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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정상회의의 ‘원칙’과 ‘정신’:
한미일 협력 강화는 제국주의 열강의 갈등에 스스로 말려드는 것

8월 18일(미국 현지 시간)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려 세 가지 문서를 채택했다.

예상대로 그 회의는 한미일의 협력 구조를 체계화하고, 협력의 범위를 넓히고 수준을 높였다. 한국은 그 “범지역 협력체”를 통해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일본과 보조를 맞추게 됐다.

오랫동안 미국은 한미일 동맹이 안정적으로 발전하기를 원했다. 중국을 봉쇄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걸림돌의 하나인 한일 갈등을 해결하려고 미국 외교관들이 동분서주했던 까닭이다.

그래서 〈뉴욕 타임스〉는 이번 정상회의 결과가 “미국 외교의 꿈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면서 한반도와 그 주변에 불안정이 커지고 있다. 그만큼 한국민들이 떠안을 부담과 위험도 커졌다.

8월 21일 윤석열은 정상회의 성과를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위험은 확실하게 줄어들고 기회는 확실하게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위험은 줄지 않고 오히려 커질 것이다. 왜 그런지 아래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위험이 줄 것? 누구의 기회?

한미일 정상들은 3자 연합훈련을 정기적으로 열기로 하고, “지역적 도전과 도발, 그리고 위협”이 발생하면 서로 “신속하게 협의”하기로 했다. 이 약속들을 계기로 한미일 군사 협력이, 자동개입 조항과 공동의 사령부까지 있는 나토 수준의 동맹으로 발전할 길이 열렸다는 관측이 많다.

국제법상 의무는 아니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이 “협의” 약속으로 한국은 대만 문제나 남중국해 영토 분쟁 등에서 미국·일본의 공동 대응 요구에 응해야 하는 사실상의 “의무”를 지게 됐다. 이런 협의를 통해 “메시지와 대응 조치를 조율”하기로 약속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번 공동성명에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한국이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직접 거론하며 비판하는 성명에 동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조태용은 한국이 남중국해 문제에 관여해야 할 이해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석유 수입 70퍼센트, 천연가스 수입의 50퍼센트 가까이가 남중국해를 통해 들어온다.”

지난 3월 국책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한 보고서에서, 대만해협 분쟁 발생 시 한국 해상 운송의 30퍼센트가 넘는 해상교통로가 위험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 간의 제국주의적 갈등으로 동·남중국해 바닷길이 불안해지면서, 그 바닷길에 의존해 온 한국 지배자들은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해 왔다.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에 모인 한미일 정상들. 국내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윤석열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 ⓒ출처 백악관

그러나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윤석열의 선택은 사실 위험하다. 한국이 미국·일본을 지원하며 위험한 분쟁들에 직접 연루될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차 대만이나 남중국해에서 군사 충돌이 벌어져 미국의 동맹 체계를 따라 확전된다면, 그 위험이 어디까지 발전하고 얼마나 많은 희생이 벌어질지 도저히 가늠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북핵 능력의 증대를 경계하며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진전시켜 왔다. 전략핵잠수함 기항 등 미국 핵무기의 한국 배치를 추진했고,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북한 미사일 정보 실시간 공유’와 ‘증강된 탄도미사일 방어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증강된 탄도미사일 방어 협력’은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더 긴밀히 협력한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은 미사일 방어 협력을 매개로 한미일 3국 군대가 하나의 군대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핵무기 전진 배치, 한미일 미사일 방어 협력은 주변국들을 자극하고 군비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로 한일 양국의 군사 협력도 한 걸음 진전될 것이다. 광복절 연설에서 윤석열이 일본에 있는 유엔군사령부 후방 기지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을 두고, 향후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의 목소리와 일본이 관여할 여지도 커졌다.

공급망

윤석열은 이번에 한미일의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을 서로 연결해, 제2의 요소수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공조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등 신흥 기술 분야에서 한미일의 협력이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최선진국이 되지 못한 채 주력 수출 분야에서 중국 등 도전자들의 추격을 받는 신세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과 첨단산업 재편 과정에서 이득을 얻고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한국 경제가 처한 모순을 더 증폭시킬지 모른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가장 큰 교역 대상이고, 한국은 여전히 주요 산업 공급망에서 대중국 의존도가 높다. 이런 관계는 국제적 생산 네트워크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전한 결과로, 단기간에 뒤집히기 어렵다.

중국은 한미일 공급망 협력을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만큼 반발과 보복에 나설 것이다.

이는 미국의 ‘디리스킹’ 시도가 초래할 기존 공급망 교란, 세계경제 불안정 증대와 함께 한국 경제에 어려움을 가져오고 모순을 심화시킬 수 있다.

우려

한미일 정상회의 결과를 놓고 비판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주로 나오는 비판은 “굴종 외교”를 했다는 비판이다. 국제 질서가 다극화되는 와중에도 미국에 확 기우는 잘못된 선택을 해 ‘국익’을 해쳤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마침 미군이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한다고 밝히자, 이 “주권 침해”에 윤석열이 아무 항의도 안 한다는 비판도 추가됐다.

사실 “주권 침해”는 식민지나 반(半)식민지 상태에 있는 나라에나 해당되는 얘기다. 오늘날 한국 국가의 위상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1965년 한일 협정 때와는 다르다.

윤석열이 그저 “꼭두각시”이거나 “충실한 부하”여서 친미·친일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처한 녹록치 않은 국제 상황에서 한국 지배계급을 위한 나름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의 외교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다. 즉, 제국주의적 갈등이 악화되는 데 일조하며 평범한 한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은행 위기와 중국 부동산 위기는 양국 경제 모두 구조적으로 꽤 불안정함을 보여 줬다. 그런데 경제 위기는 두 제국주의 국가의 지정학적 갈등이 악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윤석열의 선택이 매우 위험한 결정이었음이 입증되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