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결사 반대를 외치는 국민의힘, 합의해서 처리한다는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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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손배가압류는 파업권을 옥죄는 대표적인 노동 악법의 하나이다.
사용자들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노동자 투쟁에 대한 보복으로, 또 앞으로 벌어질 투쟁을 위축시키려고 손배가압류를 이용해 왔다.
특히, 경제 위기 고통 전가 공격이 본격화되던 1990년대 말부터 손배 청구 건수가 늘었다. 그 뒤로 손배가압류는 사용자들의 유용한 탄압 무기였다. 2010년대 이후로는 청구금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한 해 1000억 원이 훌쩍 넘었다.
올해 윤석열 집권 이후 다시 손배가압류 문제가 부상한 것은 정부의 강경한 노동탄압 기조 때문이다.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에 대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490억 원의 손배소가 청구된 것이 대표적이다.
윤석열이 직접 나서 “불법 파업에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하면서 ‘손배 폭탄’을 투척했다.(당시 대우조선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최대 주주인 정부 소유 기업이었다.)
사용자들은 이를 당연히 환영했다. CJ대한통운 택배, 현대제철 비정규직, 한국타이어 등에서 손배 청구가 줄이었고,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서도 공격이 예고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손실을 입은 사용자들에게 손배소 지원을 약속했다.
손배가압류가 얼마나 큰 액수인지는 익히 알려져 있다.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청구 금액은 노동자들이 평생 일해도 만져 보기 어려운 액수다. 시급 1만 원 받는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5명에게 490억 원을 갚으라니 말이다.
노동조합뿐 아니라 노동조합원 개인들에게 손배가 청구되는 일은 이제 다반사가 됐다. ‘손잡고’가 운영하는 손배가압류 소송기록 아카이브에 소장된 197건 가운데 94.9퍼센트가 이에 해당한다.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지키고 부당한 공격에 맞섰다는 이유로 급여와 부동산이 압류돼 삶이 파탄 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이혼·불화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 사용자들은 손배가압류를 제한하자는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이 사용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용자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파업이란 어불성설이다. 파업은 그 정의상 업무에 지장을 주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이런 집단적인 힘을 잘 발휘할 때 정부와 사용자들에게서 양보를 강제해 낼 수 있다.
게다가 파업권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에 속한다. 헌법을 이렇게 해석하면 노동쟁의로 인해 발생한 사용자들의 손해는 원천적으로 배상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
못 믿을 민주당
국회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의지만 있다면 단독으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번에도 뒷걸음질치기 바쁘다.
말로는 국민의힘과 다투지만, 실제로는 노란봉투법 결사 반대를 외치는 국민의힘과 합의 처리하겠다고 고집한 것이다. 민주노총과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이에 반발해 민주당사를 점거하고 단독 처리를 촉구했다.
민주당 내에서 제기된 ‘노조법 2조는 빼고 3조만 개정하자’는 주장도 운동본부의 비판을 받았다.
노조법 2조 개정안은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3조 개정안은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3조만이 개정되면,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손배 폭탄’으로부터 방어 받지 못하게 된다.
민주당의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노란봉투법이) ‘불법 파업’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합법 파업 보장법’”이라고 강조해 왔다.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 쟁의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합법’으로 용인되는 파업은 매우 제한적이다. 가령 사용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일터를 점거하거나, 정부 정책에 맞서거나, 사회·정치적 요구를 내걸면 죄다 불법으로 낙인 찍힌다.
이런 상황에서 “합법 파업”만 보장하겠다고 하면, 올해 벌어진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와 대체수송 저지, 대우조선과 현대제철 하청노조의 일터 점거, 택배노조의 CJ대한통운 본사 점거 농성은 모두 제외된다. 손배가압류 공격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진다.
민주당이 발의한 법안들은 손배가압류 제한 조항에 “폭력, 파괴행위로 발생한 손해”는 예외로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본부, 정의당 등은 쟁의의 주체(간접고용·특수고용 포함), 목적(사회·정치적 요구 포함) 등이 무엇이든 간에 손배가압류를 금지해야 한다고 옳게 주장한다.
그런데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민주당 안과 마찬가지로) ‘폭력, 파괴 예외’라는 단서를 뒀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본부가 제안한 법안에는 단서 조항이 없다. 하지만 운동본부는 민주당·정의당 발의 법안을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폭력, 파괴’로 볼 것인가? 민주당·정의당 법안들은 이 점을 모호하게 남겨 둬, “불법 파업” 공격에 취약하게 만든다.
가령 노동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손해배상 청구 원인의 절반이 사업장 점거 농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 93.5퍼센트가 “불법 폭력”이었다고 노동부는 비난한다.
안정적인 연좌 농성을 위해 사측 경비대와 경찰의 저지선을 뚫거나, 그들의 진입을 방해하거나, 대체인력을 막아서는 것은 죄다 ‘폭력’으로 간주된다. 노동자들이 벼랑끝 생계비 위기에서 벌인 투쟁들이 “불법 폭력”으로 비난받고 막대한 손배 폭탄에 시달려 온 이유다.
특히, 공격의 타깃은 파업 효과를 높이는 점거, 대체인력 저지 등 ‘불법 쟁의’에 집중되고 손배 청구 금액도 매우 높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안전운임제 등에서 거듭 드러났듯이, 자본주의 정당들 간의 국회 협상은 제대로 된 개혁 입법을 추진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