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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가 노란봉투법이 필요한 이유를 말한다

11월 9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의 사용자성과 노조의 합법 노동 쟁의의 범위를 더 넓게 인정하고,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 남발을 다소간 제어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란봉투법 통과 전부터 결사 반대를 외치던 정부·여당과 사용자, 친기업 언론은 법이 통과되자 수용할 수 없다며 게거품을 문다. 윤석열은 곧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최남선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남울산지회 조합원이 노란봉투법이 필요한 이유를 말한다.

택배 노동자들은 2017년에 처음 노동조합이 생길 때부터 진짜 사장[원청 택배사][교섭 자리에] 나오라고 주장했어요. 대리점주들은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원청의 ‘마름’일 뿐이고, 실질적인 사용자는 CJ대한통운이었기 때문이죠.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은 CJ대한통운 옷을 입고, CJ대한통운 어플을 써요. [택배] 차량에 CJ대한통운 로고를 도색하라고 강요당하기도 했어요.

수수료[임금] 책정과 지급은 CJ대한통운이 해요. 거기에 대리점주들도 운영 비용이라며 수수료 착복을 일삼기도 했고요.

2021년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사회적 합의를 했지만, 택배사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합의 내용에는 택배 요금 인상분은 오롯이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써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었어요. 그런데 수수료는 여전히 너무나 열악했고, 작업 환경도 마찬가지였어요. 반면에 택배사들은 택배 요금 인상으로 몇백억 원씩 이익을 남겼어요.

우리가 사회적 합의 내용을 지키라고 요구하자, CJ대한통운 사측은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독소조항들이 담긴 부속합의서를 우리한테 내밀었어요.

과로사를 방지하자는 사회적 합의를 무색하게 만들려는 것이었죠. 우리는 파업 찬반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파업에 들어갔고, CJ대한통운 원청이 계속 대화에 응하지 않아 보름간 본사를 점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정당했습니다.

지난해 3월 파업이 마무리될 때 대리점연합회는 [파업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합의서에 서명했고, 당시 CJ대한통운 원청도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파업이 끝나자 CJ대한통운 사측은 우리가 본사를 점거해 손해를 봤다며 [점거] 농성에 참가한 조합원 55명에게 2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어요. 지금도 민·형사 재판이 진행중이에요. 우리가 점거했던 본사 3층 화장실의 비누와 세제를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지난해 2월 CJ대한통운 본사 점거 투쟁을 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들 ⓒ이미진

파업 후 본사 점거 투쟁을 했던 다른 지역 조합원을 7~8명 만났어요. 처음에는 오랜만에 만난 지라 기쁘게 웃으면서 얘기를 나눴는데,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니까 울더라고요.

택배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조합 경험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법원에서 책 한 권 분량의 등기가 날아오고, 수시로 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와야 한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벌금 나온다고 하고 수배 때린다고 하니 견딜 수가 없었던 거죠. 이혼한 가정도 많이 생겼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하고, 노란봉투법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통과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지옥일 거에요. 그 빚을 어떻게 갚겠어요.

단순히 계산해도 1인당 4천만 원에다 법정 최고 이자까지 붙으면 상당한 금액이 될 거예요.

본사 점거에 나선 조합원들은 노조 활동에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하고, 조직 활동도 열심히 하고, 조합원들을 더 늘리기 위해서 활동했던 사람들이에요.

회사는 투쟁을 이끄는 핵심적인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는 겁니다.

노동자들의 최고 무기는 단결력이죠. 그런데 회사는 손배가압류를 행사하면서 단결과 연대를 깨뜨리려고 합니다.

[손배가압류에 저항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 동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쌍용차 노동자들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손배가압류 공격으로 몇 명이나 돌아가셨는지 이제는 숫자를 셀 수도 없어요.

우리는 조금 더 사람답게 살고 싶고, 현장에 문제가 있으니 개선해 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재벌 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그 소박한 요구에 손배가압류라는 공격으로 한 가정, 그리고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납니다.

우리는 [올해 1월 12일] 행정소송에서 CJ대한통운이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CJ대한통운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만약에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해 노란봉투법이 물거품이 된다면, 이 소송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예전처럼 비빌 언덕 하나 없이 진짜 사장 나오라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겠죠.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애초 발의됐던 내용과 달리, 민주당과 정의당이 국회에서 협상하는 과정에서 일부 후퇴한 것은 아쉬워요. 그렇지만, 이조차도 우리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는 매우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