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결집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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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체포 후,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그의 친필 원고 전문이 공개됐다. 비상계엄이 헌법과 법률을 준수했다는 예의 강변을 계속하는 한편, 쿠데타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국내 정치세력 가운데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과 손을 잡으면 이들의 영향력 공작의 도움을 받아 … 선거 조작으로 언제든 국회 의석을 계획한 대로 차지할 수 있다든가 행정권을 접수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민주당이 친중·친북 세력이고, 이들의 국회 다수 의석 차지는 중국·북한의 공작과 결탁된 부정 선거 덕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 대한민국’을 되찾기 위해 중국·북한과 그와 결탁한 국내 “반국가 세력”을 상대로 “체제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의 반국가 세력 척결론과 부정 선거 음모론은 한몸이고, 그래서 그의 쿠데타는 국내적 갈등뿐 아니라 지정학적 갈등도 촉발 요인이었다.
국내의 만만찮은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에 헌신했고 서방의 우크라이나 전쟁도 지원했기 때문에, 윤석열은 쿠데타가 성공하면 미국 정부(특히 차기 대통령인 트럼프)도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을 법하다.
윤석열은 반북, 자유시장 자본주의 신봉 우익 노선(한국 지배계급의 전통적인 기본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이 “권위의 위기”(그람시의 표현으로, 대중에게 시스템을 합리화하는 지배계급의 능력이 흔들리는 것을 뜻한다)를 겪자 무력으로 돌파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리의 극우도 부상하고 있다.
권위의 위기
한국의 극우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전환 이후에도 권위주의 국가의 인적·이념적 유산 때문에 재벌과 국가기관들의 지원을 받아 왔다. 또한 고위 관료, 장성, 엘리트 지식인,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리더십을 제공해 왔다.
1월 11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최한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한 청년 발언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현직 국회의원 등 고위 인사들과 친한 엘리트층인데도 부정 선거론을 신봉한다고 말했다. 부정 선거론을 공유하는 윤석열의 변호인단에는 전직 헌법재판관, 전직 검사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거리 극우는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기층에서 성장해 왔다. 대중 집회를 꾸준히 열고, 교회 조직을 이용해 기성 정치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자존감을 제공하고, 안보 위기와 민주당 정부의 개혁 배신 전력을 파고들며 극우 선동을 해 왔다.
극우는 장기 침체와 안보 위기 속에서 점차 과격해지고 있다.
마침내 지금 지배계급의 전통적 선호 정당인 국민의힘이 거리 극우와 연대하고 있다. 윤상현이 집회 무대 위에서 전광훈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시사적이다.
게다가 윤석열의 쿠데타는 내각, 군부를 포함한 국가기관 일부의 지지를 받았다. 그중 일부는 극우와 연결돼 있고, 지금도 윤석열 구속과 탄핵 인용(파면) 과정 등을 사보타주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최상목은 윤석열 체포를 방해했고, 합참의장 등 고위 장성들은 평양 무인기 침투 등 쿠데타 일당의 외환유치 혐의를 수사하지 말라고 야당 의원들을 협박했다.
대통령 자신이 극우의 스피커를 자처하며 ‘당신들이 구국의 영웅으로 나서 달라’며 고무하고, 집권당 유력 정치인들이 극우 집회에 가서 아첨하는 일들은 극우를 고무한다.
국가기관들과 연결돼 있는 극우의 부상을 이제 중대한 위협으로 보고 대응해야 한다.
맞불 집회·시위를 열어야
윤석열의 쿠데타 미수 후 한국 사회의 좌우 양극화 추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극우의 결집과 과격화 반대편에는 윤석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운동이 대규모로 존재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주말 거리로 모이고 있다.
바로 이 압력 때문에 지배계급은 윤석열 체포 문제를 놓고 일치된 의견을 가지지 못했고, 국가기관들조차 분열했다.
극우가 성장했지만, 지금은 왼쪽의 압력이 더 크기 때문에 윤석열 직무정지·체포, 일부 쿠데타 관련자들의 구속 수사 등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
그럼에도 극우는 헌재 탄핵심판이든 차기 대선이든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태세다.
국민의힘 내부에는 후일을 도모하려면 결국 윤석열을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잠복해 있지만, 당 자체는 반이재명을 명분으로 윤석열과 단일 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점을 보면, ‘좌우 대결 프레임에 말리지 않겠다’는 중도계의 온건한 발상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쉽다.
공연한 맞불 투쟁으로 중도층을 겁먹게 하면 안 된다는 개혁주의자들 특유의 소심함은, 민주당 개혁파로의 정권 교체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전망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거리에서 맞대결을 피할수록 극우는 자기들이 대세라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 지금, 동요하던 우파를 결속시키는 것은 극우 세력의 단호함이다.
극우가 윤석열 방어로 결집했으므로 윤석열 퇴진 운동은 윤석열 제거(구속과 정권 전체의 퇴진) 작업을 빠르게 진척시켜 가도록 국가기관들에 커다란 압력을 가해야 한다.
최상목을 흔들어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면 안 된다거나, 미국의 지지를 잃으면 안 된다거나, 정치 불안정 초래하는 요인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등의 보수적(좌에서 중도로 이동하라는) 압력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운동이 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주춤거리고 있다. 차기 집권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체포 전후로 극우 집회 규모가 커져 우리 쪽 집회 참가자들이 극우 지지자들에게 봉변을 당하는데도 그들을 보호하러 달려 온 야당 국회의원은 없었다.
비상행동 지도부는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며 소심하게 행동하고 있다. 비상행동은 윤석열 2차 체포영장 집행 때도 한남동 관저 앞 집결을 호소하지 않았다.
윤석열 체포를 놓고 국가기관이 분열했는데, 그 분열을 이용해 투쟁으로 압력을 키우기보다는 운동의 지도부 다수가 대부분 공수처와 경찰 뒤에 서 버린 것이다.
극우에 대항해 맞불 집회·시위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