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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에 대한 정의당의 양비론

10월 11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정의당은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격화된 분쟁의 원인엔 이스라엘의 책임이 적지 않다”면서도,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이 “전쟁 범죄”라고 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 사이에서 양비론을 펴고 있는 것이다. “전쟁 범죄”라는 무시무시한 용어에 착목한다면 하마스를 더 강하게 규탄하는 듯하다.

아무튼 현 상황을 두 극단적 세력 간 “폭력의 악순환”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잘못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폭력은 그 정도, 목적과 효과 등 모든 면에서 다르다.

인종청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대로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건국된 강탈 국가다. 그리고 서방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 한 해 30조 원 가까운 국방예산을 쓰고, 핵무기까지 보유한 중동 최대 군사 강국이다.

그 힘을 이용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75년 동안 체계적으로 억압하고 인종 청소를 자행해 왔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20년 가까이 가자지구의 하늘·바다·땅을 봉쇄해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인 200만 명이 갇힌 ‘창살 없는 감옥’이 됐다. 2014년 가자지구 공격을 지시한 이스라엘 국방장관 베니 간츠는 “가자를 석기 시대로 돌려 놓았다”고 떠들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가자지구에 대한 전술을 “잔디 깎기”라고 명명했다.

가자지구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폭격, 임의적인 구금과 살해 등 “집단 처벌” 속에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해야 했다.

생존을 위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왜 “전쟁 범죄”인가?

게다가 지금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마을을 통째로 제거하자고 거세게 외치는 자들이 요직을 차지한 극우 연정이다. 이들의 지원 속에 시온주의 정착민과 극우 폭도들이 팔레스타인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폭행하고 살해하고 다녔다.

이런 극악한 현실 속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태생의 저명한 유대인 역사가 일란 파페는 하마스의 공격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식민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억압자들이 파괴, 즉 사실 팔레스타인인 제거에 박차를 가하고자 하는 정부를 선출한 이때에 말이다.”

참말이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고, 그들이 존속을 지키고 존립을 이루려면 무장 저항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생존

정의당은 “하마스의 민간인 납치 및 살상[은] … 절대 인정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마스의 무장 저항은 앞서 언급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게다가 이번에 하마스 전사들이 공격한 정착촌들의 경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땅을 빼앗고 세워진 곳들이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억압에 맞서 여러 형태의 비폭력 저항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폭력에 직면했다.

예컨대 2018년 가자 주민들은 70년 전 1948년 ‘나크바’[아랍어로 ‘재앙’이라는 뜻. 신생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낸 날을 일컬음]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로 대규모 평화 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이 비무장 행진에 총격을 가했다. 어린이를 포함해 150여 명이 죽었고 수천 명이 다쳤다. 나중에 유엔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향해 고의적으로 실탄을 쐈다는 보고서를 냈다.

가자지구 청년들은 이런 비참한 일들을 겪으며 자라온 세대다. 그런 이들이 무장 저항에 나선 것을 “폭력” 운운하며 비난하는 게 정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할 말인가.

정의당은 폭력을 멈추고 중동 평화를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질서다. 그 ‘국제 사회’ 중 서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 지경으로 몰았고, 동쪽은 그렇게 방치해 왔다.

게다가 정의당의 바람과는 달리, 이 질서에는 그 어떤 민주적 통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서구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을 편들어 왔다. 지금도 동지중해에는 ‘국제 사회’를 주도하는 미국의 핵항공모함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려고 출동해 있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경비견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일란 파페는 서구의 이스라엘 지지를 이렇게 규정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사람들을 상대로 벌이는 학살을 지속해도 된다는 백지 위임장.” 학살 허가증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국제 사회의 중재”는 해법이 아니다. 유엔 같은 국제기구 개입은 팔레스타인에 무용하거나 해로웠다.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두 국가 방안’이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것’이라고 선전됐지만, 이스라엘의 토지 강탈과 정착촌 확대는 지속됐다. 빼앗긴 땅을 차지한 정착민들과 그들을 보호한답시고 횡포를 부리는 군대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바라봤겠는가.

학살 허가증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일은 민간인들의 인명은 아랑곳하지 않는 두 극단주의의 충돌이 결코 아니다.

제국주의의 후원을 받는 식민 정착자 국가의 인종 청소와 그에 맞선 피억압 민중의 무장 저항이다.

전자가 승리한다면 서구 제국주의의 중동 지배가 강화되고 중동에서 억압과 착취는 더 강화될 것이다. 반면 후자가 승리한다면 시온주의는 물론이고 제국주의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 같은 친서방 국가에서 활동하는 좌파가 해야 할 일은 이스라엘의 학살을 지지하는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 저항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다.

반대로 지금 충돌하는 양측에 대해 “폭력은 결코 폭력으로 잠재울 수 없[다]”며 한가한 훈계조 양비론을 펴는 것은 이 충돌의 본질적 성격을 오해하고, 그 결과가 중동과 더 넓은 세계에 미칠 효과를 오판하는 것이다. 자칫 이스라엘이 준비하는 지상군 투입 등 더한 참극에서 이스라엘의 책임을 덜어 주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서구 정부들과 보조를 맞추며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이 상황에서 정의당이 정부에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노력을 기울이라고 촉구하는 것은 연목구어(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