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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쟁의 옥죄는 손배·가압류 철회하라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을 계기로 손해배상·가압류 문제가 다시 부상했다.

51일간의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파업은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내며 생계비 위기에 맞선 대안을 보여 줬다. (관련 기사: 본지 426호 ‘[이렇게 생각한다]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며 생계비 위기의 대안을 보여 주다’)

윤석열 정부는 7월 22일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이렇게 밝혔다. “불법 점거 과정에서 발생한 위법 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 대우조선 사용자 측도 파업 피해액이 7000억 원에 이른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예고했다.

하청 노동자 파업으로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이윤에 타격을 입은 데 대한 보복을 예고한 것이다. 또한 손배가압류로 투쟁에 족쇄를 달아, 예고되는 임금 투쟁들을 미리 위축시키려는 것이다.

살인적인

손배가압류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악랄한 수단이다. 파업이 이윤 생산을 멈춤으로써 사용자를 압박하는 것이므로,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가 허용되는 것 자체가 파업권에 대한 부당한 압박이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 2012년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가 사용자 측이 가한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 압박에 죽음으로 항거했다.

그럴 때마다 손배가압류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신원보증인에 대한 책임 제한, 최저 생계비의 압류 대상 제외 등 보잘것없는 개선이 다였다.

2020년 현재 노동쟁의에 청구된 손해배상 금액(누적치)은 658억 5000여만 원에 이른다.(손잡고, 2020 노동권과 손배가압류 소송기록 자료집)

2020년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10년 만에 복직했지만, 손배가압류로 반토막 난 첫 월급 봉투를 받아야 했다. 2009년 공장 점거파업을 이유로 노조와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손배액이 44억 5000만 원인데, 여기에 지연이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 2020년에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할 손배액이 무려 128억여 원이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톨게이트, 유성기업, 아사히글라스 등 여러 곳에서 노동자들은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한 액수의 ‘손배 폭탄’에 가계가 파탄나고 그 탓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생이별을 하거나 이혼을 하는 등 고통을 겪었다.

최근엔 CJ대한통운 사용자 측이 올해 초 택배 파업 본사 점거 투쟁을 이유로 노동자 88명에게 2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이트진로 사용자 측도 화물 노동자 11명에게 28억 원을 손해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손배가압류 금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대중적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출처 정의당

정의당은 노동쟁의에 손배가압류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을 추진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요즘 정의당이 노동 문제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좋은 변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배달호·김주익 열사의 죽음에 원죄가 있는) 민주당도 뛰어들었다. 국회 환노위에서 관련법 개정안을 최우선 과제로 논의하겠다고 한다.

노란봉투법

그러나 일명 노란봉투법은 2009년 쌍용차 파업 이후로 19대 국회, 20대 국회에서 연달아 복수의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지금 “불법 파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관련법 개정안은 매우 제한적이다. 가령,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파업 투쟁에 곧잘 꼬리표로 달리는 “불법”, “폭력” 투쟁은 예외로 두자거나, 손배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청구 금액에 상한선을 두자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서 여야 협상으로 손배가압류 금지라는 목표가 이뤄질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이은주 정의당 비대위원장은 노란봉투법 제정 등을 제안하며 그것이 진정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정치적 투쟁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가 말한 정치가 노동자들은 잠자코 있고, 국회에서 의원들이 나서서 해결하자는 것이라면 손배가압류 금지라는 목적을 성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껏 여러 개혁 입법을 국회 협상에 의존해 추진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결과적으로 입법이 된다 해도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누더기가 될 공산이 크다.

노동자들을 옥죄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정부와 사용자들에게 압력을 가해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느낄 만큼의 광범한 대중 투쟁의 힘이 필요하다. 마르크스가 말한 정치, 즉 전 계급적 투쟁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