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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죄 적용 확대?:
북·중·러 견제와 국내 억압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윤석열

7월 29일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은 최근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해외 정보요원의 신상 등 기밀이 중국 국적 인물에게 새어 나간 사건을 두고 민주당 탓을 했다.

민주당이 형법상 간첩죄 조항 개정에 반대해서, 기밀을 유출한 정보사 요원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동훈의 비난은 정보사 직원 처벌에 진짜 목적이 있지 않다. 이번에 적발된 행위는 군사기밀보호법으로도 중형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국회에서 간첩죄 개정이 불발된 것은 민주당 때문이 아니라 법원과 법무부의 견해차 때문이었다.

한동훈은 집권당의 안보 실책을 야당에게 떠넘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속셈은 따로 있다.

21대 국회에서 논의된 것은 “적국”을 위한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상 간첩죄 조항의 처벌 대상에 “외국, 외국인, 외국 단체”를 위한 행위도 추가하자는 것이었다.(22대 국회에도 이런 취지의 개정안이 이미 발의돼 있다.)

현행 형법이 “적국=북한”이라고 규정한 건 아니지만, 사실상 북한만 겨냥한 냉전 시기의 법 조항이다.

간첩죄의 규율 대상을 모든 외국으로 확대하자는 것은 지금의 지정학적 불안정과 전방위적 경쟁 격화 시기에 걸맞은 태세를 갖추자는 것이다. 산업·군사 기술 보안에도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게 말이다.

민주당이 이런 목적에 반대할 리 없다는 건, 당시 민주당에서 같은 취지의 개정안이 3개나 발의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하나의 개정안만 나왔다. 총 4개의 개정안은 그 취지와 개정 내용이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신속한 법 개정을 바란 법무부(당시 장관은 한동훈)와 달리, 법원은 국가기밀 개념의 엄격함과 관련 법들과의 일관성 문제에 관해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마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법적 판단이 법원에게 맡겨지는 것(판례)이 부담스러웠던 듯하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중·러와의 긴장, 북한의 군사적 위협 증강 등에 대한 대중의 위기감을 이용해 다시 개악을 서두르려고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은 간첩죄 개정에 반대한 적 없다고 한동훈을 반박한 것은 그 당도 국가 안보 강화 논리를 따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안보 위기와 방첩 강화

세계 경제가 상당히 통합된 상황에서 지정학적 불안정이 커지고, 장기 침체 속에서 기술 패권 경쟁도 가열되면서 일국 내에서도 모순이 커지고 국가 간 간섭도 치열하다.

무엇보다 미·중·러를 선두로 (한국을 둘러싼) 주요 열강이 모두 상대를 향한 첩보 활동과 동시에 방첩 기능(억압적 법률 도입과 수사)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그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최근 수미 테리 사건이나 정보사 블랙요원 기밀 유출 사건은 한국도 주변국들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벌여 왔음을 드러냈다.

한동훈이 간첩죄 개정 발언을 한 바로 다음 날 여당 의원들은 “외국대리인등록법”을 발의했다. 여러 주류 우파 언론들도 사설과 칼럼들을 통해 이 법안에 힘을 실었다.

“외국대리인등록법”은 동명의 미국 법안을 본뜬 것이다. 미국의 이 법은 공식 외교관이 아니면서 외국을 위해 일하는 개인과 단체가 미국 법무부에 등록하고, 주기적으로 활동과 재정을 보고토록 강제하는 법이다. 간첩죄 개정 주장 취지와 동일한 목적이다.

미국에서 이 법은 제2차세계대전 참전 문제로 유럽 세력들이 미국에서 다양한 로비(친나치 선동 또는 나치 반대 참전 선동)를 벌일 때, 외국 세력에 의한 국론 분열을 막겠다며 만든 것이다.

오랫동안 사문화됐던 이 법은 미·중 갈등이 고조된 트럼프 재임 기간 중 방첩 수단으로 본격 재활용되기 시작했다. 이 법이 간첩죄보다 입증이 덜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 법의 효과는 이중적이다. 해당 단체와 개인들의 법상 등록을 강제해 국가가 일상적으로 감시·단속하는 것이 표면적 효과이다. 동시에, 정부 노선에 반대하는 이들을 ‘미등록 상태에서 외국을 위해 일했다’며 기소할 수도 있다.(미국의 한국계 관리 수미 테리도 이 혐의로 기소됐다.)

후자의 효과 때문에 이 법은 간첩죄보다 더 손쉬운 억압 수단이 된다.

그런데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이 되살아난 바로 그 시기에 중국은 홍콩에 송환법과 국가보안법을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반간첩법을 강도 높게 개악해 전국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푸틴 정부는 2012년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과 유사한 법을 만들었다가 2022년 한층 더 개악했다.

푸틴은 러시아의 대외 정책에 반대하는 자국 엔지오들까지도 단속·억압할 수 있도록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반대를 억압하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카자흐스탄, 조지아 등 러시아의 접경국들에서도 러시아와 비슷한 법들을 제정케 하고 있다.

외국대리인등록법

지정학적 불안정 상황에서 한국 국가가 모든 “외국 국가, 외국 단체, 외국인”으로 간첩죄 대상을 확장한다는 것은 대북 적대를 누그러트리는 것이긴커녕 전방위적인 안보 경쟁에 호전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한국 국가가 안보 위기 극복과 국론 통일을 앞세우며 국내에서의 권위주의적 통제와 억압을 강화할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한·미·일 군사 동맹 강화 움직임이나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등으로 중·러 정부가 신경질적으로 보복을 경고하는 상황에서, 잠재적 적국 개념의 확장은 (북한 외에도) 중국과 러시아 정부를 대하는 한국 국가의 태세를 바꾸겠다는 위험한 신호이기도 하다.

국가의 방첩 강화는 반드시 국내의 민주적 권리들에 대한 제약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우선, 국가정보원, 국군정보사, 국군방첩사(옛 기무사) 같은 방첩 기관들의 민간인 사찰과 수사가 늘어날 것이고, 이를 정당화하기도 쉽다. 지금 여권의 속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회복이 있을 것이다.

또한 간첩죄 개악이나 외국대리인등록법 같은 법률들은 경쟁국들을 잠재적 적국으로 표상해 우파적 애국주의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 효과를 낸다. 국가의 대외 노선에 대한 비판·반대를 매도하고 괴롭히기 더 쉬워지는 것이다.

가령, 정부의 한·미·일 군사 동맹 추진 노선을 비판하고 반대하면 친중 간첩 행위로 몰아붙이는 식이다.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 반윤석열 운동도 약화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반대, 팔레스타인 연대, 이주·난민 연대 운동 등 반제국주의적 국제주의 운동이 본격 사찰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간첩죄 개악이나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 시도에 (민주당은 협조하겠지만) 좌파는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