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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탄핵 기각:
헌재가 윤석열 정부의 대중 안전 도외시에 면죄부를 주다

7월 25일 헌법재판소가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이상민은 2월 8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후 약 6개월 만에 직무에 복귀하게 됐다.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경찰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드러난 게 불과 열흘 남짓이다. 그런데 재난 대응에 실패하고 그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자가 행안부 수장에 복귀한다니, 끔찍하기 짝이 없다.

이번 수해 참사에서 윤석열과 충북도지사 김영환은 모두 자신들이 현장에 갔어도 달라질 건 없다고 변명했는데, 그 말의 원조가 바로 이상민이다. 이상민은 이태원 참사 대책 방기 책임을 추궁받자 그렇게 말했다.

이런 이상민이 탄핵 때문에 자리에 없어서 수해 대처에 실패한 것이라고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가 말하는 꼴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다.

이상민 탄핵 심판 선고 결과에 대한 10.29 참사 유가족 협의회 입장 발표 기자회견 ⓒ임준형

기각 판결 직후 헌재 앞에서 열린 규탄 기자회견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참사 당일의 참담함을 오늘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분노했다.

최선미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고 박가영 님 어머니)은 이상민 탄핵 기각이 정치적 판결이라고 규탄했다.

“헌재는 정부에 대해 다분히 정치적이었으며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국가가 보호해 주지 않으니] 이제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자회견 도중에 한 우익이 “이태원은 북한 소행”이라는 둥 모욕적 언사로 도발을 하자, 분을 삭이지 못한 한 유가족이 실신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부 유가족은 우익들과 충돌할 뻔 했다.

한 유가족은 탄핵소추 기각 사유가 너무 협소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모여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게 유가족을 철저히 찢어 놓고, 시신을 옷도 다 벗겨서 유족한테 돌려주는 … 오로지 재난안전법만 들이대고 인권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지금 여기 쟁점에서 다 빠졌단 말이에요!”

정치적 판결

이상민 측은 이태원 참사가 예측할 수 없는 사고였다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모든 것은 일선 공무원 책임이고 명령권자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경찰 등이 실질 업무를 수행”했고 “특정인이 원인이 아닌 총체적 결과”라며 이상민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는 예측할 수 있었고 제대로 대비만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참사의 원인은 윤석열 정부의 ‘공권력’ 사용 우선순위에 있었다.

코로나19 규제 완화로 핼러윈 기간 이태원 일대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됐고 그에 따라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사전에 제기됐다. 경찰의 은폐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은 일찍이 드러났다.

그런데 경찰은 참사 당일 서울 도심 대정부 집회에 경찰력을 집중했다. 평화적인 집회들을 통제하려고 투입된 경찰 기동대만 1,100명이었다. 그중 2개 부대는 신고된 집회도 없었던 대통령 사저 주변에 배치됐다.

경찰은 집회 통제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당일 이태원 현장에는 고작 137명만 투입했다. 그런데 그중 최소 79명은 마약 수사 관련 요원들이었다.

실적을 위한 마약 함정 수사를 위해 정복 경찰 투입을 미룬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는 마약 공포를 부추겨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법질서주의와 경찰 강화를 합리화하려고 한다.

이런 경찰을 지휘하는 내각 담당자가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이다. 윤석열의 심복답게 이상민은 이런 우선순위에 충실했다.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뿐 아니라 서울시·용산구청 등 이태원 인파 밀집에 대비해야 할 다른 기관들도 마약 단속에 치중했다. 안전 사고 우려에 대한 사전 예측 보고도, 참사 직전 빗발친 112와 119 신고 전화도 모두 묵살됐다.

심지어 검찰은 참사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마약 수사를 벌이려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 오열하고 있는 참사 유가족들 ⓒ이미진

요컨대, 윤석열 정부는 서민 대중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분노해 이태원 참사 직후 ‘퇴진이 추모’라고 외친 윤석열 퇴진 집회에 수만 명이 참가했다.

윤석열이 이상민을 감싸고 정부 책임을 회피하려 한 것도 이태원 참사에 대한 자신의 지휘 책임과 참사 연관성을 덮으려는 교활한 처사였다.

정부의 책임을 묻고 제동을 걸지 않으니 오송 참사와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건설노조 수사에 수십 명의 ‘특진’을 내걸며 역량을 집중해 온 경찰이, (이태원에서도, 청주 오송에서도) 간단한 교통 통제를 제때 안 해 참사가 벌어진 것을 보라.

그런데도 헌법재판관 9명은 이상민 탄핵소추를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헌법재판소가 비민주적인 국가기관임을 분명하게 보여 줬다.

이 판결은 윤석열 정부의 우선순위와 무책임한 행태를 합리화했다. 제국주의 갈등과 경제 위기가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국가기관끼리 서로 갈등하며 정부에 타격을 주는 상황도 피하고 싶었던 듯하다. 유가족의 말대로 윤석열 정부 보호를 위한 정치적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공식 정치와 대중 정서 사이의 간극을 더 넓히는 효과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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