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가지 사물로 보는 팔레스타인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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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은 100년 넘게 식민 점령과 제국주의의 억압을 받았다. 한 세기 넘는 억압과 저항의 역사를 열 개의 사물을 키워드로 소피 스콰이어가 살펴 본다.
거짓 선언문
지금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의 근원은 대영제국의 제국주의 프로젝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에 영국은 유대 민족 국가를 수립하고 싶어했던 시온주의자들에 지지를 표했다. 이것이 벨푸어선언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방에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은 영국의 지배에 굴종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게릴라 전투 조직을 만들어 영국과 시온주의 세력에 저항했다. 그런 조직들의 지도자 중 하나인 이즈 알딘 알카삼은 농민과 노동자로 구성된 전투 부대를 이끌었다. 일부 팔레스타인 저항 투사들이 시온주의자들만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반면, 알카삼은 영국에 맞서 싸우는 것도 핵심적이라고 믿었다.
현재 저항 세력 하마스 산하 전투 부대의 이름은 바로 이 알카삼에게서 따온 것이다. 알카삼은 1935년 영국 경찰에 의해 살해됐다. 알카삼의 장례식엔 3000명이 참석해 수많은 팔레스타인 노동계급 사람들이 투쟁을 이어가도록 더한층 고무했다.
1936~1939년에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영국과 시온주의자들에 맞서 또 한 번 대규모 항쟁을 일으켰다. 저항은 농촌에서는 주로 무장 투쟁의 형태로 벌어졌고, 노동자들은 1936년에 일으킨 총파업을 몇 달을 이어갔다. 항쟁은 쉽사리 분쇄되지 않았다. 영국 측 통계에 따르면 영국 군경은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아랍인 2000명을 살해하고 108명을 교수형에 처했다.
편지
“사라졌다가” 나중에야 다시 발견된 편지 한 장이 있다. 이 편지에는 1948년에 팔레스타인인 85만 명이 살던 곳에서 강제로 쫓겨날 때 벌어진 실제 참상이 잘 드러난다. 이 편지는 팔레스타인 마을 알다와이마 학살에 참가했던 시온주의자 병사의 증언을 다루고 있다. 발신인은 S 캐플런이고 수신인은 〈알하미시마〉 신문사 편집자 엘리에제르 페리였다.
캐플런은 이렇게 썼다. “거기엔 전투도 없었고 저항도 (이집트인도) 없었습니다. 1차로 투입된 정복자들이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해 아랍인 80~100명을 죽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곤봉으로 두개골을 부숴서 죽였어요. 사망자가 없는 집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2차로 투입된 (이스라엘)군 부대는 이 증언을 한 군인이 속한 소대였습니다. 이 소대의 군인 한 명은 아랍 여성을 강간한 후 사살했다고 으스댔습니다. 출산한 지 하루밖에 안 된 아랍 여성이 군인들이 식사한 뒤뜰을 청소하는 데에 동원됐습니다. 이 여성은 하루 이틀 정도 군인들을 위해 일해야 했고, 그 후 군인들은 그녀와 아기를 모두 쏴 죽였습니다.
“증언한 군인은, 부대 사령관이 교양 있고 예의 바르며 사회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악귀 같은 살인마가 됐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은 폭풍 같은 전투 와중에 흥분해 어쩌다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체계적 추방·파괴 행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국가와 그 동맹들은 알다와이마 마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됐는지를 은폐하려 했다. 시온주의 무장 집단이 고작 30명을 살해했을 뿐이라고 한 자들도 있었다. 이는 나크바(대재앙)를 은폐하려는 더 큰 공작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의 촌장 하산 마흐무드 이흐데입은 실제 희생자 수를 145명으로 추산했다.
열쇠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팔레스타인 “늙은이들은 죽을 것이고 젊은이들은 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잊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쫓겨난 고향 집의 열쇠와 집문서를 고이 간직했다.
이스라엘 국가는 1948년에 팔레스타인인들의 주택·토지·소지품을 약탈한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고 승인하는 법을 이후 제정했고 이 법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1950년 제정된 이 ‘부재자 소유에 관한 법률’은, 살던 곳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 난민들의 주택과 소유물을 시온주의 정착민들끼리 분배할 수 있게끔 허용했다.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가 비호하는 정착민들도 이와 유사한 법을 동원해 팔레스타인인들의 토지와 주택을 강탈한다.
이들의 수법은, 고고학적 목적이나 관광 목적을 들어 토지를 강탈하는 것부터 정착민들이 자기 농장을 제멋대로 넓히게끔 장려하거나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폭력을 가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미국 달러화
1967년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미국의 경비견 구실을 할 능력을 입증했다. 이 시온주의 국가는 1967년에 이집트·요르단·시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승리한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병사인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기꺼이 늘려 줬다.
1960년대 동안 미국은 매년 약 2000만 달러의 군자금을 이스라엘에 차관해 줬다. 1970~1974년에 이 액수는 약 4억 달러로 뛰었다. 이 군자금 덕에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동(東)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추가로 30만 명 추방하고 이미 1948년부터 피란민이던 사람들 13만 명을 살던 곳에서 또 쫓아냈다.
1967년 6월 이스라엘 당국은, 예루살렘 구시가지 내 700년 역사가 있는 모로코 구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집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로부터 고작 24시간 만에 이스라엘은 불도저로 이 구역을 모두 밀어 버렸다. 이 점령의 희생자 다수가 이웃 나라 요르단에서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돌멩이
“돌멩이 봉기”라고도 불리는 제1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분노의 외침이었다. 이 ‘다윗 대 골리앗’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상대를 분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1987년 12월 이스라엘군은 평범한 팔레스타인인들이 탄 차를 깔아뭉개 팔레스타인인 네 명을 살해했다. 그중 세 명은 자발리아 난민촌 거주자들이었다.
이스라엘군에 살해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장례식은 분노의 시위로 발전했다. 제1차 인티파다가 발발해, 이후 5년 동안 계속됐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수만 명씩 행진했고, 이스라엘 군경을 상대로 돌멩이와 새총뿐 아니라 로켓과 화염병으로 싸웠다.
이스라엘 안에서 일하던 [팔레스타인인] 노동자들은 점령지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에 연대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여성들은 이 항쟁에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 제1차 인티파다 당시 16세 소녀였던 라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 또래 소녀들 모두가 제1차 인티파다 때 투쟁했어요. 남성들과 꼭 마찬가지로 거리에서 돌을 던지고 도로를 봉쇄하고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죠.”
올리브 나무 가지
평화 프로세스는 팔레스타인 항쟁에 있어 매번 후퇴만 가져다줬다. 반면 이스라엘은 합의가 맺어질 때마다 그 단물을 빨아먹었다. 제1차 인티파다 이전인 1974년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는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연설을 했다.
아라파트는 이렇게 연설했다. “오늘 저는 올리브 나무 가지와 자유 투사의 총을 함께 들고 왔습니다. 제가 올리브나무 가지를 버리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당시 아라파트의 목표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사는 단일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88년이 되면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국경선을 1948년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꿈을 접었다.
대신 아라파트는 이스라엘 국가가 존속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이 발언은, 5년에 걸친 치열한 항쟁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에 선물이 됐다. 당시 이스라엘은 자신에 맞서는 이들의 단결을 깨뜨릴 방안이 필요했다. 해법은 오슬로 협정이라는 형태로 제시됐고, PLO의 아라파트와 이스라엘은 1991년에 이 협정에 조인했다.
PLO 지도부는 이 협정이 팔레스타인 독립국으로 가는 첫걸음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시온주의자들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기 위해 한때는 무장 투쟁을 벌였던 사람들이 실제로 합의해 준 것은 재앙적인 타협이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하는 구실은 이스라엘 국가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와 협력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항쟁을 통제하고 억누르는 것이다.
알아크사 사원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 팔레스타인인 대부분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협정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동의 자유를 제약당했고 팔레스타인 경제는 이스라엘에 완전히 종속됐다. 이른바 ‘역사적 합의’가 자신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든 데에 분노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제2차 인티파다 ‘알아크사 항쟁’을 일으켰다.
항쟁의 계기는, 2000년 당시 이스라엘 야당이던 리쿠드당의 대표 아리엘 샤론이 도발하려는 의도로 [예루살렘에 위치한 이슬람의 성지]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한 일이었다. 샤론이 사원을 방문했을 때 그의 경호대는 사원을 지키던 팔레스타인인 일곱 명을 살해했다.
제2차 인티파다는 눈 깜짝할 새 점령지 전역과 이스라엘로 번졌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시위가 분출했다. 총파업이 벌어졌고, 이스라엘 국가에 맞선 무장 저항이 늘었다.
제2차 인티파다 과정에서 하마스가 중요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약속한 평화 협정[2000년 캠프 데이비드 회담]의 결과는 없으니만 못했고, 이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는 정당했다. 반면 하마스는 이스라엘 국가의 정당성을 인정하라는 압력에 타협하지 않았다.
장벽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가두고, 굶기고, 갈라놓고, 이들의 저항을 분쇄하려 동원한 수법 중 하나는 장벽 건설이었다. 2002년에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장벽 건설이 시작됐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에워싸고 가두기 위한 것이었다.
예컨대 동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은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철저히 격리돼 있다. 8미터 높이의 흉물스런 장벽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농지를 파괴하고 수원(水原)을 부숴 버렸다. 서안지구 최대의 정수 처리시설도 이때 부숴졌다.
이스라엘이 이런 억압 조처들을 동원했음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균열을 뚫고 저항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 작가 나지 알 알리가 창조한 카툰 캐릭터 한달라 그림이 장벽에 온통 그려져 있다. 넝마를 걸친 열한 살 소년을 형상화한 이 그림은 팔레스타인의 불굴의 저항을 상징한다.
팔레스타인 깃발
2021년 팔레스타인인들의 항쟁은 인종 분리적 검문소, 국경, 폭력으로도 단합된 저항을 분쇄할 수 없음을 보여 줬다. 2021년 5월 팔레스타인인 수십만 명이 파업을 벌이고 이스라엘, 서안지구, 가자지구에서 시위에 참가했다.
이스라엘의 공식 국경 안쪽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는데, 시위 참가자들은 목숨을 걸고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었다(이스라엘에서 이는 법으로 금지된 행위다). 지금도 서안지구의 용감한 시위 참가자들은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갇힐 위험을 무릅쓰고 가자지구와 연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더는 이들을 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이스라엘, 시온주의, 그들의 제국주의적 후원자들에 맞서 거리 시위를 벌이는 이유다.
폭탄
10월 31일 화요일, 이스라엘 국가는 폭탄을 이용해 제1차 인티파다의 발생지인 가자지구 내 자발리야 난민촌을 파괴하려 했다. 이스라엘의 폭탄으로 난민촌에는 지름 12미터의 구멍이 패였다. 팔레스타인인 최소 50명이 살해되고 수많은 사람이 다쳤다.
미국 국방부 전직 고위 관료인 마크 갈라스코는 이 파괴를 낳은 폭발의 흔적이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투하된 폭탄의 폭발 흔적과 비슷하다고 했다. 갈라스코는 1톤 GBU-31 폭탄이 투하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했다. 이 폭탄은 비행기에서 투하된 후 유도 기술을 이용해 목표물로 날아간다. 이 경우에는 자발리야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그 목표물이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폭탄은, 미국이 이스라엘에 판매하기도 했고 이스라엘 군수 기업이 제조하기도 했다. 자발리야 난민촌에 폭탄을 투하하고 얼마 뒤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퍼부을 GBU-31 폭탄을 준비하고 있다고 으스대는 영상을 인터넷에 게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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