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년:
159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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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축제(핼러윈)를 즐기러 나왔을 뿐인 젊은이들이 좁고 경사진 골목에 터질 듯이 꽉 끼고 눌려, 159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참사는 전 국민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줬다.
경찰, 서울시, 용산구 등이 참사 발생 전에 참사 당일 이태원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것이고 심지어 압사 사고 가능성까지 있음을 구체적으로 논의했었다는 게 여러 문건을 통해 밝혀졌다.
그러나 그에 따른 안전 대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경찰은 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 당할 것 같다,” “길을 통제해 달라”는 절박한 112 신고들이 쏟아졌음에도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안전 사고 가능성을 알았거나 이미 벌어지고 있음을 인지했음에도 정부와 경찰이 이를 외면한 데에는 이들이 다른 것을 더 우선시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당시에 급부상하던 윤석열 퇴진 운동을 제어하고, 핼러윈 축제를 기회 삼아 윤석열이 주구장창 강조해 온 “마약과의 전쟁”의 성과를 올리는 것이었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진행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서 서울경찰청장 김광호는 참사 당일 경찰의 강조점이 마약 단속에 있었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7월부터 마약 특별단속도 시작했고, 우리 [윤희근] 경찰청장이 취임하시면서부터 마약에 대한 특별 대책을 지시하셨다. 저희 입장에서는 마약과 범죄 예방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경찰 특수본 수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김진호는 하급자가 ‘핼러윈 당일 현장에 나가보겠다’고 하자 “이거 누가 쓰라고 했나. 주말이고 하니까 집회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 정보관이 축제에 나가서 할 게 뭐 있나” 하고 질책했다.
윤석열 자신의 우선순위
이런 흐름 속에서 2021년까지만 해도 존재했던 경찰의 ‘핼러윈데이 종합치안대책’ 중 ‘군중 분산 조치’가 윤석열 정부하의 첫 핼러윈 데이이자 참사가 벌어진 2022년 10월 29일에는 사라졌다.
윤석열이 이태원 참사의 진정한 책임자인 것이다.
지난 8월 윤석열 정부는 위기 관리 표준 매뉴얼에서 대통령실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삭제하기도 했다. 향후 재난 발생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소지를 미리 차단해 놓은 것이다.
대중 안전을 내팽개치는 이러한 그릇된 우선순위 하에서 이태원 참사 이후로도 오송 지하차도 수해 참사 등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최근 재판에서 나온 증언에 따르면, 용산경찰서장 이임재는 윤석열 퇴진 집회 및 행진 통제를 마치고 하급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오후 6시부터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고도 현장의 안전이 아니라 “이럴 때 대통령이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며 대통령실 앞 교통 상황을 살폈다.
결국 저녁 9시경까지 경찰 기동대 8개 부대가 참사 현장에서 불과 2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었음에도 아무런 출동 명령이 없었다.
참사 직후 경찰 고위층의 대응은 더 끔찍하다. 서울 경찰청 소속 정보 경찰들이 내부 연락망을 통해 ‘여론이 경찰 만능주의로 쏠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경찰 만능주의란 참사 얼마 전인 2022년 8월 초 취임한 윤희근 경찰청장이 타파 대상으로 내건 것으로, ‘경찰이 본연의 업무 외 부대 업무를 떠안는 상황’을 가리킨다.
경찰에게 시민 안전은 줄여야 할 ‘부대 업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 경찰은 ‘본연의 업무’인 사찰과 여론 공작에 집중했다. 11월 1일 SBS는 10월 31일 경찰청 정보국이 대통령 보고용으로 작성한 기밀 보고서를 폭로했다. 이 보고서는 과거 유사 사례, 유가족·언론·사회운동단체 등의 참사 직후 동향 파악 보고를 담았고, 정부 책임론 확산 방지책을 다방면에 걸쳐 제시했다.
바로 저항 억압이 경찰 기능의 정수인 것이다.
1년이 다 되도록 책임자 처벌 ‘0명’
이태원 참사 사흘 뒤 경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하지만 올해 1월이 돼서야 비로소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24명을 입건했다. 이상민, 오세훈, 윤희근 등 윗선은 무혐의 처분한 면죄부 수사였다.
당시에 특수본은 이렇게 말했다. “업무상과실치사상 책임을 묻기 위해선 구체적 주의 의무가 있어야 한다. (사고) 예견 가능성과 회피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재난안전법 규정에 따르면 상위 기관으로 갈수록 의무의 구체성과 직접성이 덜한 것으로 보인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책임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게다가 현재까지 입건된 책임자들마저 처벌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그중 가장 고위급인 김광호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계속 미루고 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포함한 용산구청 관계자 4명,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을 포함한 용산경찰서 관계자 5명, 정보과 경찰 3명은 기소가 이뤄져 공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매우 더디다.
결국 검찰 구형 단계까지 온 사건은 불법 증축 혐의를 받는 해밀톤 호텔 대표 등에 대한 재판뿐이다.
특수본 수사가 지지부진한 사이에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까지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실시됐다. 강제력 없는 국정조사마저 국민의힘은 파행시키며 뻔뻔하게 나왔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이후 대응 과정 내내 민주당은 여야 합의를 앞세우며 믿을 수 없는 세력임을 드러냈다.
윤석열이 공권력 행사의 우선순위를 잘못 지시한 책임(정치적 책임)이 명백한데도 민주당은 윤석열 책임론을 밀어붙이지 않고 지엽적이고 형식적인 기준을 내세워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탄핵으로 빗겨갔다. 그 이상민마저 올 여름에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돼 다시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윤석열 외의 나머지 책임자들도 법에서 명시적인 책임 부과가 없다며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다.
희생자인 고 이주영 씨의 아버지이자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인 이정민 씨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것 없이 권력의 무자비한 횡포만 목격했다”고 분노한 이유다.
이러고도 10월 19일 윤석열 정부는 유엔 제5차 자유권규약 심의 회의에 대표단을 보내 “이태원 참사는 대대적 조사와 수사를 통해 대부분의 진상을 규명”했다고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정부 대표단은 또한 “참사 1주기에 맞춰 현장 추모시설이 원활하게 조성되도록 지자체와 적극 협조하고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인 참사 현장에 조성되는 ‘기억과 안전의 길’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서울시장 오세훈은 지난 10월 1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태원에 추모 공간을 만드는 대신, 참사 1주기가 지나는 대로 서울광장에 있는 분향소를 철거할 수 있도록 애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광장 분향소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거점이자 더 많은 시민들이 오가며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진전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유가족들은 독립적인 특별조사기구를 설치하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조사의 강제력이 약한 내용인데도 국민의힘은 이를 집요하게 반대하며 유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8월 “여야 합의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이유로 국회 소위(행안위)에서 특별법의 내용을 더 후퇴시켰다. 특별법은 일러야 내년 봄에나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다. 총선을 의식한 기회주의의 발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