 기업을 상대로 파업을 하고 손해를 끼친 것이 적법하지 않다는 사측의 주장까지 포함돼 있다.

원청 기업의 사용자성을 확대하는 문제가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까닭이다.

그래서 양대 노총을 비롯해 진보적 노동·정치·시민 단체들은 윤석열에게 거부권 행사 말고 노란봉투법을 즉각 공포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노란봉투법 통과를 계기로 한화오션은 오직 노동자 탄압이 목적인 470억 원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게거품

이번에 통과된 노란봉투법은 원청 사용자성 확대에서 진전이 있지만, 손배가압류 공격을 온전히 막는 법은 아니다. 특히 여야 협상 과정에서 노조나 노조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지 같은 핵심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손배 관련 조항은 이미 존재하는 대법원 판례와 인권기구들의 권고를 최소한의 수준에서 입법화한 정도이다.

이조차도 정부와 여당, 사용자들이 길길이 날뛰는 진정한 이유는 행여라도 그런 법적 권리 확대가 노동자 투쟁에 자극제가 될까 봐서다.

그간 사용자들은 간접고용·특수고용을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하고 원청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해 왔는데,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합법적으로 교섭을 요구하고 더 쉽게 쟁의에 나설 수 있다.

따라서 저들의 거부권 행사 운운은 손배가압류라는 무기를 계속 휘두르겠다는 것이고, 노동자들더러 열악한 노동조건을 계속 감내하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간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이 법의 입법을 위해 의회 협상과 상층 압력 넣기에 의존했고 만만찮은 대중 투쟁 건설은 소홀히 했다. 그러나 우파는 양보한 적이 없고 이제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촉구하고 있다.

개혁은 흔히 지배자들이 더 많은 것을 잃지 않으려면 이것이라도 양보해야 한다고 여길 때 쟁취할 수 있다.

윤석열이 노란봉투법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당장 물러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